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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이 떠나는 날

10화. 누구도 울지 않았다.

by 윤혜림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섰다. 지원은 외투를 단단히 챙겨 입고 한 손에는 캐리어를 한 손에는 종이가방을 들었다. 민성은 반팔에 잠옷바지 차림을 하고 두 손은 주먹을 꽉 쥐었다. 지원은 몸을 돌려 택시 트렁크에 짐을 넣는다. 민성은 빌라 공동현관 앞에 서서 지원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지원의 옆에 서있던 연진이 택시 뒷자리 문을 열어주자 지원은 고개를 돌려 민성을 다시 한번 쳐다본다. 민성은 이 모든 일이 일어날 동안 어떠한 미동도 없이 제자리에 뿌리 박혀있다. 지원은 시선을 민성에게서 겨우 떼내었고 택시 안으로 몸뚱이를 밀어 넣는다. 연진이 지원을 따라 뒷좌석에 올라타고 차 문이 매몰차게 닫힌다. 지원은 모르지만 민성은 오랫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울지는 않았고 그건 떠나는 지원도 마찬가지였다.


민성과 삼 년을 함께 한 그 집을 뒤로하고 지원은 연진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포갰다. 어제 카페에서 민성과 마주 앉아서 분명히 두 시간이 넘도록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데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토막 난 문장들만 어지럽게 머릿속을 떠다니고 그것들 중 뭐라도 잡아채 보려고 애쓰지만 헛된 노력이다.



달리는 택시 안은 숨 막히게 고요하다. 지원은 머리를 창문에 기대고 한 장면을 떠올린다. 어젯밤 카페에서 나와 민성에게서 돌아서 걸으려는 순간, 민성이 자신의 팔을 애타게 잡았고, 지원을 한 번만 안아봐도 되겠냐고 물었으며, 그때 민성은 울고 있었고, 민성에게 안기며 자신도 눈물을 참지 못했고, 다시 팔을 뿌리치고 돌아서서 몇 걸음 걷다가 다시금 뒤돌아 민성을 바라봤고, 민성이 빠른 걸음으로 자신에게 다가왔으며, 자신은 마치 자석의 서로 같은 극에서 강하게 밀려나듯 민성에게서 멀어졌고, 그 순간 민성의 눈빛이 완전한 슬픔으로 바뀌었던, 롱테이크 씬.



오빠가 입었던 니트가 옅은 팥죽색이었던가 분홍색이었던가. 아니다, 셔츠를 입었던가.



그날 밤 민성의 옷이 뭐였던가 하는 의문으로 지원의 생각이 넘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어둡고 좁은 골목 앞에 택시가 멈춰 선다. 연진이 먼저 차에서 내리고 뒤따라서 지원이 내린다. 트렁크에서 짐을 꺼내 지원과 연진이 나눠 들고는 연립주택의 이층으로 들어간다. 집 한편에 캐리어와 종이가방을 대충 던져 놓는다. 지원과 연진 모두 매우 지쳐서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거실 바닥에 그대로 몸을 던져버린다. 거실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런 가구도 없이 텅 비어있는, 그저 지붕 있는 어떤 공간에 불과하다. 지원은 많은 것을 그 빌라에 두고 왔다. 정말 많은 것을. 지원이 특히나 싫어하는 주광색 형광등이 거실을 밝히고 있다.



그래도 후회는 안 해. 이건 사랑이야. 그건 사랑이 아니었고.



두 사람이 마주 보고 누워 서로를 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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