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그날, 방에서 책을 읽다 나온 사춘기는 내게 소설 속 돼지 '핑키' 이야기를 해주려 한 것 같다.
“엄마..핑..키가..”
사춘기는 이내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운 듯 목소리가 떨리는가 싶더니 사춘기의 두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차 올랐다.
순간, 나는 사춘기에게도 어쩌면 ‘그때'가 왔을지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그 일은 낚싯대를 두고 시간을 낚듯 기다리는 일이었다. 기다리던 ‘그때'는 마침내 물고기가 낚싯바늘을 제대로 물어, 찌가 흔들리는 바로 그 순간을 닮았다.
나는 많은 아이들과 책을 읽고 글 쓰는 일을 해왔지만, 어떤 아이는 '그때'를 단 몇 개월 만에 만났고, 또 다른 아이는 몇 년에 걸쳐 만났다. 때론 나와 함께 하는 동안 그때를 만나지 못하고 끝나기도 했다. 물론 그때는 어른이라 해도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내 아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사춘기의 독서 생활 역시 어떤 격정을 만나기 보단 다소 밋밋한 편이어서 아쉬웠었다.하지만 이 문제 만큼은 조바심을 내고 채근할수록 역효과가 나는 것이라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사춘기가 학교밖 청소년이 될 결심을 할 때 기대한 게 있었다면 단연 '그때'를 경험할 독서 활동이었다.
‘그때'란 한 아이가 책 한 권을 온전히 마음으로 읽는 경험을 하는 것이었다. 어떤 목적성도 갖지 않은 순수한 몰입이 일으킨 마음에 파장은 뒤이어 만날 수많은 독서의 마중물 같은 것이었다.
내가 이번에 사춘기에게 권했던 책은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로버트 뉴턴 펙)이었다. 돼지 잡는 일로 생계를 잇는 사랑하는 아버지와 그를 도울 수밖에 없던 소년의 양가감정, 결국 친구였던 돼지 핑키마저 도살된 뒤에 어른이 돼버린 소년의 삶으로 걸어 들어가길 바란 마음 때문이었다
챕터를 정리하고 연상할 수 없는 장면을 찾는 과정에 사춘기 표정이 달라졌다. 모르던 것을 스스로 알아냈단 사실이 작은 균열을 낸 게 틀림없었다. 말을 잇지 못한 것은 사춘기만이 아니었다. 온 맘으로 책 읽기의 산을 넘는 사춘기의 모습은 내게도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어제는 ‘나 홀로 하루 여행‘을 하고 돌아왔었다.
개와 고양이의 열렬한 환대를 받은 뒤 정신 차려보니 집안 공기가 사뭇 달랐다. 뭐지? 뭐가 다른 거지? 찬찬히 둘러보는데, 우렁각시가 다녀간 것처럼 집안이 깨끗하게 정리돼 있었다.
개수대는 말끔했고, 설거지된 모든 그릇이 물기를 닦고 그릇장에 정리돼 있었다. 물기가 닦인 수저도 가지런히 서랍으로 들여놓고, 사춘기는 빨래 정리 중이었다. 바짝 마른 타월을 모두 걷어다 동그랗게 말아 타월 보관 바구니에 테트리스 쌓듯 정리하는 사춘기는 뭔가 달라 보였다.
평소에 집안일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어제 사춘기는 스스로의 마음에서 우러난 것을 실천에 옮기고 있었다.
"사춘기야, 이건 어떤 거냐면, 엄마의 휴식이 존중받은 그런 느낌이야. 고마워! “
나는 부러 상세히 설명을 붙여 고마움을 표현했다.
"응, 아침에 엄마가 좀 걷다 올게, 하고 나갔잖아. 엄마 마음이 그런 것 같았어."
내 마음이 돼서 생각해 봤다는 말에 나는 진심으로 위로받았다.
한 존재가 성장하는 과정은 경이로운 일이었다.
특히, 존재의 깊어진 눈을 마주 본 일은 작은 우주가 열리는 광경을 본 듯 설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