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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경 Oct 13. 2023

21km의 할 수 있어

두 번째 하프 마라톤 ‘서울레이스’

‘고통스럽다’라고 하는 것은 이런 스포츠에 있어서는 전제 조건과 같은 것이다.

만약 심신의 단련에 필요한 고통이 없다면 도대체 누가 일부러 트라이애슬론이나 풀 마라톤이라고 하는 노력과 시간이 걸리는 스포츠에 도전할 것인가.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 고통을 통과해가는 것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에서 자신이 살고 있다는 확실한 실감을,
적어도 그 한쪽 끝을, 우리는 그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2023년 10월 8일 일요일 아침, 올해의 이벤트 ‘서울 레이스’ 의 전날 저녁은 많은 이들에게 기억에 남을 만한 밤이었다. 한일전 축구 경기와 서울 불꽃 축제로 서울 치킨집들은 야단이 났고.


비록 나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일찍 잠에 들었지만.

눈을 떴을 때,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언제나 늦지 않는 편인 나는 8시 대회 시작 시간보다 훨씬 이르게 도착할 계획이었지만,

세상에나. 현재 시각 6시 40분.


대회 시작이 1시간 남짓 남았고, 집결지까지 가는데 택시로 30분! 나에겐 아직 기회가 있어!


대회 시작도 전에 포기해야 하나 재빠른 양치를 하면서 망설였다.


‘절대 포기할 순 없지.’


8월 폭염을 인내하며 달렸던 시간들, 발목과 고관절과 어깨와… 근육통을 이겨낸 지난 날을 떠올리면서

서둘러 러닝복으로 갈아입고 카카오 택시를 잡아 집을 나섰다.


전날 저녁 침대 안에서 잔뜩 웅크려 인스타그램을 보면서서울 사람들은 도무지 나만 빼고 다들 불꽃놀이를 보러간걸까. 치킨집에서 친구들과 모여 축구를 보는걸까.


입이 삐죽나와 심심하게 잠이 들었다. 그런 탓에 어이없이 늦잠을 자버렸고, 대회 시작도 전에 포기할 뻔한 우스운 이야깃거리 하나가 생겨버렸다.



아무튼 달리기 시작.

7시 40분에 짐을 맡기는 데 성공했고, 인파를 뚫고 하프 코스 출발 대기선에 자리를 잡았다.


출발 폭죽이 울리고, 사람들이 뛰어나갔다. 대회 관계자인 상무님과 우리 팀원들과 재빠른 인사를 잊지 않고 :)


내 인생 두 번째 하프 마라톤을 출발했다.


청계광장에서 시작해 종로 - 청계천 일대를 러닝 크루와 시민들의 열띤 응원을 받는 기분이란.




포기할 이유는 많았다.


대회 일주일 전, 발목을 삐끗해서 여전히 발목이 퉁퉁 붓고, 붉고 퍼런 멍이 완연했다.


그래도 주변 사람들의 걱정과 달리, 괜찮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아이언맨 대회에도 출전해 본 나의 베스트 프렌드 B가 괜찮다고 해 준 덕분일지도. 그리고 B도 마침 발목을 다친 와중에 같은 날 제주도에서 100K 트레일러닝 대회에 나갔다.


고백하자면, 다친 발목 보다는 훈련을 작년의 절반도 하지 못해 페이스 관리가 안되었다. 즐거운 달리기보다 지나치게 더운 날씨와 무거운 내 몸 탓에 고통스러웠고 속상했던 적이 많았는데.. 별 일 아니었다.


그러니 그냥 달리기를 할 때는 비교하지 말고, 그냥 그 순간 자체를 즐기기로 한다.


사람들의 환호가 가득했던 서울의 근사한 가을 하늘 아래에서 작년보다 겨우 8분 늦은 기록으로 그리고 작년과 달리 부상 하나 없이 완주했다.




장거리 달리기의 특별함은 나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 속에 숨어 있다.


21km 2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내 안에서 수도 없이 말한다.


’할 수 있어.‘


그러면 고통은 언젠가 지나가고, 정말로 할 수 있게 세상이 펼쳐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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