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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정현 Jul 29. 2020

우린 조금 다를 뿐인걸!

더글라스 케네디 <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

 우리 집에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책벌레가 산다. 오죽하면 남편이 "쟤가 책을 조금만 덜 읽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한 적도 있다. 부모가 책 읽는 걸 떨떠름하게 생각할 정도라면, 정말 지긋지긋하게 책을 읽어대는 아이라는 말이다. 두꺼운 책 한 권만 있으면 10시간의 유럽행 비행도 거뜬하다. 그런 아이에게, 올해 봄에는 생일선물로 책을 잔뜩 선물해 줬다. 코로나바이러스로 학교가 문을 닫은 지 두 달쯤 지난 5월의 어느 날이었고, 이미 집에 있는 책들을 닳을 때까지 읽고 또 읽으며 그날이 그날 같고 매일이 똑같은 지루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아이에게 최고의 생일선물은 역시 책 밖에 없다, 고 생각했다.


 아이는 다른 선물보다도 '한국어로 된 책'을 받고 싶어 했다. 해외에 살면서 가장 간절해지는 건 그런 것들이다. 한국의 것. 모국어로 된 이야기들. 아이도 다르지 않았다. 한국과 폴란드를 왕복하는 모든 국제선 비행이 끊기면서 국제우편서비스(EMS)가 중단되었지만, 다행히 독일에 본사를 두고 있는 DHL 서비스는 독일까진 항공으로, 그 이후로 폴란드까지는 육로로 택배 서비스를 운행하고 있었다. 책값만큼 비싼 배송료를 내야 했지만, 생일이니까, 특별한 날이니까, 아이가 원하는 대로 마음껏 책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장바구니에 담긴 여러 권의 책들을 주문하려는 찰나, 그날 밤에 <책읽아웃> 삼천포책방에서 이 <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의 방송을 들었다. 그냥 님의 영업력에 홀딱 넘어가 이 책도 장바구니에 추가되었다.


 '작은아씨들'처럼 오랫동안 사랑받는 고전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요시타케 신스케의 추리소설 시리즈도 함께 선물상자에 담겨왔지만, 아이는 생일선물로 받은 책 중에서 단연코 이 책을 가장 좋아했다. 그만큼 더 좋아한 책이 있다면 서정오 선생님의 옛이야기 책이었는데, 이것에 대해선 나중에 따로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하룻밤만에 후딱 책을 다 읽고, 이야기가 금세 끝난 것을 아쉬워하며 읽고 또 읽었다.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자기가 전혀 모르는 작가의 책인데 정말 재미있었다며 같은 작가의 책이 또 있다면 구해줄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는 초특급 베스트셀러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가 쓴 첫 전체관람가(?) 소설이다.  


"이 책을 쓴 아저씨가 원래 굉장히 유명한 소설가인데, 어른들이 읽는 소설만 쓰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아이들을 위한 책을 쓴 거야. 네가 읽을 수 있는 소설은 아직 이것밖에 없지만, 어른이 된다면 읽을 수 있어. 네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수십 권의 많은 책들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지. "


 내가 이렇게 답하자 아이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니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졌다고 말했다. 늘 항상 아이로 사는 게 더 행복할 것 같다며, 어른이 되면 해야 할 일도 많고 너무 피곤할 것 같다고 말했던 아이였다. 그랬던 딸에게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조금 생겼다. 고마운 책이다.



 아이는 이 책을 읽으며 새로운 장애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단어였다고 한다. 만나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던 단어. 아이는 이 책을 처음 읽던 날, 나에게 물어봤다.

 "엄마, 자폐가 뭐예요?"

 소설 속 주인공 오로르가 자폐증을 가진 아이로 나오기 때문이다.


 대학원에서 임상심리학을 전공했던 나는 발달 병리학, 임상병리학, 심리진단 이런 과목을 수강하면서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DSM)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달달 외워야 하는 삶을 살아야 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도교수님의 전문분야가 다른 것도 아닌 아동기 발달장애와 관련된 것이어서, 교수님의 슈퍼바이징 아래에 세 명의 자폐아동의 전담 치료사이기도 했었다. 각각 12개월, 6개월, 그리고 2년의 시간 동안 그 아이들을 지켜봤다.


 그런데도 사실 자폐가 무엇이냐고 묻는 큰애의 질문에 선뜻 '이것이다.'라고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너무 양상이 다양해서 '스펙트럼 장애'라고 부른다는 것과,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자폐증의 몇 가지 특성(사회성 결여, 상동 행동, 자극 민감성, 언어지연 등)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말하면서도 '아, 이게 전부는 아닌데. 뭐라 설명하기 참으로 난감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내가 만난 자폐증 환자들은 나이는 비슷했지만 그 독창성이랄까, 아이들 개개인의 특성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 아이들은 '내가 성인이었지만 엄마는 아니었던' 그 특수하고도 짧은 시기에 가장 깊게 관계를 맺은 아이들이었다. 임상 심리전문가인 허지원 박사는 환자를 만날 때는 최대한 환자에게 집중하지만, 치료가 끝나고 나면 다시 자신의 삶으로 빨리 전환하는 것, 그게 프로라고 했다. 나는 그게 잘 안되었다. 전문가 수련 3년이 지나면 그게 된다고 팟캐스트에서 이야기했는데, 수련을 끝까지 마치지 않아서 그런가... 가장 나를 괴롭게 하는 게 바로 그 연속성이었다. 유난히 치료가 힘들었던 날이면 밤새 아이들의 꿈을 꿨다. 꿈을 꾸고 나면 세 시간의 치료 세션이 끝났을 때보다 더 땀이 범벅이 된 채로 깨곤 했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한 번에 세 시간씩. 그렇지만 꿈속에서도 만났기 때문에 어쩌면 더 자주 만났다고 할 수 있을까. 꿈에서도 치료하고, 현실에서도 치료했다. 그것은 아주 긴 싸움이었고..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이기도 했다.


 내가 만난 아이들은 신경학적인 뇌손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완치'의 개념이 없었다. 이미 손상된 뇌기능을 되돌릴 수는 없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절망감과 싸우며, 매일 아이를 치료실에 데려와 조금이라도 희망의 싹이 될 만한 것을 건져가길 원했던 어머님들의 눈을 볼 때마다 그 잔인한 사실을 머리에서 지우려고 애썼다. 때로는 너무 지친 그들의 눈에서 체념의 기운을 발견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나마저 무너지면 안 된다며, 당장 실현 가능한 아주 작은 목표를 향해 아이들의 수행을 잘게 나누고 또 나누며 그들의 작은 도약을 어떻게든 시각적으로 수치화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아주 느리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그렇지만 또 지극히 느렸기에 우리는 많이 지치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아이들의 '인간적 존엄성'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보았는지 의심스럽다. 병보다는 인간에게 더 관심을 기울인 적이 있었는가. 나는 데이터의 그래프를 상승 곡선으로 만드는 데만 너무 치중하지 않았나. 그들의 다름을 그 다름 자체로 존중했었는가.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적인 병리학에만 초점을 맞추는 데 급급해 나는 아이들의 다름을 뜯어고쳐야 할 종양 덩어리처럼 바라보지는 않았는가. 혹시 그래서 지쳤던 건 아닐까.


"너는 왜 보통 사람들처럼 말하지 않니?"
"저 같은 사람을 장애인이라고 한대요."
"나랑 같은 처지구나."
오브가 나한테 물었다. "여기 힘든 세상에서는 누구나 문제가 있지 않아?"
"여기 사람들은 장애인을 '보통'사람과 너무 거리가 먼 사람으로 생각해."
(184쪽)

경비원이 눈을 굴리더니, 마무드 할아버지와 팡타그뤼엘에게 말했다.
"얘 좀 이상하네요. 그리고 왜 말은 안 하고 태블릿으로 이러는 거예요?"
마무드 할아버지는 경비원에게 화를 내며 소리치고 싶은 표정이었다. 그렇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한참 경비원을 쏘아본 뒤에 말했다.
"나도 얘랑 똑같아. 우리는 조금 다를 뿐이야. 문제 있어?"
경비원은 자기가 올바르지 않은 말을 했다는 걸 깨닫고 움찔했다.
(195쪽)


 13년 전에 처음 만났던 지금의 내 아이보다도 어렸던 나의 첫 환자는 지금쯤 성인이 되었을 것이다.

 1 년간 일주일에 두세 번씩 만나고, 매일 밤 내 꿈에 나왔던 그 아이의 얼굴을 떠올려보면 사진을 바라보는 것처럼 여전히 너무나 생생한데, 아마 나는 길에서 그 아이를 만나도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 얼굴을 떠올려보면, 나는 그 아이에게 별로 훌륭한 치료사가 되지 못했던 것 같아서 마음이 쓸쓸해진다.



 20대 초반에 아이들과 깊게 인연을 맺고 나서 사실 내게는 한편에 두려움이 있었다. 나중에 태어날 내 아이에게만큼은 발달 장애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러나 그것은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때로 누군가에겐 그저 일어나곤 마는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삶을 너무나 가까이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그 두려움은 때때로 나를 잡아먹을 듯 커지곤 했었다. 그래서 스물넷쯤 그 언저리였나, 언젠가 아버지에게 나의 그런 두려움을 털어놨던 적이 있었다.

"저의 바람은, 나중에 내 가족들에게만큼은 장애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가족들 중 그 누구도 사고나 병으로 일찍 죽거나 하지 않고 제 수명대로 살았으면 좋겠어요. 선천적인 것이든 후천적인 것이든 인생을 뒤흔들만한 큰 사고나 장애를 경험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와 나의 아주 가까운 사람들만은 제발 그저 아주 남들만큼만 평범하고 보통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아버지는 그게 바로 누구나 바라는 것이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아빠는 그날, 중학생 때 돌아가셨던 삼촌 이야기를 아주 조금 들려주셨다. 아버지도 그걸 많이 바랐지만, 그건 바람과는 무관하게 누군가에겐 아주 슬프게도 그냥 일어나는 일이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오늘도 이 평범함이 언제 깨질지 몰라 늘 항상 마음 한 구석에 불안함을 안고 산다. 요즘처럼 전염병이 돈다거나, 위험한 사고의 순간이 눈 앞에서 스쳐 지나갔을 때면 그 불안함은 꽤 커지곤 한다. 누군가는 인생에서 큰 불행을 겪지만, 그건 그냥 인생이 잘못된 것도, 모든 걸 망친 것도 아니고 그냥 조금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삶이 전개되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서, 그 '조금 달라 보이는' 삶이 내 인생에서 만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기도한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그러나 혹시 그런 내 마음이 다른 형태의 삶을 거북하게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을까. 다른 것을 틀린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그들의 인생을 '잘못된 삶'이라고 바라보지는 않았을까. '잘못된 삶'이란 착하지 않거나 나쁜 짓을 저지른 삶이 아니라 존중받지 못하는 삶, 하나의 개별적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실격당한 삶이다. 김원영 변호사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의 한 구절을 읽으며, 마음 한 구석이 부끄러워졌다. 조금 다를 뿐이에요. 문제 있어요?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긍정성'이 내 안엔 없었으니까.


 시간이 흘러 내 아이는 아홉 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그리고 '자폐'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보았다. 그것도 소설이라는 한정된 세계에서, 상상과 창작이라는 형태를 빌어. 아이는 이 삶이 얼마나 축복받은 삶인지 알고 있을까? 어느 날 밤엔가 아이와 함께 방송을 들었다. 아이는 왜 방송의 초점이 '자폐'와 '다름'에 맞춰져 있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방송에서 이야기하는 소설 이야기가 자기가 읽었던 이야기랑 조금 다른 것 같다고 했다. 자폐라는 장애를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아이에게는 책 전반에 표현된 오로르의 '다름'이 '다름'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냥 오로르는 오로르일 뿐인데 왜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어른들은 이렇게 진지하게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냐고 되물었다.


나는 거기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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