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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Jul 28. 2021

그러므로, 나는 허투루 살 수 없다

여름날 텃밭을 가꾸며

아주 뜨거운 햇살이었다. 살아남기 위한 채소들의 몸부림, 뜨겁게 덥혀진 공기의 무게를 이고, 고개를 숙인다. 몸의 수분이 날아가 마른 잎들이 쪼그라들면 내 마음이 동한다. 더 더워지기 전에 밀짚모자 하나 쓰고 마당 텃밭 위로 수도꼭지를 틀어 물을 분사한다. 긴 호스에서 꿀렁거리며 나오는 물이 이내 밭으로 몸을 던진다.

'어떻게 이렇게 금방 생기를 찾니, 그런데 내가 어떻게 물을 안 줄 수 있겠니?'


생명을 딴다.


똑, 똑, 똑,

좀 여린 깻잎을 딸 때마다 잔 줄기에서 생명이 끊기는 소리가 났다.


뚝, 뚝, 뚝,

제법 잎이 넓어진 잎이 큰 깻잎을 딸 땐, 살아낸 시간만큼의 묵직한 소리가 났다.

뚝, 뚝, 뚝, 똑, 똑.


정적 속에서 잎 따는 소리, 토마토 따는 소리, 상추 잎 따는 소리만 들렸다. 화답하듯 나의 땀방울이 옥토에 쏟아진다. 어느 순간 불쾌감은 사라지고 그냥 그 상태의 나만 남는다.  그럴 때면 나는 생명을 거두어 먹고사는 일에 대해 복잡한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이 귀한 생명을, 초봄에 심어, 한여름까지 살아낸 이 강인한 생명을 내 손으로 거두는 행동에 대해 미안함을 가지는 동시에, 단단하고 건강한 생명력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나 역시 허투루 살지 말자고 다짐한다.  그 잎 한 장, 한 장이 소중해 부지런히 요리하고 남김없이 먹는다.


해 질 녘 마당에 앉아, 알이 듬성듬성 여물었지만 더 이상 자라지 않아 따서 삶은 옥수수를 먹으며 다짐한다. 더 이상 물러서지 않기로.


내가 잘하는 것은, 읽고 쓰는 일인데 사실 살아보니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조차 아주 아주 별것 아닌 재주였다. 번번이 공모전에서 탈락했다. 서점 진열대에 빛나는 책들을 보면 경외감이 들었고, 부러움이 일었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 잘 썼다고 생각하는 빈도는 자꾸만 사라져 갔다.


나는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재밌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진짜 펜을 들지 않았다.

마흔을 살아오면서, 여러 일들을 견디면서 잘하고 싶었던 일에서 거부당하고 소외당할까 봐 진짜 해내고 싶은 일을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알이 듬성듬성 여문 상품 가치 없는 옥수수를 다 먹고 옥수숫대를 한참 쥐고 있었다. 몇 알 없어서 더 달큼하고 맛있게 느껴졌던 내가 농사지은 옥수수를.


엄마에게 왜 힘들게 물값도 나오지 않는 채소를 가르냐고 했을 때, 엄마는 '재밌잖아, 내 손으로 기르는 채소가 얼마나 장하냐'고 대답하셨다.

나는 마흔 줄에 처음 텃밭을 가꿔보면서 마트에서 마주했던 반짝이는 생명은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았다.  아무리 정성 들여 키워도 들인 노력과 시간만큼의 대가를 받는 건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았다. 내가 시간을 들였으니 마땅히 그에 상응하는 수확이 따라와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나의 편견.


  내 생이 그러할 진데, 어찌됐건 주어진 환경에서 부지런히 살아내는 생명들처럼 마지막까지 내 깜냥 안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겠다는 희망을 읽었다. 오늘 내 몸에도 몇 알의 방울토마토와, 깻잎과, 가지의 생명이 흐른다. 그러므로 나는 허투루 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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