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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물원킨트 May 27. 2024

결혼식의 멤버 (8)

08. 여고생


18. 고등학교 앞, 실외, 저녁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있는 학생들.

현철이 가방을 매고 밖으로 나온다.

사복 차림의 여고생 하나(여, 17세)

후다닥 뛰어와서는 현철에게 팔짱을 낀다.


하나:

쌤! 여고생이 왜 아저씨를 사랑하는지 아세요?


현철:

(하나의 팔짱을 풀며) 은교?

네 나이에는 그 영화를 보면 안 되는 걸로 아는데.


하나:

어머? 쌤도 그 영화 봤어요?

생각보다 응큼한 데가 있네. 선생님 저질.


현철:

아, 그 나이에는 그런 거 밖에 안 보이는 건 알겠는데.

그 영화는 말이다. 나이가 다른 세 사람이 서로에게

결핍된 능력을 질투하면서 벌어지는 비극이야.

운명의 장난 같은 거지.

좀 어렵게 이야기하자면 디오니소스적 욕망 같은 거라고.

너는 여고생이 남자 유혹하는 장면 밖에는

기억이 안 나겠다만.


하나:

아, 안 들려요. 안 들려. (고개를 도리도리)


현철:

아, 이런. 안 되겠네.


하나:

제가 뭘요?


현철:

아니, 내가 문제다.


하나:

네?


현철:

애 앞에서 잘난 척이나 하고. 꼴불견이다, 진짜.


하나:

그럼 반성의 의미로 김밥을 쏘세요. 난 참치 김밥.



 19. 분식집, 실내, 저녁


하나가 허겁지겁 라면과 김밥을 먹는다.

현철은 먹는 둥 마는 둥.


현철:

근데 내가 너 호구니? 맨날 나만 찾아오게?


하나:

호구가 좋은 거라면서요?

남에게 계산 없이 아낌없이 주는 거. 쌤이 한 말인데.


현철:

아, 교육자로서 실격이네.

아깐 잘난 척에 이젠 언행불일치라니.


하나:

(라면 국물 한 사발 들이키고)

근데 잘난 척 하는 게 나쁜 건가?

그냥 다 사랑받고, 인정도 받고 싶고

그래서 그러는 거잖아?

아는 척도 하고, 가진 척도 하고.

사람이 다 그러고 살지 않나요?


현철:

다 그런다고 올바르다고 할 순 없지.


하나:

쌤은 어쩔 땐 참 어렵게 사는 거 같아요.

되게 자유로운 거 같아 보이는데,

뭔가 진지할 때는 또 끝이 없고.


현철:

내가 그러냐?


하나:

그러니까 강의가 재미없죠. 눈으로 먹는 수면제라니까.


현철:

와, 너무 솔직한 거 아니냐?


하나:

(카운터를 향해) 여기 떡볶이도 좀 주세요.

(현철에게) 뭐 그래도 저는 선생님 맘에 들어요.

어쩔 땐 말만 들어도 은근 멋있기도 하고.

뇌섹남이 이런 건가?


현철:

헐. (기가 차서 팔짱을 낀다)  


하나:

쌤은 제가 별로에요?


현철:

일단 법적으로 안 된다는 건 알 거 같은데.


하나:

아니, 꼭 사랑은 어른들끼리만 해야 되나요?

그런 건 누가 정했나 몰라.

사랑에는 국경도 나이도 없다고 하잖아요?


현철:

아, 이럴 때 쓰라고 명대사가 있지.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


하나:

아아, 안 들려요, 안 들려!

(정색하며) 뭐 그리고 제가 평생 열일곱이겠어요?

고등학교도 언젠간 졸업할 거고.


현철:

(젓가락을 다시 집더니) 너 좀 진지하게 말하는 거 같으니

나도 답변을 드리자면, 네가 하나 잊은 게 있는데

(사이) 나 유부남이다. (김밥을 하나 먹는다)


하나:

사모님 SNS를 봤는데, 선생님 사진 다 지워졌던데요.

이혼? 아님 별거?


현철:

(놀라서) 와. SNS는 인생의 낭비라더니 참.

비밀이 없구나, 세상에는.


하나:

뭐 결혼도 한 번 실패했으면 다음번엔 잘 하지 않을까요?

시험도 오답노트가 필요한데,

뭐 사랑도 결혼도 경험이 없는 것보단 낫죠.


현철:

(한 방 맞은 얼굴이다) 아이고.

(젓가락을 가지런히 내려놓는다)


하나:

왜요?


현철:

입맛이 확 사라지네.


하나:

(농담으로) 혹시 나 땜에? 상사병 같은 거?


현철이 어이없어 하는데,

그 순간 주문한 떡볶이가 탁자에 탁 놓인다.


하나:

오, 맛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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