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얼마 전 왼손 손가락부터 손목을 거쳐 팔꿈치까지 이어지는 통증으로 몇 달 동안 병원에 다녔다. 일하는 동안 회사 근처 두 군데 병원에 번갈아 다니다가 퇴사 후에는 집 근처로 옮겼다. 몇 군데 병원을 거치며 드퀘르뱅이라는 희한한 병명을 알게 되었고, 동시에 건초염과 근육염에 관해서도 처음 알게 되었다.
처음 앓아 보는 증상들이라 얼마만큼 지나야 낫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막 악기 연습에 불을 붙이려던 시기였는데 마침 왼손이 그래 버리니 조바심이 났다. 가만히 있을 때는 통증이 심하지 않지만 뭐만 좀 하려고 하면 손가락이, 손목이, 팔꿈치 부근이 욱신거려 일상생활에도 불편함이 컸다. 2~3주가 흘러도 그다지 차도가 없는 게 아무래도 이상해 병원을 자꾸 옮기기도 했다. 원래는 조급한 성격이 아닌데 계속 낫지 않자 기타나 피아노를 못 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이 나를 꽤 신경 쓰이게 했다.
그중 한 병원에서의 일이다. 그곳에서 세 번째 주사를 맞는 날이었다. 두 번째 치료 후 좀 나아지는가 싶더니 다시 엄지와 손목 부근에 기분 나쁜 시큰거림이 올라왔다. 치료실에 누워 기다리고 있는데 안경을 쓴 의사 선생이 들어왔다. 편의상 쥐박사님이라고 부르겠다. 조용히 들어온 쥐박사님이 “좀 어때요?”라고 묻기가 무섭게 나는 기다렸다는 듯 손목 부위를 황급히 가리키며 “이쪽이 엄청 아프더라고요” 했다. 내심 주사의 효과를 의심하는 기색을 조금 담으려고 했다.
내 손짓을 가만히 보던 쥐박사님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나지막이, “음. 손을 좀 아끼고는 있어요?” 하고 물었다. 당황한 나는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다가 코너를 보면서 “…네….” 하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다지 아껴 주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날에도 새로 산 할라피뇨 피클을 열면서 병 쪽을 잡고 있던 왼손에게 또 무리를 시키지 않았던가.
왼손이 아프고 나서 크게 깨달았다. 나는 오른손잡이라(적어도 그렇게 알고 있다) 왼손은 거들뿐이지 뭘 그렇게 많이 사용하지 않는 줄 알았다. 글씨도 안 쓰고, 밥도 안 먹고, 양치도 안 하니까, 왼손은. 그런데 실은 오른손 못지않게 필요했다. 당연하면서 생소했다. 옷을 입고 벗을 때, 빨래를 갤 때는 물론, 머리를 감을 때도 오른손과 똑같이 노동한다. 치약 튜브를 잡고 짜는 건 왼손이었고, 설거지할 때 수세미로 거품을 문지르는 오른손의 템포에 맞춰 그릇을 들고 돌리며 무게를 받치는 역할도 왼손의 몫이었다.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아픈 쪽이 왼손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서 정말이지 미안했다. 보조적이기는 해도 힘이 더 많이 들어가는 업무는 왼손이 도맡았었는데. 기타 칠 때도 그랬다. 연주할 수 있게 되기까지 왼손이 훨씬 궂은일을 했다. 기타에 있어서는 보조적인 쪽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러고 보니 다른 병원에서는 진료 말미에 ‘무리하지 말고 보호대를 착용하라’는 정도의 당부를 하는 게 다였는데, 효과 없는 주사만 자꾸 놓는 줄 알았던 쥐박사님이 ‘아끼다’라는 동사를 사용하는 바람에 나는 마음이 한층 고분고분해지는 경험을 했다. 이후 치료는 한참 더 걸렸고 병원을 한 번 더 옮기기는 했지만 말이다.
어딘가 왜 계속 아플까 싶으면 스스로 물어보게 되었다. 좀 아끼고는 있냐고. 함부로 쓰지 않고, 소중하게 여겨 보살피거나 위하는 마음을 충분히 가지고 있냐고. 주사나 약만 믿으면 안 되는 것이다, 아픈 일에 있어서는. 드퀘르뱅이나 건초염, 근육염이 아니라 어떤 아픔에 대해서도.
Se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