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넥타이
20. 고등학교 운동장 벤치, 실외, 저녁
현철과 하나가 사이를 두고 벤치에 나란히 앉아있다.
하나:
아, 거기 김밥이랑 떡볶이가 진짜 맛있는데 아쉽다.
이게 마지막이네.
현철:
(하나를 쳐다본다) 응? 너 혹시…
하나:
(담담하게) 네, 전학 가요.
현철:
(뭐라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한다)
하나:
(가방에서 상자를 꺼낸다) 이별 선물이요.
전학 기념으로. 맨날 하는 그 푸르죽죽한
넥타이 말고 좀 세련된 걸 쓰시라고.
현철:
(잠시 말이 없다가) 고마운데, 내가 이걸 받을 자격이 있나 모르겠다.
하나:
쌤 좋아해서 드리는 거예요. 알죠?
현철:
(진지하게) 하나야.
하나:
네, 선생님.
현철:
나는 이해가 안 간다.
너 나이 때는 아이돌이나 잘 생긴 선생님이라도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니니?
보다시피 난 뚱뚱하고 볼 거 없는 아저씬데.
너처럼 예쁜 애가 왜?
혹시 내가 만만해서 놀리는 거니?
하나:
선생님은 좀 다른 거 같아서요. 남자 애들은 다 시시해요.
현철:
음. 근데 나도 열일곱 살에는 네 말대로 시시하고 별로였어.
뭐 지금이라고 크게 다른 건 아니지만.
내가 지금 무슨 말하는지 알겠지?
하나:
그럼 좋은 걸 어떡해요? 내 마음이 그런 건데.
현철:
아. 니가 어른이고, 내가 애인 거 같다, 지금은.
(일어서며) 우리 좀 걷자.
하나:
(현철을 올려다본다) …네.
21. 거리, 실외, 저녁
점점 어두워지는 거리의 풍경.
현철과 하나가 나란히 걸어간다.
불이 꺼진 가로등 앞에서 현철이 걸음을 멈춘다.
현철:
며칠 전에 여기서 말이야.
하나:
(무슨 말인지 쳐다본다)
현철:
너보다도 어려 보이는 남자애가 담배를 피우는 거야.
요 아래서. 그래서 내가 한마디 했지.
근데 그 녀석이, 학생은 담배 피우면 안 돼?
이러는데 어이가 없어서
세상에는 지켜야 하는 룰이 있다고 했더니,
대뜸 칼을 꺼내더라.
하나:
네?
현철:
그다음 말이 무섭더라. 한 2년만 살다 오지 뭐.
한마디로 촉법소년이라는 거지.
근데 거기서 난 정말 겁이 났어.
그 칼이 정말 날 찌를 거 같았거든.
집에 가는 내내 부끄럽단 생각밖에 안 들더라.
어른으로서 빵점인 거지.
(사이) 하나야, 난 니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멋진 어른은 아니야.
하나:
그래서 제가 쌤이 좋다는 거예요.
현철:
무슨 전개가 그래?
하나:
적어도 염치는 있잖아요.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 그거 아무나 못 가져요.
안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사이) 안 다치셔서 다행이에요. 다치지 마세요, 선생님.
현철:
(하나를 한참 바라보다가) 하나. 멋진 어른이 돼라.
하나:
(경례하며) 넵!
가로등에 불이 들어온다. 두 사람이 걸어간다.
두 사람의 뒷모습.
하나:
(V.O) 대학 들어가면 찾아와도 되죠?
현철:
(V.O) 너 전번 오늘부터 차단이다.
하나:
(V.O) 소용없어요. 교무실로 직접 갈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