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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물원킨트 May 29. 2024

결혼식의 멤버 (9)

09. 넥타이


20. 고등학교 운동장 벤치, 실외, 저녁


현철과 하나가 사이를 두고 벤치에 나란히 앉아있다.


하나:

아, 거기 김밥이랑 떡볶이가 진짜 맛있는데 아쉽다.

이게 마지막이네.


현철:

(하나를 쳐다본다) 응? 너 혹시…


하나:

(담담하게) 네, 전학 가요.


현철:

(뭐라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한다)


하나:

(가방에서 상자를 꺼낸다) 이별 선물이요.

전학 기념으로. 맨날 하는 그 푸르죽죽한

넥타이 말고 좀 세련된 걸 쓰시라고.


현철

(잠시 말이 없다가) 고마운데, 내가 이걸 받을 자격이 있나 모르겠다.


하나

쌤 좋아해서 드리는 거예요. 알죠?


현철

(진지하게) 하나야.


하나

네, 선생님.


현철

나는 이해가 안 간다. 

너 나이 때는 아이돌이나 잘 생긴 선생님이라도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니니? 

보다시피 난 뚱뚱하고 볼 거 없는 아저씬데.

너처럼 예쁜 애가 왜? 

혹시 내가 만만해서 놀리는 거니?


하나

선생님은 좀 다른 거 같아서요. 남자 애들은 다 시시해요.


현철

음. 근데 나도 열일곱 살에는 네 말대로 시시하고 별로였어. 

뭐 지금이라고 크게 다른 건 아니지만. 

내가 지금 무슨 말하는지 알겠지?


하나

그럼 좋은 걸 어떡해요? 내 마음이 그런 건데.


현철

아. 니가 어른이고, 내가 애인 거 같다, 지금은. 

(일어서며) 우리 좀 걷자.


하나

(현철을 올려다본다) …네.


 

21. 거리, 실외, 저녁


점점 어두워지는 거리의 풍경. 

현철과 하나가 나란히 걸어간다.

불이 꺼진 가로등 앞에서 현철이 걸음을 멈춘다.


현철

며칠 전에 여기서 말이야.


하나

(무슨 말인지 쳐다본다)


현철

너보다도 어려 보이는 남자애가 담배를 피우는 거야. 

요 아래서. 그래서 내가 한마디 했지. 

근데 그 녀석이, 학생은 담배 피우면 안 돼? 

이러는데 어이가 없어서  

세상에는 지켜야 하는 룰이 있다고 했더니, 

대뜸 칼을 꺼내더라.


하나

네?


현철

그다음 말이 무섭더라. 한 2년만 살다 오지 뭐. 

한마디로 촉법소년이라는 거지. 

근데 거기서 난 정말 겁이 났어. 

그 칼이 정말 날 찌를 거 같았거든. 

집에 가는 내내 부끄럽단 생각밖에 안 들더라. 

어른으로서 빵점인 거지. 

(사이) 하나야, 난 니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멋진 어른은 아니야.


하나

그래서 제가 쌤이 좋다는 거예요.


현철

무슨 전개가 그래?


하나

적어도 염치는 있잖아요.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 그거 아무나 못 가져요. 

안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사이) 안 다치셔서 다행이에요. 다치지 마세요, 선생님.


현철

(하나를 한참 바라보다가) 하나. 멋진 어른이 돼라.


하나

(경례하며) 넵!


가로등에 불이 들어온다. 두 사람이 걸어간다. 

두 사람의 뒷모습.


하나

(V.O) 대학 들어가면 찾아와도 되죠?


현철

(V.O) 너 전번 오늘부터 차단이다.


하나

(V.O) 소용없어요. 교무실로 직접 갈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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