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승, 『여장남자 시코쿠』

by 세포뭉치

나의 진짜는 뒤통순가 봐요

당신은 나의 뒤에서 보다 진실해지죠

당신을 더 많이 알고 싶은 나는

얼굴을 맨바닥에 갈아버리고

뒤로 걸을까 봐요

<커밍아웃>


“내 어디가 좋아?” 하는 말, 누구라도 한 번 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이 말만큼 머릿속을 새하얗게 만드는 말도 잘 없다. 그래서인지, 이런 상황은 유튜브의 스케치 코미디나 토크쇼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곤 한다. 언젠가 내가 봤던 유튜브 컨텐츠에서 누군가는, 그냥 외워서 이렇게만 말하라고 정답지를 쥐어주기도 했다. 극도로 사적인 영역에서까지 정답을 찾아가려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꽤 많다고 생각하니 거의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다.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좋을까. 또, 어떤 말을 했으면 좋았을까.


모르긴 몰라도 ‘다 좋지’ 이건 거의 확실한 오답이다. 다 좋다는 건 요소들 간에 차별성이 없다는 말이고, 그러면 그 말은 사실 ‘다 싫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게 돼버린다. 이렇고 저런 논리적 장난은 차치하더라도 무엇보다 이 대답은 무성의하고 무관심해 보인다. 그러므로 이 대답은 탈락. 다음 후보는 ‘눈’이나 ‘코’처럼 어느 부분을 특정해서 말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에서 유의해야 할 점은 그냥 단순히 눈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렇게 말하는 건 선조들께서 지겹도록 많이 쓰셨던 방법이기 때문에 진부하다는 평을 벗어나기 어렵다. 그보다는 ‘눈꼬리’라든지 ‘콧방울’같이 흔히 들어보지 못했을 부분을 구체적으로 짚어주는 편이 좋다. 감정이나 어조에도 신경 써야 한다. 가령 ‘눈꼬리’ 보다는 억양을 살린 ‘눈꼬리!’가 좋다. 이정도 정성이라면 낙제점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피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이 과목을 수강하는 게 학점 때문이 아니라면…? 더 나아가 “내 어디가 좋아?”, 하는 귀여운 얼굴에서 불현듯 알 수 없는 슬픔을 느낀다면? 상대의 눈을 바라보는 일이 눈꼬리가 찢어진 모양새나 눈동자의 색을 보는 일이 아니라, 상대의 동공에 비친 나를 되새기는 일이 아니라 눈빛 뒤의 아득한 공간으로 넘어지는 일이라면, 그렇다면 어떨까. 그러면 낙제를 무릅쓰고 모든 대답을 즉각 취소하고 싶어진다. ‘다 좋지’도 ‘눈꼬리!’도, 그 어떤 말도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워진다. 그럴 때면 내게 누군가를 안을 수 있는 두 팔이 있다는 사실이 유일한 위안이 된다. 내 앞에 무너져 내릴 몸통이 있다는 사실이 한없이 감사해진다. 다듬고 고른 말을 버리고 그저 손 끝의 거스러미, 뺨에 난 솜털처럼 말 없는 것들을 바라보고 싶어진다. ‘입술을 뜯어버리고’ 입 없는 것들을 가만가만 쓸어내리고 싶어진다.


너의 얼굴은 온통…… 잘생기고

못생기고의 차원이 아니야, 뭔가가 있어. 뭔가 어리석고 역겨운 것이!

나는 무척 마음에 든다

나는 무척 마음에 들어

<어린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더없이 기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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