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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 없는 조직의 진짜 문제

Chapter 2. 인사담당자로 살아남기

by 문장담당자

"야근 없는 조직의 진짜 문제 - 칼퇴한다고 행복할까?"


“우리 회사는 야근이 없어요.”
그 문장은 요즘 면접장에서 자주 등장하는 자랑거리다.
“정시 퇴근 문화 정착으로 야근을 강요하지 않아요.”
“업무시간 외 메시지를 자제하고 있어요.”
그 말을 듣는 구직자의 눈빛은 반짝인다.
‘워라밸’이라는 단어는 마치 면역력이 높은 조직을 증명하는 인증 마크처럼 들린다.
나도 처음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뿌듯했다.
좋은 조직에 있다는 느낌.
건강한 문화를 설계하고 있다는 자부심.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질문이 생겼다.
“야근이 없다는 건 과연 ‘일이 건강하다’는 뜻일까?”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지칠까?”
“정시에 퇴근하면서도, ‘사는 것 같지 않다’는 말을 왜 자주 들을까?”


어느 날, 퇴근길에 마주친 구성원 한 분이 내게 조용히 말했다.
“요즘 퇴근은 정시에 하는데요…머리는 아직 일터에 있어요.”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몸은 사무실을 떠났지만, 마음은 아직도 회의실 안에 있는 사람.
그건 과연 ‘퇴근’일까?


우리 회사는 야근이 거의 없는 편이다.

고객사 데모나 장비 납기 전 야근이 필요한 시기가 있긴 하지만, 대다수의 구성원들은 야근을 하지 않는다.
실제로 유연 근로시간제의 한 종류인 재량 근로시간제를 운영 중에 있기도 해서 별도의 업무 시간 관리를 하지 않기도 하고, 성과 중심의 문화로 ‘늦게까지 남아 있는 사람’이 무조건 잘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회의가 반복되거나, 의사결정이 늦어지거나, 명확하지 않은 지시가 일을 다시 반복하게 만들 때, 사람들은 퇴근시간을 지켜도 ‘일에 잠식당한 느낌’을 받는다.


나는 점점 알게 되었다.
“워라밸은 시간표로 보장되는 게 아니라 일의 밀도와 구조에서 시작된다.”


사람은 일하는 동안 자주 혼란에 빠진다.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는지, 이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디까지가 내 책임이고, 어디서부터 놓아야 하는지.
그 경계가 불분명할수록 사람은 ‘일과 삶’의 균형을 잃어간다.


시간이 아니라 "감정이 남지 않는 것"이 진짜 퇴근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퇴근시간이 정시라도 일에 대한 감정이 정리되지 않으면 사람은 여전히 ‘일 속에 있다.’

인사담당자인 나는 ‘야근 없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 결국 ‘지치지 않는 조직’을 만드는 일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생각한다.


‘일과 삶의 경계’를 회복하는 것,
그 경계에서 ‘일의 의미’를 되묻는 것, 그게 진짜 워라밸의 출발점이라는 걸.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자주 이렇게 기록한다.
“업무의 우선순위가 불명확한 팀.”
“비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 반복되는 수정 요청.”
“주니어 직원의 책임 과부하.”
그런 작고 사소한 피드백들이 ‘정시 퇴근’보다 더 큰 개선의 단서가 된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야근 없는 게 어디예요.”
맞다.

그것조차 지키지 못하는 조직도 많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 아니라 사람을 보는 인사담당자’이고 싶다.
퇴근 시간 이후에도 마음이 붙잡히지 않도록,
일하는 동안 스스로의 리듬을 잃지 않도록,
그 시간의 구조를 고민하는 사람.


조직의 워라밸은 슬로건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건 구성원의 일상에서, 회의 안에서, 한 명의 업무 흐름을 묻는 태도 안에서 완성된다.

우리는 때로 “야근이 없으니 좋다”라고 말하면서도 “사는 것 같지 않다”라고 털어놓는다.
그 말속의 모순은 아직 우리가 일과 삶을 분리해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도 퇴근 시간에 나는 내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조용히 생각한다.
“오늘의 워크가, 내일의 라이프를 파먹지 않게.”
그건 나를 위한 주문이기도 하고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다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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