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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생각하다

HR, 감정, 존재의 이유

by 문장담당자

"HR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생각하다"


처음 인사팀에 들어왔을 때 나는 그 자리를 ‘관리하는 부서’라고 생각했다.
사람을 뽑고, 평가하고, 보상하고, 보내는 일.
조직을 효율적으로 굴러가게 만드는 기획자.
그게 HR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고 몇 번의 채용과 이직, 평가와 진급, 보상과 사직을 지켜본 지금 나는 이 말을 더 자주 되뇐다.

“나는 HR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이고 싶다.”


HR은 숫자를 다루지만, 결국 감정을 마주한다

성과평가표, 연봉 테이블, 채용 지표, 퇴사율 분석…
인사담당자는 매일 숫자를 보고 판단을 내린다.

하지만 그 숫자 하나하나 뒤에는 항상 사람의 감정이 숨어 있다.

“왜 나는 B등급인가요?”

“저 팀장은 나를 평가할 자격이 있나요?”

“이 인상률이 내 1년을 말해주나요?”

“나, 이 조직에 중요한 사람이 맞나요?”

이 질문들은 보고서에 남지 않지만, 인사담당자는 그 말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듣는 사람이다.

그 감정을 대충 흘려보낼 수도 있지만, 그걸 기억하고 기록하는 사람이 되기로 나는 마음먹었다.


HR은 구성원 전체의 언어를 설계하는 사람이다

조직이 어떤 언어를 쓰느냐는 곧 조직이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여준다.

“그건 원칙상 안 됩니다.”, “기준대로 진행해 주세요.”, “절차에 따라 처리하겠습니다.”

이런 말은 맞지만, 사람을 무너뜨릴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회람 문구 하나, 인사공지 한 줄, 면담 메일 제목 하나에도 감정을 담는다.

“충분히 애쓰셨습니다.”
“당신이 남긴 결과가, 조직을 움직였습니다.”
“다음 기회를 함께 만들고 싶습니다.”

이 문장들은 복사-붙여넣기 할 수 없다.
그 사람을 알고, 이해하고, 기억해야 비로소 쓸 수 있는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말을 쓰기 위해 이 자리에 앉아 있다.


인사팀은 실무가 아니라 태도다

처음엔 나도 HR을 실무의 영역이라 생각했다.
계획서, 마감일, 승인 프로세스, 교육 운영, 제도 설계…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나는 이 자리에서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 실력인지를 알게 되었다.

누구를 먼저 눈여겨보는가

어떤 말에 반응하는가

어떻게 설명하고, 어떻게 위로하는가

HR은 조직의 얼굴이다.
그리고 그 얼굴이 ‘차가움’이 아니라 ‘신뢰와 이해의 표정’이길 나는 바란다.


나는 사람을 보는 자리에서 나를 다시 본다

누군가의 경력서를 읽다가, 면접장에서 주저하는 말투를 듣다가, 퇴사자 인터뷰에서 눈을 피하는 표정을 보다가, 문득, 나를 돌아보게 될 때가 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지금 이 사람을 어떻게 기억할까?”
“그리고 이 사람이 언젠가 나와의 순간을 어떻게 기억할까?”

나는 인사담당자이지만, 그 이전에 그냥 사람이고, 동료이고, 한 명의 구성원이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워지고, 더 따뜻해지고 싶어진다.


그리고 오늘도, HR이라는 이름으로

나는 회의실에서 말한다.
“이건 사람의 감정을 고려해야 합니다.”
나는 메일을 쓰기 전에 쉰다.

“이 문장, 상처로 읽히진 않을까?”
나는 제도를 바꾸기 전에 되묻는다.
“이 변화, 납득 가능하게 설계됐는가?”

이건 절차가 아니라 태도다.
그리고 그 태도는 사람을 믿는 직업의 본질이다.


나는 HR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기억하고,
사람의 언어를 설계하고,
사람을 잊지 않으려는 사람이다.


그게 내가 이 자리에 머무는 이유다.
그리고 내가 오늘도 퇴근 후 사람을 다시 생각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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