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엄마가 된다.
인내와 희생 없는 육아는 없다
육아라는 것은 너무도 슬프지만 당연하게도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역할이 수행이 됩니다. 엄마의 시간, 아빠의 노력, 조부모의 헌신, 그 외의 도움을 주시는 많은 분들의 인내와 희생이 모아져 한 명의 아이가 자라게 되지요. 우리가 육아를 힘들고 어려운 것이라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희생을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부모라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준비를 하였다고는 하나 생각보다 꽤 큰 희생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부부간의 역할 분담을 놓고 분쟁도 발생하게 됩니다.
희생의 비례 법칙
나를 돌아봤을 때, 내가 부모로서 하는 육아보다 꽤 많은 개인적인 시작을 누리고 살았다면 그것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희생이 녹아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는 그래도 내가 하고자 마음먹은 일을 했다면, 그것은 나 나의 배우자가 되었든, 부모가 되었든 혹은 아이들이 방임되었든 어떤 누군가는 희생이 되었기 때문에 내가 그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육아를 하면서 부부가 서로가 희생을 했다고 생각하며 다툼이 일어나게 되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각자 생각하는 희생의 양이 차이가 나기 때문인데요. 희생이라는 것이 정확하게 무게를 재거나 혹은 부피가 있는 물질적인 상태가 아닌 만큼 각자 생각하는 정도에 따라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부부간에 대화를 하면서 이 간극을 줄여 나가야 하지만 서로의 입장만 이야기한다면 그 차이를 줄일 수 없겠죠? 현명하게 서로가 희생한 부분에 대한 확실한 인정의 중요한 부부입니다. 저 역시 이 부분이 생각과는 다르게 쉽지 않은 부분이기도 하고요.
보상의 대한 기대는 사치
육아에 대한 보상은 바로 아이들 그 자체입니다. 사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바른길로 커간다면 그만한 보상이 없죠. 하지만 이 보상에 대한 개념은 상당히 주관적이며 추상적이기에 애매할 수 있습니다. 향후 20년? 혹은 30년 정도 후에 지금 이 시절을 회상하였을 때 “아 그때 고생은 했지만 이 정도면 아이들이 잘 자라주었으니 보람차다.” 사실 이런 정도의 보상이거든요.
사실 ‘내 새끼 키우는데 무슨 보상을 바라나’라고 하실 수 있겠지만 인간의 능률이라는 것이 적절한 보상이 있어야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노력 대비 적정한 보상을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육아에 대한 현실적인 보상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런 건 어떨까요? 한 달에 딱 하루, 10시간은 아무것도 생각 안 하고 오로지 나만 생각하고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는 것, 그것도 타협만 잘된다면 저 절한 보상이 될 수 있겠죠? 아니면 하루를 기준으로 적절한 육아와 집안일을 분배를 통해 각자의 자유시간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도록 상호 간에 협력하는 것도 좋은 보상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내와 희생이 없는 육아도 없고, 그만큼 행복하지 않은 육아도 없습니다. 아이가 엄마, 아빠를 생각하는 그 마음에 감동하게 되고 또 아이의 재롱에 행복하게 되거든요. 저마다 다른 포인트의 행복이 있고 그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육아입니다. 아이들 ‘때문에’ 내가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덕분에’ 이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불변에 진리를 다시 한번 떠올려 보는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