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 조직의 속도, 감정의 비대칭
“승진하셨다면서요? 축하드려요!”
“이제 팀장 노선 타시는 거 아니에요?”
“와, 부럽다. 나는 언제쯤…”
나는 반도체 장비사에서 대리로 입사해 3년 만에 과장이 되었다.
연차 대비 빠른 승진이라 사람들은 놀라고 나는 축하를 받는다.
그 축하가 고맙고 어깨가 펴진다.
하지만 그 모든 말들을 들은 뒤 혼자 책상에 앉으면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이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일까?”
“나보다 먼저 왔던 선배들은 어떤 마음일까?”
“기다리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어야 하지?”
승진은 성과로만 정해지지 않는다
조직 안에서 승진은 공식처럼 설계된다.
성과 기준, 역량 요건, 연차 충족, 평가 결과…
인사담당자는 그 기준을 정리하고, 운영하고, 설명한다.
하지만 승진은 숫자보다 훨씬 더 복잡한 감정이 엉킨 사건이다.
누군가의 기쁨은, 다른 누군가의 박탈감 위에 생기고, 누군가의 인정은, 또 다른 누군가의 상처를 건드리고, 누구는 조용히 웃고, 누구는 조용히 무너진다.
그래서 승진은 한 사람만의 승진이 아니라 조직 전체의 분위기를 흔드는 파동이다.
기다림은 계산되지 않는다
승진 심사표에는 ‘근속연수’ 란이 있다.
하지만 그건 단지 숫자일 뿐, 진짜 기다림은 수치화되지 않는다.
후배가 먼저 승진하는 걸 두 번 이상 본 사람의 속앓이, 과거의 실수 한 번이 지금까지 따라붙는 무게, 말은 없지만 눈빛에 담긴 “왜 나는 아닐까”라는 질문.
그 모든 기다림은 조직이 보기엔 ‘개인의 몫’이지만, 사실은 그 조직이 만든 심리적 후유증이다.
나는 그것을 매년 느낀다.
승진이 발표된 다음 날, 복도에 퍼지는 미세한 공기의 변화.
눈을 마주치지 않는 선배, 말수가 줄어든 동기, 어색하게 웃는 후배.
승진은 한 사람을 올리는 동시에 여러 사람의 감정을 눌러놓는다.
발탁 승진자는 조용해야 한다
나는 발탁 승진을 했다.
대리에서 과장으로 3년 만에.
누군가는 축하했고, 누군가는 놀랐고, 누군가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반응 앞에서 기뻐하기도 조심스러웠고, 겸손하기엔 불편했고, 웃기엔 미안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발탁 승진자는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이성적이어야 하고, 겸손해야 하고, 자신의 역할을 조용히 더 잘해야 한다.
그것은 ‘축하’가 아니라 ‘증명’의 시기였다.
인사담당자는 ‘승진의 언어’를 다르게 써야 한다
승진은 공정해야 한다.
그건 맞다.
하지만 동시에 승진은 조직의 신뢰를 지키는 방식이기도 하다.
나는 요즘 고민한다.
승진 발표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승진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 것인가.
승진하지 않은 사람에게 어떤 배려를 할 것인가.
인사담당자는 단순히 ‘누가 올라갔다’를 공지하는 자리가 아니라 조직 전체에 ‘당신도 이 자리에 닿을 수 있다’는 감각을 전하는 역할이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공지문을 다시 쓴다.
그 안에 ‘축하’보다 ‘성장’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쓰려고 한다.
누군가에겐 그 문장이 오늘을 버티게 해주는 이유가 될 수 있으니까.
승진은 경쟁이 아니라 과정이 되길
누군가는 빨리, 누군가는 천천히, 누군가는 결국 올라가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사담당자는 그런 결과를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 과정을 납득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나는 지금도 가끔 나보다 승진이 늦어진 동료를 마주할 때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인사하고, 더 자연스럽게 말하려고 애쓴다.
내 승진이 그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그리고 나는 오늘도 승진표 위의 숫자보다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공기를 먼저 느끼려 한다.
“승진은 누군가의 기다림 위에 쌓인다.
그리고 나는 그 기다림이 너무 오래되지 않도록
조직의 언어를 다듬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