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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과거 삼팀 팀장 Dec 13. 2023

퇴사를 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10

#10. 가끔 출근하고 싶을 때가 있다. 아주 가끔.

#10. 가끔 출근하고 싶을 때가 있다. 아주 가끔.


제목만 보고 미쳤다고 할 수도 있다.

만약 내가 퇴사를 하기 전에 저 문장을 보았다면 나도 똑같이 반응했을 것이다. "이런 미X놈" 

그런데 실제로 퇴사를 하고 나서 보면 저런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물론 "아주 가끔"이라는 단어가 꼭 들어가긴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날에 출근을 하고 싶은지 말해보자면, 

- 오늘은 금요일이고

- 날씨는 춥지도, 덥지고, 비가 오지도 않은 화창한 날이고

- 지하철에서는 운 좋게 앉았고

- 부장님은 휴가를 가셨고

- 다음 주 월요일까지 보고해야 하는 보고서는 진작 검토를 다 받았고

- 점심은 내가 원하던 쌀국수를 먹었고

- 오후에는 한가하게 핸드폰으로 고향사랑기부제를 하고 있는 그런 날.

그런 날에 딱 하루 출근을 하고 싶다.

그래서 한가한 금요일, 직장인들만이 느낄 수 있는 그 느낌을 다시 느끼고 싶다. 한주를 무사히 보냈고, 내일부터 쉴 수 있다는 그런 기분 말이다.


또는 이런 생각도 한다. 

이미 나는 퇴사를 했지만 직장에 반나절만 출근을 하는 것이다. 이미 난 퇴사를 한 사람이기에 나에게 일을 시키지는 않는다. 대신 나는 오랜만에 만난 다른 직원들과 이야기를 하며 안부를 묻고, 지나가던 다른 팀장과는 지난번에 산 주식에 관해서 이야기를 한다. 전체 회사에서 나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이 많은 걱정과 고민을 갖고, 아주 긴박하게 일하고 있지만 있지만 나는 아닌 그런.

나는 오늘이 퇴근 시간이 되면 칼퇴를 하고 내일부터는 다시 안 나와도 되는 그런.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을 것이기에 아무런 부담 없는.


여기까지 글을 쓰다 보니 내가 회사를 다닐 때도 "출근" 자체가 싫었던 게 아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출근이 싫었던 게 아니라 출근해서 해야 하는 일. 즉,

-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고,

- 먹기 싫은 메뉴를 억지로 따라가서 먹어야 하고, 

- 쉴 틈 없이 빡빡하게 문서 작업하고, 보고하고, 수정하고, 재보고 하고

- 오늘 또 야근할 거라는 걱정을 하고, 

-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도 못 할 만큼 정신없는

그런 분위기가 싫었던 것이다. 물론 모든 회사생활이 그렇겠지만 우리들이 다니는 회사가 조금만 더 여유로워지고, 조금만 더 주변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출근"이라는 단어가 지금보다는 덜 싫어지지 않을까?


하지만 나도, 당신도 안다. 그건 불가능하다는 걸.



다시 무언가를 한다면 저런 스트레스를 적게 받을 수 있는, 재택이 가능한 일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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