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다 잘난 엄마만 있는 거 같아.
외국생활에서 생활하고 있는 친구의 포스팅을 보면 '와 나도 해외에 나가 살고 싶다. 좋겠다'라고 생각하실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삶'이 아닌 '여행'의 측면으로 바라봤을 때 아닐까? 싶다.
나도 한국에 있었을 때는, 해외에 살고 있는 친구를 보면서 '부럽다'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해외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친구의 포스팅을 보면 ' 아 친구도 살아가느냐고 고군분투하고 있겠구나' 싶다. 포스팅에 보이지 않는 외로움과 힘듦을 나는 본다.
여행이 아닌 '현실'세계의 해외살이는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 와서 계속해서 나의 부족함을 마주하는 일들을 계속 겪다 보니 자존감과 자신감은 저기 바닥으로 계속 곤두박질을 치고 있다.
한국에서는 대학도 나왔고 직장 생활도 했고, 내 친구들도 있고 다 내가 익숙하고 잘하고 잘 아는 것들이었는데, 이곳 인도네시아에서 나는 매일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좋은 것이던 나쁜 것이던) 부딪히고 있다.
학교 선생님과는 영어로, 현지 생활을 위해서는 인도네시아어를 써야 한다. 영어는 생활영어 수준인 내가, 선생님과 아이의 평소생활과 학교생활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언어의 부족함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학교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이메일을 쓰려고 하면 한두 시간은 걸린다. 한번 쓰고 읽고 다시 수정하고... 긍정적인 측면이라면 '그러면 너 영어 늘 수도 있어서 좋겠다' 겠지만 뭐 하나 하려고 하면 언어적으로 에너지 소비가 크다 보니 저녁 8시만 되면 그렇게 피곤함이 몰려온다.
인도네시아어는 어떻고... 내 인도네시아어는 거의 이나라 영유아기 아이의 언어 수준이다. 그렇다 보니 나가서 어떤 일을 마주하면 내 몸의 모든 센서를 켜고 상대방이 말하는 것을 눈치코치 살피며 이해해야 한다. 한국 공항에 도착해서 한글로 모든 것이 쓰여있고, 인천공항에서 나갈 때 처음 마주한 톨에서 한국어가 나올 때 나는 그렇게 반가 울 수 없었다. 내 나라 말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속이 시원한 일인지 몰랐다.
이렇게 살면서 가장 중요한'소통'이 원활하지 않고 나는 매일 '공부해야지 공부해야지' 하면서도 정작 지키지 못하니 결국 내 부족함만 또 마주하게 된다.
한국에서도 '주부'로 살면서, 살림은 안 하면 확 티가 나지만 또 한다고 일한 흔적 안 보인다는 것이 살림이었다. 이곳에 와서는 나의 역할은 더 커지고(국제학교에 아이를 보내면 행사도 많고 엄마 손이 더 많이 필요로 한다.) 할 일은 더 많아졌는데 누구 하나 '잘했다' '고생했다' 해주지 않는다.
열정도 꿈도 많았던 나는 어디 가고, 이곳에서는 계속 마주하는 것들이 실수와 부족한 점들이니 나는 계속 작아진다.
한국에서 나는 그냥 내가 나고 자란 동네의 '아줌마'였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고 나도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는 갑자기 내가 만나보지 못한 소득 수준의 인도네시아 상류사회 엄마들, 다양한 문화의 나라와 직업의 주재원 부모들을 만나며 나 자신이 너무 보잘것없어 보인다는 느낌을 받는 일들이 많다. 아무리 흔들리지 않으려 해도, 그게 쉽나...
나에게 옷이란 아이들 등교시키고 하교시킬 때만 입던 옷만 필요했다. 여기서는 '엄마'로서 해야 하는 사회활동들이 있어서 내가 한국에서 입던 아이들 등학교룩은 실내복이었다. 갑자기 변한 내 주변환경이 어색하고 나에겐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위에서 느낀 감정들이 오면, 나는 한없이 무기력해진다. 침대에서 아침부터 아이들이 올 때까지 기어 나오지 않을 때가 있고, 몇 번 엄마들을 만나서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슴에 공허함만 남아서 그 '허전'함을 음식으로 채우기도 하고 아침에 일어나 보면 부어있는 얼굴과 저녁에 먹은 것이 소화가 안돼서 더부룩한 내 위만 남는다. 내 성향상 무기력이 일주일 이상 가면 우울함으로 다가오기에 며칠이상을 안 가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한국에 있는 친한 친구들이 공감이 안 되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어려울 테고, 타국에서 마음 허심탄회하게 말할 대상을 찾기란 어렵기 때문에 주재원 엄마의 속은 켜켜이 묵은 때가 쌓인다. 그리고 한국에서 겨우 쌓아온 내 자존감이 이곳에서 낮아졌다. 그렇게 주재원 엄마의 자존감은 오늘도 하락 중이지만, 다시 반등할 날이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