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 책으로 뭘 할 수 있을까? - 활동하는 독서가들에게
책읽기를 독자와 저자와의 대화라고 흔히 비유하지만, 다른 콘텐츠들과 비교하면 책의 상호작용은 그렇게 역동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앞서 말했듯, 게임과 같이 나의 액션이 곧바로 리액션으로 피드백되지도 않고, 연극과 같이 배우와 관객이 호흡을 느끼고 교감하고, 관객의 반응이 극 흐름에 즉각적으로 반영되는 식으로 구성되지도 않는다. 유튜브 영상만 하더라도 내가 영상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다는 식으로 반응을 보낼 수 있고, 다른 시청자가 댓글을 남기거나 채널의 주인이 응답하면서 상호작용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반응을 보내더라도, 책은 답하지 않는다. 책은 생명을 가진 유기체라기보다는 무생물에 가깝다. 책의 부동성이 오히려 새로운 활동을 가능하게 하기도 한다. 책은 그 자체로 하나의 공간이고, 무게를 가진 물리적 실체이다. 책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독자가 적극적으로 움직여볼 여지가 생긴다. 지금부터는 책으로 할 수 있는 여러가지 활동을 소개해보려 한다. 이 활동에는 책읽기가 포함되기는 하지만 책읽기보다 활동이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자기만의 방에서 홀로 묵독하는 독서가가 어느날 나와는 다른 얼굴을 가진 독자와 마주하고 싶어졌다면 이런 활동들에 참여해보자.
책과 모임들
독서모임은 책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사교 활동 중 가장 일반적인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독서모임의 큰 장점 중 하나는 어려운 책을 시도하게끔 해준다는 것이다. 무거운 철학책이나 과학책, 종교책 등은 전문지식 없이는 읽어내기 힘들다. 혼자서 다른 해설서들을 읽고 뜻을 찾아가며 독파해내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인들이 시도하기 쉬운 방법은 아니다. 나만 읽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같이 읽는다고 하면 왠지 모르게 책임감이 생긴다. 친구와 여행을 가게 된다고 하면 출발하기 전에 귤 몇 개를 챙겨가는 마음과 비슷하달까. 만약 혼자 여행을 간다면 별 간식을 챙기지 않겠지만 동행인이 있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게 되는 것처럼, 책을 읽을 때에도 같이 읽는 사람이 있음을 아는 것만으로도 다른 읽기가 가능해진다. 독서모임에는 여러가지 형태가 있다. 책을 읽고와서 같은 시간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기본적인 포맷에 더해 함께할 수 있는 다른 활동들을 소개해보려 한다.
1) 글쓰기와 함께 읽기
책에 대한 감상이나 생각들을 글로 적어 돌려 읽는 독서모임이다. 독후감의 트라우마로 인해 책과 글쓰기를 연결하는 데 거부감이 있을 수도 있지만, 선생님이 보기 위한 독후감이 아닌 독서모임 사람들이 보기 위한 독후감은 다를 수 있다. (특정한 목적이 있는 합평이 아닌 이상에야) 독서모임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글을 평가하지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만큼 표현해서 내어놓는 일은 떨리지만 설레는 일이기도 하다. 글쓰기와 함께하는 독서모임은 선뜻 하겠다고 결심하기 쉽지 않을 수 있지만 나만의 생각과 감상을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데에 무척 효과적이다.
자유롭게 쓰는 게 가장 좋다. 반드시 줄거리 요약이 포함될 필요도 없고 나의 느낀 점을 줄줄이 서술하지 않아도 된다. 책을 읽은 뒤 하고 싶은 말이 생겼다면 그저 있는 그대로 적어보는 것도 좋다. 자신의 일기를 남이 읽을 수 있게 윤색한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메뉴를 고를 때도 '아무거나'가 제일 난감하듯 자유 주제가 글쓰기가 익숙치 않은 사람들에게 곤혹스러울 수도 있다. 이럴 때는 책과 관련해서 공통된 키워드나 간단한 주제문을 정해서 해당 주제로 글을 쓰는 것도 방법이다. 어떤 방식이건 간에 내가 나의 생각, 하고 싶은 말을 남들이 알아볼 수 있게 정리되기만 하면 된다.
감상을 나누는 것을 넘어 더 깊이 이야기를 끌고가고 싶다면 발제문 쓰기를 추천한다. 발제문은 책 내용에 대한 전반적인 요약과 주요하게 다룰 논의점들, 질문거리, 글쓴이 본인의 조사 및 생각을 첨부한 글이다. (경우에 따라 자신의 생각을 넣지 않아도 된다). 독서모임이 보다 심화된 영역을 다루는 학회적 성격이 강하거나, 상대적으로 어렵다고 알려진 책을 읽자고 결의(!)를 한 경우에는 한 사람이 총대를 맡아 발제문을 쓰면 (발제자는 괴롭지만) 보다 밀도 높은 독서모임을 할 수 있게 된다.
책을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록, 책의 내용과 독자인 내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다각적으로 이해할 수록 질문이 더 참신해지고 재미있어진다. 발제문을 반드시 비평문처럼 쓰지 않아도 되고 다른 사람들이 논의를 진행하기에 알맞게 내용을 잘 다듬고 힘있게 얘기하기 위한 판을 깔 수 있는 좋은 질문만 포함시켜 써도 충분하다.
2) 교환 읽기
교환 읽기는 두 명으로 할 수 있는 독서모임이다. 한 명의 사람과 각자의 책을 주고받아 읽은 뒤 돌려주는 읽기이다. 교환 읽기를 할 때 규칙은 구입한 책일 것, 서로의 책에 메모를 해도 불편하지 않은 사이일 것, 이 두 가지다. 방법은 간단하다. 책을 교환한 뒤에 책에 메모를 하며 읽는 것이다. 각잡고 억지로 멋드러진 감상을 중간중간 쓴다기보다는 솔직한 감상이나 감정표현을 적는 걸 추천한다. 나의 경우에는 예상치 못한 전개가 펼쳐졌다면 밑줄을 치고 조그맣게 '미친'이라고 적기도 하고 웃음이 터진 부분에는 'ㅋㅋㅋㅋㅋ'이라고 적는다. 의문이 생기는 지점에서는 조금 길게 질문을 적어보기도 한다. 서로의 책을 다 읽은 뒤 돌려받으면 상대방이 쓴 메모가 구석구석 적혀있다. 상대가 어떤 문장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따라가며 읽을 수 있다. 너는 여기서 이렇게 생각했구나, 너는 여기서 슬펐구나, 놀랐구나, 알게 되었을 때 책을 사이에 둔 묘한 유대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전산화 시스템이 갖추어져있지 않은 도서관에서는 대출 기록 카드가 책에 붙어 있었다. 내가 빌리기 이전에 이 책을 빌렸던 사람들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거기에 내가 아는 사람이 적혀있을 때 반가웠던 기억도 있다. 같은 책을 읽었다는 사실은 괜히 동료애를 갖게 하고, 그 상대방이 내가 아는 사람, 나의 특별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복잡미묘한 감정이 된다. 책읽기는 홀로 하는 고독한 일이지만 고독과 고독을 교환하면 신기하게도 연결되어 있다는 착각이 든다. 그 착각을 함께 나누어보고 싶다면 교환 읽기를 신청해보자.
3) 작가와의 모임
작가와의 모임은 작가와 함께 독자가 책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모든 형태의 모임을 지칭한다. 북토크, 북콘서트, 작가와의 만남, 작가 초청 행사, 디너쇼 등등 다양하게 이름붙여지지만 작가와 독자가 직접 대면한다는 점에서 거의 동일하다. 작가와의 모임은 작가가 대부분의 시간동안 말을 하는 강연, 작가는 진행을 맡고 독자의 말로 채워지는 포럼 등등 여러 형식이 있을 수 있다.
주로 신작이 나왔을 때 책 홍보를 위해 작가와의 모임이 자주 열리는 편이니,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 나온다면 여기저기 탐색해보기를 추천한다. 작가의 인스타그램, 혹은 해당 책을 낸 출판사의 인스타그램에는 행사 내용이 자세히 나와있을 확률이 높다.
꼭 신작이 나오지 않을 때이더라도 비정기적으로 작가와의 만남이 불쑥불쑥 열리기도 하는데, 모든 작가들의 강연, 행사를 한 번에 찾아볼 수 있는 공공 플랫폼은 현재까지는 없다. (프랑스처럼 지역마다 독서 온라인 플랫폼을 두어 한 번에 정보를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크게 세 가지 경로로 찾아볼 수 있다. 지역 문화센터 강연, 동네책방, 출판 단체 행사 및 강의이다.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유명한 작가들이 지역 문화센터 등에 강연을 오곤 한다. 아무래도 공공기관에서 주최하다보니 강연의 형태가 많고 그 내용도 교육적이거나 실용적일 수 있다. 지역 도서관이나 현수막 등에 광고가 걸리는 편이니 산책을 하면서 슬쩍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동네책방에서 열리는 북토크는 좀 더 작은 규모로 작가의 내밀한 작품 세계, TMI와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듣기 더 유리하다. 몇몇 독립서점이나 동네책방이 북토크를 자주 여는 편이니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 계정을 팔로우해두면 뜻하지 않게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작가의 북토크 소식이 날아오기도 한다. (위에서 소개한 '동네책방' 사이트를 참고하자).
출판 단체가 주도하는 행사로는 출판도시문화재단이 여는 '파주북소리',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여는 '서울국제도서전', 한국문학번역원이 여는 '서울작가축제' 등이 있다. 각 행사들에서는 작가 강연 타임테이블이 따로 나오고, 행사를 계기로 새로운 책들 출간하기도 한다. 서울국제도서전은 보통 6월에 삼성 코엑스에서, 서울작가축제는 독서의 달인 9월에 서울생활문화센터에서, 파주북소리는 10월에 파주 지혜의숲에서 열린다.
번외) 독서모임 몇 명이 가장 적당할까?
3~5명 정도의 소규모 독서모임과 7~10명 정도의 대규모 독서모임 정도로 구분해볼 수 있는데 각자 장단점이 있다. 소규모는 참여한 사람들의 발언 기회가 비교적 골고루 돌아갈 수 있고 이야기를 나누며 더욱 깊게 논의를 진행시킬 수 있다. 다만 한 두 명이 불참하기 시작하면 인원이 여의치 않아 모임이 취소되거나 연기되기 쉽다. 늘 참여하는 사람들만이 있어 의견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있다면 새로운 방향으로 이야기를 뻗어나가기 어려울 수도 있다. 소규모 독서모임을 오래 이어가고 싶다면 친밀한 사람들과 단단한 약속을 한 뒤에 시작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대규모 독서모임은 여러 사람들이 함께 하는 만큼 각자의 색다른 경험들을 공유할 수 있어 생각의 지평이 넓어지는데 더 유리할 수 있다. 다만 할 말이 많은 사람이 말을 독점하게 되면 사람들이 균일한 발언 기회를 나누어가지기가 상대적으로 어렵고 '나 하나쯤은 빠져도 되겠지?'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면 의외로 소규모 독서모임보다 더 쉽게 와해되기도 한다. 대규모 독서모임은 강력하게 모임을 이끌어가는 호스트 격의 사람이 있거나, 기간을 정해두어 집중도 있게 진행하는 프로젝트 성 독서모임일 때 보다 더 잘 운영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