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늦가을의 11월 첫째 주. 첫 하프 마라톤이 내일이다. 여름이 지나가던 8월에 시작된 하프 마라톤 트레이닝 기쁘고 감사하는 맘으로 달릴 생각에 가슴이 두근두근 하다. 할 수 있는 준비는 다했다. 이제 내일 일어나서 달리기만 하면 된다.
몸이 부르르 떨리는 추운 가을 아침이다. 집에서 프린스턴 까지 차로 운전해서 45분 정도 걸린다. 레이스는 7시에 시작된다. 아직 별이 보이는 새벽에 일어 나서 준비하고 나가야 한다. 깜깜한 도로를 달리면서 오늘 어떻게 달릴까 생각을 해본다. 레이스 백을 드롭하고, 남는 건 사진이라며 레이스 시작 전 같이 달리는 사촌동생과 우리의 모습을 남겨 본다. 긴장감 가득한 내 미소, 다시 보니 그날 아침으로 찬 공기가 느껴진다.
레이스가 시작되기 전, 간이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줄을 서있는데. 6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아저씨 두 분들이 웃으면서 말을 건넨다.'프린스턴 레이스 뛰어 봤어?' 프린스턴 레이스도 처음이지만 하프마라톤 도 처음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뭣도 모르던 당당함에 웃으면서 말해 주신다. 중간에 언덕이 있으니 처음부터 너무 힘 빼지 말고 무사 완주하라고 응원해 주셨다.
어깨와 어깨가 닿을 듯 가까이 서서 레이스가 시작되기를 기다린다. 각자의 페이스 대로, 각자의 기록의 염원을 담아 긴장과 설레는 마음으로 숨을 고르고 있다. (이런 게 가능했다고?라고 생각이 드는 코로나가 지나가고 있는 지금, 레이스 사진을 볼 때마다 울컥한다.) 다들 각자의 스토리를 가지고 그렇게 달려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러너들의 에너지가 어마 어마 하다. 드디어 레이스는 시작되었고,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차가운 프린스턴의 아침 공기를 마시며 그렇게 나만의 페이스로 달리기 시작했다. 페이스 메이커를 따라가면서 속도를 유지하면서 달려 나갔다. 가을이 지나가는 프린스턴은 너무 아름다웠다.
그. 리. 고, 우리에게 웃으면서 언덕을 조심하라던 아저씨의 그 언덕이 정말 레이스 중간 6마일 지점에 나타났다. 숨이 턱턱 막혔고 올려봐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생전 느껴보지 못했던 다리 근육 부분이 아파온다. 언덕 끝에 도달할 때쯤 많은 사람들이 응원을 하고 있었다. 우연히 레이스를 참가하고 있던 남편을 응원하고 있던 친구도 봤다. 타이밍 좋았던 응원이 언덕 올라오느라고 고생했어 라고 해주는 것 같았다.
레이스를 같이 뛰지 않아도 레이스를 같이 뛰어주듯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너무 감사하다.
응원은 너무 중요하다. 누군가에게, 웃음으로, 말로, 행동으로 응원을 해준다는 것은 그 힘을 나에게 실어 주는 것과 같다. 내가 지금 비록 네가 얼마나 힘이 든 지 다 헤아릴 수 없지만, 너에게 마음과 응원의 에너지를 전해 줄게 라는 감사한 행동. 손을 흔들어 보이면서, 크게 웃으면서 감사하다는 것을 알렸다. 레이스 내내 정말 많이 웃었다. 오늘 그 크고 작은 응원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느꼈다.
마지막 1마일을 남겨 놓고 달리고 있는데 언덕을 조심하라던 60대 아저씨가 너 잘 달리고 있네 하며 쏜살 같이 나를 지나서 달려간다. 헉 나도 열심히 달려야겠다는 생각에 얼굴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결승점이 보인다. 레이스 시작 후 제일 빨리 달려서 들어갔다. 달렸다, 하프 마라톤, 무사 완주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가을이 이거다 라고 말해주는 프린스턴에서 이루어진 역사. 엄청 신나게 시작해서 달리다가, 끝이 보이지 않던 엄청난 언덕배기를 만나고, 올라가면 내려올 언덕이 있겠지 하며 뛰어 오니, 어느새 완주하였다. 사랑하는 사촌동생과 같이 달리고 오니 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평생 하프마라톤은 나랑은 상관없는 단어인 줄 알았다. 이제 그 단어의 의미는 영원히 바뀌어 버렸다. 오늘만 달려보자는 계속된다. '첫 하프마라톤' 달렸다. 13.1 마일, 21 키로, 1시간 53분 43초. 퍼스널 베스트! 최초 이자 최고 기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