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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의 엄마는

8화. 눈물방울은 아무 데서나

by 윤혜림


정숙의 늙은 엄마가 아프다. 얼마 전까지는 그 집 딸내미가 아팠는데 좀 괜찮아지고 나니까 이제는 엄마가 아프다.


사실 큰딸이 우울증 치료를 받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숙은 생각보다 많이 놀라진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놀라지 않으려고 했지, 기분이 더러웠다. 지저분한 병에 걸린 것만 같았다. 왜 하필 지원이 정신병에 걸린 건지 이해가 도무지 되지 않았다. 꼭 정신과 약을 먹어야 하나 싶었다. 그래도 우울증은 감기 같은 거라고 주변에서 하도 많이들 말해서 적당히 병원 다니다 보면 언젠가 낫겠지 생각했다. 정작 놀란 건 짬을 내서 울산에 내려온 지원의 얼굴을 봤을 때다. 몸무게가 십여 킬로 빠져서는 낯빛도 좋지 않았다. 집에 머무는 이박 삼일 동안 웃는 얼굴 한 번 못 봤다. 정숙은 이게 다 자기가 지은 죄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조금은 슬펐고 조금은 억울했다. 무난한 가정에서 자라게 해주는 게 그게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만들었을까 가슴이 저렸다. 그리고 그런 가정을 만드는 데 일조한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정숙네 큰딸은 툭하면 울면서 전화가 왔다. 꿈에 지 아빠가 나타나서 주먹을 휘둘렀는지 아니면 욕지거리를 해댔는진 몰라도, 어둑새벽 전화해서는 코 훌쩍이는 소리만 내다가 끊기도 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나 이제 그만 살고 싶어, 할 때 정숙은 심장이 거세게 뛰다 못해 그만 멈춰버릴 것만 같았다. 약 열심히 먹으면 금방 괜찮아져,라는 말이 그나마 제일 쉬운지 정숙의 입에선 매번 이 말만 튀어나왔는데 얼마 전에는 정신과 치료를 그만 받아도 될 것 같다고 지원이 그랬다. 진짜 괜찮은 건지 어쩐 지는 몰라도 일단 약 먹을 정도는 아니라고 하니까 괜히 마음이 놓였다. 편안해졌다.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고는 바로 정숙의 늙은 엄마가 아프기 시작했다.


정숙은 엄마가 허리를 삐끗했다고 했을 때도 역시 별로 크게 걱정 않았다. 나이 들면 누구나 그렇듯 근육이든 뼈든, 몸 구석구석 약해진 탓에 아픈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평생 시장에서 호떡 팔고 과일 팔고 국밥 팔던 엄마가 가게 비우는 날이 늘어났다. 하루라도 일을 안 하면 좀이 쑤시다던 정숙의 엄마는 이불 덮고 누워서 일어날 줄을 몰랐다. 작은 동네에 있는 정형외과를 죄다 돌았는데 의사들은 다 짜기라도 한 듯이 똑같이 말했다. 근육 조금 놀란 건데 연세가 조금 많으셔서 회복이 느린 거라고. 정숙은 참을성 있게 기다리기로 했고, 늙은 엄마가 밥숟가락도 무겁다고 못 들 정도가 되자 정말로 진실로 아니 존나게 불안해졌다.


하루가 다르게 뼈마디가 두드려지고 몰골이 핼쑥해지는 엄마를 위해서 정숙히 해줄 수 있는 건 삼시세끼 식사를 챙기는 것 그것이 전부지. 서울 유학 가있는 딸 둘 먹여 살릴 돈 벌기도 숨찼지만 정숙은 끼니때마다 엄마네 집으로 달려갔다. 아침 일곱 시에 대충 눈곱 떼고 일어나 여덟 시 아침밥상을 차렸다. 다 먹으면 설거지를 하고 눈에 보이는 먼지도 대충 좀 쓸고 다시 생업터로 돌아왔다. 오후 열두 시엔 점심밥 챙기러 또 엄마네로 들어갔다가 돌아왔고 저녁 여덟 시에 맞춰 다시 밥 하러 들어갔다. 저녁에는 한 가지 잡일이 추가됐는데, 설거지를 마치고 나면 끓는 물에 찜질팩을 넣고 데워야 했다.


골고루 따뜻해지라고 십 분마다 한 번씩 찜질팩을 뒤집는다. 적당한 뒤집개 따로 없어서 고무장갑 끼고 물에 손을 담갔더니 정숙이ㅡ 손가락 마디마디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정숙은 오늘도 어제와 같이 찜질팩을 끓는 물에 넣어 얹어놓고 식탁에 가만히 앉았다. 서울 사는 애새끼, 밥은 제대로 챙겨 먹었나 생각한다. 요새 정신머리는 잘 챙기고 다니나 걱정한다. 우리 엄마는 저녁밥도 조금밖에 못 드시던데 언제쯤 다 나으려나 한숨이 나온다. 머릿속에서 이 사람 저 사람 얼굴 떠올리다가, 찜질팩 눌어붙었을까 화들짝 놀라 일어선다. 스치기만 해도 뜨끔 거리는 부은 손을 고무장갑에 욱여넣는 정숙의 미간에는 뫼 산자가 깊게 새겨진다. 눈물 방울이 찔끔 나온다. 눈치 없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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