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장녀일기

장녀 대물림

by 지선

29살 겨울, 크리스마스 날. 나는 결혼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도 낳았다. 어르신들은 곧이어 둘째를 낳으라고 권하셨지만, 나는 아이가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시간을 두고 생각하려 했다. 지금 내 딸은 초등학교 6학년이지만, 여전히 둘째를 낳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남편이 가끔 “둘째 가질까?”라고 물어보기도 하지만, 내 대답은 늘 같다. 더 이상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았다.


이 결정이 단순히 나이가 들어 힘이 들어서도 아니고,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어서도 아니다. 사실, 나는 첫 아이를 무척 잘 낳았다. 의사와 간호사도 놀랄 만큼 순산이었다. 둘째를 낳으면 잘 키울 자신도 있다. 하지만 둘째를 낳지 않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내 딸이 첫째가 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내 딸이 첫째로서의 무게를 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13살, 만약 둘째를 낳는다면 10살 넘게 터울이 날 텐데, 그러면 언니로서의 책임감이 커질 것이 분명하다. 솔직히, 나는 아이에게 장녀의 짐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외동딸로 남기를 바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생각은 점점 더 확고해졌다. 딸에게 동생이라는 책임을 떠넘기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는 3살 터울의 동생이 있다. 어릴 적,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면서 우리는 거의 놀아준 적이 없다.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각자 학교 생활로 바빴고, 나는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바쁜 일상 속에서 동생과의 시간은 거의 없었다.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동생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몇 번 함께 영화를 보거나 쇼핑을 하러 간 것이 전부였다. 결혼 후에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매끼리 데이트도 하고, 쇼핑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지만, 우리 자매는 서로 소통하거나 공감대를 형성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았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 잠깐 마주치는 시간이 전부였다. 내가 힘들 때나 진로를 고민할 때 부모님과 상의한 적이 없듯이, 동생과도 그런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동생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각자 진학과 진로에 대해 고민했고, 스스로 선택했다.


내가 둘째를 낳고 싶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도 장녀라는 타이틀 아래 힘들어했고, 장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 내 딸에게 그 무게를 지우고 싶지 않았다. 둘째를 낳지 않겠다는 결심은 점점 더 확고해졌다.


첫째가 유치원에 입학하던 때가 기억난다. 아이는 친구를 사귀었고, 그 친구의 부모가 내 새로운 친구가 되었다. 타지에서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이런 만남이 무척 즐거웠다. 그래서 아이들과 자주 어울렸고, 자연스럽게 부모들끼리도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다양한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우리 아이의 자기 표현이 강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집에서는 몰랐던 부분이었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생기기 시작했다. 사실, 꼭 양보해야 할 상황이 아닌데도 나는 아이에게 양보와 배려를 강요하고 있었다. 내 아이에게도 내 성격과 기질을 물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를 보며 나는 거울을 보는 듯했다. 자기 표현이 확실한 아이였는데, 어느 순간 지나친 친절과 배려로 인해 자신이 상처받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익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런 모습들이 모두 나쁜 건 아니지만, 나는 나이가 들면서 깨달았다. 배려는 필요한 사람에게 해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내가 가장 싫어했던 내 모습을 내 딸에게서 보면서 이래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딸에게 배려와 친절, 양보를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딸은 첫째가 아니라 외동딸이지만, 내 눈에는 장녀의 느낌이 스며들고 있었다.


나는 끊임없이 내가 만들어 놓은 ‘장녀’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 불편함이 내 아이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래서 딸에게 미안했고, 내가 틀렸음을 깨닫고 고쳐나가는 중이다


우리 아이에게 내 자신이 투영되는 사실이 너무 싫었다. 마치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장녀’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거부하듯이 말이다. 딸이 나처럼, 나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같은 고민과 무게를 짊어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둘째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딸에게 강요했던 배려와 양보의 태도도 고치려 노력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오랫동안 장녀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써왔다. 장녀로서의 책임감과 무게가 나를 짓눌렀고, 그 부담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 아이에게 같은 짐을 지우고 있었음을 깨달았을 때, 나는 깊은 후회와 미안함을 느꼈다.

나의 과거와 현재를 되돌아보면서, 나는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장녀로서의 무게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쳤지만, 그 그림자는 여전히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내 딸이, 그리고 나 자신이 더 이상 그 무게에 얽매이지 않도록, 나는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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