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심은 데 콩 나고, 덜렁이는 엄마 밑에 덜렁이는 아이들 나온다
그리고 지난주의 일이다. 올해부터는 세 아이 모두 다 같은 국제학교에 다닌다. 덕분에 아침 시간은 세 배로 더 바빠졌다. 아침 일찍 깨워야 하는 아이들도 셋, 챙겨야 하는 도시락도 셋,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부지런히 준비시켜야 할 아이들도 셋. 게다가 시외까지 스쿨버스를 태우기에는 다섯 살 막내가 아직 어린지라 등하교 운전도 모두 나의 몫이 되었다. 등교 시간에 딱 맞춰 학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카시트에서 아이들을 내려주는데....... 자동차 뒷좌석에 있어야 할 것이 보이지 않는다. 가방. 둘째와 셋째의 귀염뽀짝한 가방이 없다. 교과서나 필통 같은 공부와 관련된 것은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지만, 오전 간식과 오후 간식과 점심 도시락과 물통이, 아이들의 일용할 양식이 들어있어야 할 그 가방이 차에 없었다.
"....... 가방 어디 갔어?!?!"
"....... 엄마가 들고 온 거 아니었어요?"
다섯 살, 일곱 살 아이들에게 자기 가방을 스스로 챙기는 똑 부러지는 모습은 애초부터 기대한 적 없었지만, 나는 왜 하필 이날 아침에 아이들 가방을 최종 확인하지 않았을까. 바로 그날은 큰 아이 생일이었고, 나는 새벽에 일어나 아이들 간식과 점심 도시락을 싸는 걸로도 모자라 학교에 들고 갈 헬륨 풍선에 가스를 주입하고 있었으며, 꼬맹이들 가방보다는 큰애가 학교에 들고 갈 16개의 구디백(goodie bag)에 온갖 정신이 팔려있었다. 아, 아침부터 왠지 정신이 없더라니. 이것은 나의 잘못인가 아이들의 잘못인가. 왜 뒷자리에 앉아있던 세 아이들 중 그 누구도 늘 발아래 있던 가방이 없단 걸 눈치채지 못했는가. 나는 왜 매일 아침 출발할 때마다 구호처럼 뒷자리 아이들에게 외치던 "마스크, 안전벨트, 가방" 이 세 가지를 이날 아침에만 부르짖지 않았는가.
아이들 학교는 바르샤바와 그 위성도시인 비에와바의 경계에 있다. 매일 아침 출근시간이면 시내에서 외곽으로 가는 길은 정체가 심하지 않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시내방향 교통량은 어마 무시하다. 그래서 평소 교통량이면 학교에서 집까지 15분이면 가지만, 되돌아가는 길이 너무나 막혀 보통 학교까지 오가는데 왕복 한 시간 정도 소요된다. 지금 다시 집에 가서 가방을 가져오면 아이들은 보나 마나 지각이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나중에 가방을 따로 가져다주기로 하고 아이들을 먼저 교실로 들여보낸다.
가방 없이 교문으로 들어가야 하는 아이들은 눈빛이 불안해진다. 가방 없이 등교라니. 아무리 어린아이들이라도 자신들이 지금 하는 일이 얼마나 비상식적인 일인지 안다. 선생님께 혼날 것 같다는 불안함에 왠지 평소보다 더 학교에 가기 싫어지지만, 한숨을 푹 내쉬며 마스크 뒤로 짜증을 숨기는 엄마의 얼굴을 보니 여기서 '학교 안 가면 안돼요?' 따위의 말은 입도 벙긋 못 한다. 엄마를 조마조마하게 쳐다보며 쭈뼛쭈뼛 교문으로 들어선다. 총도 없이 전쟁터에 나서는 소년병의 얼굴이 딱 저러하리라.
성인이 된 우리는 안다. 물건을 두고 오는 실수는 누구나 한두 번쯤 할 수 있으며, 사실 살면서 겪게 될 크고 작은 실수들과 어려움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수습할 수 있고, 해결책이 있으며, 대안이 있다. 가방이야 그냥 까짓 껏 집에 가서 다시 가져오면 그만이다.
그러나 아직 유치원생인 아이들은 모른다. 그래서 불안하고 무섭다. 이게 얼마나 큰 실수인지 가늠할 수 없으며, 혹여라도 창피를 당하거나 누군가에게 혼날까 봐 겁이 난다. 이런 일이 처음이기 때문에, 그리고 수습할 수 있는 능력이 본인들에게 없기 때문에 사소한 일이라도 더 크고 힘들게 느껴진다. 그런데 그때 아이들을 안심시키는 마법의 문장이 생각났다.
"괜찮아. 언니도 예전에 가방 홀랑 집에 두고 갔는데, 안 혼났어."
'언니도'라는 말에 그제야 아이들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여기해 더해서 엄마는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고. 사실 엄마도 학창 시절에 가방 두고 학교 간 적 있다고 슬쩍 고백해본다. 물론 가방이 아니라 필통이었지만, 아이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 과장은 섞어도 되겠지. 어쩌면 나도 기억하지 못할 옛날에 정말 가방을 두고 유치원에 갔을 수도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내가 할 법한 짓이라 그런 적 없다는 보장을 할 수가 없다.
물론 그만큼 엄마의 권위는 무너진다. 그러나 엄마도 언제든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걸 이참에 알려준다. 오늘 학교에 빈 몸으로 온 게 모두 아이들의 탓만은 아니다. 아침에 미처 확인하지 못한 엄마의 지분도 꽤 있다. 아니 어쩌면 더 크다. 그러니 우리 서로가 서로를 꼼꼼하게 챙겨가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자며 다독인다. 이럴 때면 몇 년 전에 앞서 가방을 놓고 등교하는 모범(?)을 보여주며, 동생들의 불안을 가시게 해 준 큰 애가 괜히 고마워진다. 물론 그날 아침에는 이런 훈훈한 미래를 상상하지 못하고 나는 짜증을 냈었지만.
"자, 나는 가방 가지러 집으로 간다. 엄마 잘 다녀오라고 하이파이브해줘."
결국 이날 학교까지 두 번 왕복하느라 오전 두 시간은 길에서 버렸다. 그렇지만 혹여 나중에라도 아이들이 또 가방을 집에 두고 오면, 그때 아이들을 더 수월하게 안심시킬 경험을 하나 얻었다. 물론 다시는 이런 실수가 반복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아무도 장담할 수는 없겠지. 그러면 또 짜증이 나고, 아이들에게 눈을 흘기고, 아이들도 내 눈치를 살살 보겠지만 오늘처럼 불안해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교문을 들어서지는 않을 것이다.
"괜찮아. 처음이 아니야. 전에도 이런 일 있었는데 문제없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