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요양원
23. 도로, 실외, 오후
국도를 달리는 자동차.
민준이 운전하고, 옆에는 현철이 앉아있다.
자막 “1년 후”
현철:
근데 가는 길에 뭐라도 사가야 되는 거 아니냐?
민준:
절대 암 것도 사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다.
뭐 들고 오면 면회사절하시겠대.
현철:
근데 걔가 담배는 좀 폈어도 술은 안 마셨잖아?
갑자기 요양원은 뭐야?
민준:
그러니까 미스터리라는 거지, 내 말이.
현철:
(팔짱을 끼며) 아아, 뭔가 서글프네.
이제 우리도 건강에 신경써야하는 나이가 된 건가?
민준:
일단 가보자고. 가보면 알겠지, 뭐.
24. 요양원 주차장, 실외, 오후
민준이 천천히 후진으로 주차를 하는데,
현철이 문득 생각난 듯 물어본다.
현철:
근데 너 연애 하냐?
민준이 놀라서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차가 한 차례 출렁거린다.
현철:
야야, 살살해.
민준:
너 무슨 심령술 배우냐? 깜빡이 좀 켜고 들어와.
현철:
차가 너무 깨끗해졌잖아. 너답지 않아.
오랜만에 만났는데 분위기도 다르고.
민준:
못 당하겠네, 진짜. (다시 후진을 하고 차를 세운다)
현철:
누구시냐, 상대가?
민준:
(침묵한다)
현철:
알았어. 묵비권 행사하시고요. (나가려고 차 문을 여는데)
민준:
(주차 브레이크 올리면서) 주리.
현철이 다급히 문을 쾅 닫는다.
본격적으로 취조하겠다는 분위기다.
현철:
뭐? 내가 아는 주리? 우리 과 후배 주리?
민준:
응. 보라 결혼하는 날 왔더라.
현철:
와. 완전 특종이네, 특종.
전여친 결혼식에서 현여친을 만나?
잠깐, 그럼 뭐야? 무려 1년을 넘게 사귄 거네?
오, 이번엔 의외로 오래 가네.
민준:
그런 셈이지, 뭐. 나도 나이를 먹었으니까.
현철:
오, 드디어 너도 유부클럽으로 오시겠다?
(장난스럽게) 지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민준:
야, 왜 결혼한 놈들은 열에 일곱은 결혼을 하지 말라는 거냐?
현철:
그건 말이다.
사랑과 결혼이 아예 다른 차원의 사건이거든.
문제는 그걸 경험해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 사실을 몰라요.
타인은 지옥이다, 이 말씀이거든.
민준:
너무 부정적인 거 아니야?
현철:
그건 니 말이 맞아.
우리 샤르트르 선생님께서 타인은 지옥이다
이렇게 말씀은 하셨어도, 사람이라는 게 말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결국 저절로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기거든.
인간은 외로운 걸 못 참거든.
그게 비극의 시작이며 동시에 희극의 시작이지.
민준:
아. 한마디로 어려운 문제란 소리네.
현철:
세상에 쉬운 일이 없어요.
국가 교육과정에도 결혼 생활 잘 하는 법은 안 가르치거든.
민준:
(피식 웃는다) 그러네, 정말.
현철:
오늘은 아주 시작부터 아주 쇼킹하네.
일단 이 인간 면회 좀 하고,
가는 길에 남은 썰 좀 들어보자.
민준:
뭐 그러시던가요.
두 사람이 차에서 내린다. 주위를 살펴보는데
허름한 요양원이 보이고 사방이 고요하다.
현철과 민준이 요양원 쪽으로 걸어가는데,
멀리서 수액걸이에 링거를 꽂고
환자복을 입은 채로 걸어오는 영수가 보인다.
영수가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링거 반대편 손을 들어 보인다.
현철, 민준:
(동시에) 뭐야? 저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