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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선 May 27. 2024

K - 장춘기

엄마가 전해준 위로

난 장녀라는 주제로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장녀로서의 컴플렉스를 느끼는게 맞는가? 그렇게 느껴도 될만큼 나는 장녀의 노릇을 했는가? 내가 장녀 컴플렉스를 가질 자격이 있나? 고민했다. 난 그 누구보다 사랑 받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죄책감 같은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럴 자격도 없으면서 장녀를 너무 운운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일 전 아이가 수학여행을 가고, 신랑도 출장을 간 상태라서 엄마를 만나러 갔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어릴 때는 엄마를 자주 만나러 갔지만 아이가 기관에 가기 시작하고 학교에 다니면서 엄마를 만나러 가는 횟수가 점점 줄었다.  엄마를 만나러 가더라도 가족과 함께 집으로 찾아 갔고, 엄마와 단둘이 데이트는 결혼을 하고 다섯 손가락이 접힐 정도였다. 기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의 거리인데도 핑계일 수 있지만, 잘 안됐다. 아니 귀찮음이 더 컸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엔 엄마를 만나고 싶었다. 맛있는 것도 사드리고 단둘이 데이트도 하고 싶었다. 헌데, 나도 신랑과 아이 없이 시간을 보내는 건 10년이란 시간 이래 처음이었다. 혼자가 처음이라서 오로지 혼자 있고 싶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엄마랑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의무감이 느껴졌다. 장녀로써 의무감인지 내 마음에서 엄마를 만나고 싶은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난 내 시간도 가지고 엄마도 만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기차를 타고 엄마를 만나러 갔다. 


오랜만에 엄마를 만나니 좋았다. 엄마와 함께 맛있는 것도 먹고 백화점 구경도 했다. 엄마는 지나가면서 맛있는 보이면 뭐든 사주려고 했고 옷이든 운동화든 사줄테니 골라 보라고 했다. 엄마에게 뭔가를 받는다는게 미안해서 필요 없다 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엄마 마음을 알고 있다. 없는 사정이지만 오랜만에 자신을 만나러 온 딸에게 뭐든 사주고 싶었을 것이다. 엄마 앞에서 딸을 키우는 엄마라는 위치와 엄마에게는 딸인 내 위치의 마음이 교차 했다. 추가로 나는 첫째딸 이자 장녀였다. 뭐든 주고 싶은 엄마 였지만 난 받을 수 없었다.그렇게 40년 이란 시간을 살아서 어색하기도 했지만 이미 많은 것을 받고 있었다. 김치는 해마다 물론이고 밑반찬이나 야채 고기 과일 된장 고추장 참기름 젖갈 등등 다양하다. 엄마가 만든 밑반찬과 된장 고추장은 언제든 받는다. 엄마는 이렇게라도 딸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이면 충분 했다. 그리고 나도 사랑이 느껴져서 항상 감사한 마음이다. 


그렇게 엄마와 나의 데이트가 끝나고 엄마와 헤어지는 시간이었다. 먼저 가는 뒷모습을 서로가 보기 싫어서 먼저 보내려고 하고 있었다. 엄마 마음을 알기에 내가 먼저 돌아서 왔다. 그 순간 엄마가 나를 불러세웠다. “지야~“ 언제나 나를 그렇게 부른다. ㅇㅇ엄마라고 부르지도 않고 항상 애칭으로 부른다. 엄마를 되돌아 보니 5만원짜리 지폐 하나가 손에 쥐어 있었다. ”엄마보러와줘서 고마워. 이건 차비해.“ 길가에 서서 나는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고 엄마는 손에 쥐어 주려고 몸짓을 했다. 못이겨 5만원권 지폐를 받아서 돌아섰다. 가끔 보지만, 집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엄마와 헤어지는 그 순간이 너무 슬퍼 눈물이 났다. 


기차를 타기 위해서 지하철을 타러 내려와서 미안한 마음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오랜만에 엄마 만나러 와서는 용돈만 받아 가네.“ 어색한 말투로 이야기 했다. 

엄마는 대답했다.

”엄마도 딸한테 용돈 주는거 해보고 싶었어. 우리딸 어릴 때 너무 고생 시켰지.“

전화기 반대편에서 들려 오는 엄마목소리가 떨렸다. 여태 장녀로서 힘든 시절에 대해서 글로써 쏟아 붓고 있었는데...  난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야. 뭘...조심해서 들어가요 고마워요. “

”그래 조심해서 들어가고 도착해서 연락해. 사랑해 우리딸 “ 

“나도 사랑해”서로가 전화를 끊었다. 


엄마의 그 한마디가 내 마음에 응어리가 다 풀려지는 느낌이들었다. 내가 장녀로서 살아오면서 혼자서 아파했던 시간들이 모두 위로가 됐다. 사실 엄마는 항상 나를 위하고 염려하고 첫째 딸로서 내가 힘들어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엄마는 항상 미안해했다. 그사실을 모르지 않았지만 이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엄마의 말한마디에 내 삶이 위로 받았다는 건 내가 이글을 쓰고 원하는게 무엇인지 알았기에  엄마의 마음이 더 와 와 닿았던 것 같다.내가 이글을 쓰는걸 부모님은 몰랐다. 하지만 글의 막바지에 들어서 엄마의 말한마디는 꿈같았다. 의무였든 엄마가 보고 싶었든 엄마를 보러 기차를 타고 급하게 온 여행이었다. 거기에 엄마의 말 한마디가 더해져 이로써 오늘 하루가 더 행복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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