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석하게도 아픔에 적응한 사람들
스스로 들어간 뒤주
사람은 말이다.
아픔에 적응한다.
그리고 내 것이 된 아픔을 놓아주지 않는다.
나는 속이 안 좋다. 늘 위가 쓰리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 속이 좋았다. 위가 편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라.. 왜 좋지? 안 좋아야 하는데'
결국 나는 다시 음식을 섞어 먹어 속을 안 좋게 만들었다.
그러고는 생각했다.
'그래, 이렇게 아픈 게 맞지.'
정말 모순이었다.
아플 때는 건강하기를 소망하면서 막상 건강하니, 적응되지 않았다. 그리고 아프기를 소망했다.
모두들 힘들고 버거워야 이게 인생이지, 한다.
그리고 막상 행복하고 평화로우면 이상하다, 이럴 리 없는데, 하고 의심한다.
슬프게도, 애석하게도 사람은 고통에 적응하고 아픔에 심취한다.
안타깝게도, 모순적이게도 사람은 고민이 없어지면 새로운 갈등을 기어코 만들어낸다.
그렇게 스스로를 뒤주에 가둔다.
우린, 고통 없는 삶에 적응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고통 없이도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알 필요가 있다.
잘 안 되는 거 안다. 나도 되질 않으니.
그러니 일단 이렇게 생각해 보자.
'나는 사도세자가 아니다. 내 뒤주 뚜껑은 열려 있다.'
'열려 있는 뒤주에 굳이 몸을 구를 필요 없다. 그저 열린 뚜껑 그대로 나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