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소모임

by 구의동 에밀리

회사에 ‘러닝 크루’라는 소모임 제도가 생겼다.

아무래도 한강 변이나 공원을 같이 뛰는 ‘러닝 크루(running crew)’에서 따 온 말 같았다. 취지는 ‘뜻 맞는 사람들끼리 학습팀을 만들어 오면 지원금을 주겠다’ 하는 제도였다.

물론 누가 봐도 그냥 놀고먹으려는 목적이 빤히 보이는 명목상의 스터디그룹으로는 신청할 수 없었다. 같이 앱을 개발한다든지, 매뉴얼을 만든다든지, 아니면 체험 보고서를 작성한다든지, 하여튼 뭔가 회사에서 ‘오!’ 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기로 약속해야 했다.

나도 한 팀에 초대받아서 합류했다. 점심값이 지원된다고 해서, 우리는 점심에 모여 회의했다. 그런데 회의를 빙자한 친목 도모가 아니고, 정말 회의였다!

“우리 이 항목은 어떻게 작성할까?”

“이 부분에는 이미지가 더 들어가야 할 것 같아.”

“여기는 개발자가 내용을 보충해 주는 게 좋겠는걸.”

이런 생산적이고 자발적인 회의라니, 신기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도 다 나처럼 은근히 날로 먹을 궁리를 하리라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일이 진척될수록, 단순히 노는 것보다 훨씬 뿌듯하고 동지애 같은 기분도 들었다.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도 그런 집단이나 관계를 동경했던 것 같다. 논문을 공동 집필하는 교수 부부라거나, 같이 글을 쓰고 피드백을 주는 작가 그룹에 대해 들을 때면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물론 공짜 밥과 간식 같은 유인책이 전무한 스터디그룹이었다면 시큰둥했을 것 같기는 하다. 글쎄, 애초에 지원조차 안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왠지 하염없이 놀기만 하다 끝나는 것보다는, 이렇게 뭐라도 남는 쪽이 조금은 내 성향이랑 맞는 것 같다.이런 소모임, 꽤 괜찮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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