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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Apr 22. 2021

시골 라이프, 그것은 분명 나의 정신적 사랑이리라

- 내가 사랑한다는 걸 몰랐던 것들

시골에서의 아침은 유난히 시끄럽고 눈부시다.


길가로 지나가는 탈탈탈 경운기 소리, 옆집의 개 짖는 소리, 엄마가 텃밭으로 들락거리는 소리, 아침이면 유난히 목청이 커지는 것 같은  새소리.


그 소란들이 먼저 아침잠을 몰아내면 이제 나의 의지만 남았다. '두 눈을 떠.'


여명도 아닌 찬란한 아침 7시의 햇빛이 방구석구석까지 몰아쳐 들어왔다. 마치 대낮에 깬 사람처럼, 하루가 많이 지나버린 것 같은 상실감이 들입다 밀려온다.


'오늘 무엇을 하기로 했더라?'


느긋해지고 게을러지기로 마음먹었으면서도 시골의 아침은 나에게 약간의 미안함을 가지게 한다. 눈부신 아침 마당에 나가면 그 이유가 분명해진다.

길 건너 산 등성이를 새벽부터 일구는 여든의 노부부, 부지런해지기만 한다면 돈 벌 것 천지라는 옆집 아줌마, 그 이른 아침부터 마을 입구 유일한 슈퍼마켓에서 막걸리 한 잔 걸치고 나온 뒷집 털보 아저씨, 그들이 나에게 묻는다. 왜 생활을 하지 않냐고.


'왜 아침에 이리 늦게 일어나냐고

아침이 제일 일하기 좋은 시간인데...


길 건너 집 앞 공터에 아무것도 안 심을 거냐고.

뭐라도 심으면 다 먹을 것이 절로 자라는데....


마을에서 아침에 제일 늦게 일어나는 집이 우리 집일 거라고.'

낮은 담 사이로 아침 늦게까지 조용한 우리 집을 모두 주시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며 순순하고 한적한 시골의 삶에 마음을 빼앗긴 적이 있었는데 그런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순순한 로망이 삶이 힘들 때마다 불컥불컥 올라왔다.

 내가 어렸을 적 자란 곳은 소도시지 시골이 아니었기에  로망에 자주 흔들리곤 했다. 농사지을 땅도 없아파트에서 자랐지만 조금만 외각으로 나가면 펼쳐졌던 논과 밭의 풍경들. 마치 영화처럼 싱그러움만 존재할 것 같은 시골 라이프 로망은 부모님이 시골에 집을 사고 주말농장처럼 그 집을 꾸미고, 엄마가 텃밭을 일구면서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했던 시골 라이프는 이런  아니었다.


결혼 전 남편을 데리고 왔을 때 엄마는 우리를 텃밭으로 불러 고구마를 캐라고 지시했다. 바쁜 철이라고. 우리는 호미로 고구마를 다 찍어내 아작을 내 버렸다. 지식도 경험도 애정도 그다지였 나는 엄마의 텃밭에 일손을 도우려 할 때마다 미흡하여 혼나기 일쑤였다. 보람보다는 짜증스럽고 고됐다. 고작 주말 농작인데.


내가 시골에 내려와 보기 전까지 나는 몰랐었다.


내가 농사를 정말이지 싫어한다는 것을.

단지, 관찰자적이고 방관자적 태도로 자연과 농촌을 바라보며 너무나 만족해하고 있다는 것을.



시골로 내려와 70년 된 농가주택에 들어오고 나서야 나는 알았다. 시골의 전원을 느끼고, 관찰하여 쓰고, 그리고  책을 읽고 뭐 그렇게 한 발짝 물러선 시골의 여유를 너무나 사랑한다. 그것이 나의 생활이다.


나는 대지에서 일해 본 적이 없으면서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고 있다. 그 의미에 대해 골몰하며 담 밖의 산이며, 마당 안의 새, 고양이, 작은 식물들을 바라본다. 그것만으로 행복이 차 오른다. 아마도  '그것은 분명 나의 정신적 사랑이리라'



내가 대지를 사랑한다는 걸 나는 몰랐었다.
대지에서 일해 본 적이 없는 사람도 대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걸.
나는 대지에서 일해 본 적이 없다.
그것은 분명 나의 정신적 사랑이리라.

- 내가 사랑한다는 걸 몰랐던 것들 (나짐 히크메트)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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