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녀를 알아 보는 눈.장녀의 시선
"너 장녀지?"
"응, 너도?"
"딱 보면 알아. 우린 장녀니까."
장녀끼리의 대화는 이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나도 모르게 장녀를 알아보는 능력이 생겼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몇 번의 대화를 나누다 보면, 상대방도 장녀임을 느끼게 된다. 그 순간, 나는 묻고 싶어진다. "너 장녀지?" 이 질문은 우스꽝스럽지만, 남들이 모르는, 아니, 아무도 몰라주는 장녀만의 속내를 내가 이해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쩌면, 장녀들만이 느끼는 서운함을 서로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장녀를 알아보는 데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는, 나보다는 남을 우선시하는 배려심이다. 필요 이상의 배려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 역시 그런 배려를 받는 것이 어색하고 불편해질 때가 있다. 그래서 가끔은 오지랖을 부리며 "너 장녀지?"라고 묻곤 한다. 그럴 때면 상대방도 나와 같은 마음임을 느끼고, 우리는 서로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며, "우리끼리 있을 때만이라도 남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하자"고 다짐하곤 한다.
두 번째로, 장녀들은 칭찬에 인색하다. 칭찬을 잘하지도 못하지만, 칭찬을 받는 것도 쉽지 않다. "너 오늘 참 예쁘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다. 손사래를 치고,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당황하게 된다. 그게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언제나 상대방이 우선이었던 나는 나를 인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세 번째 특징은 말수가 적다는 것이다. 밖에서는 활달해 보이지만, 집에 오면 마치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이 없어진다. 부모님이 지시하는 일은 척척 해냈고, 잔소리도 들을 일이 없었다.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내 선에서 처리했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부모님께 시시콜콜 이야기한 적도 없다. 그렇게 나의 침묵은 점점 당연해졌고, 부모님이 그 모습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때쯤, 내 안에 서운함이 쌓여갔다.
네 번째로, 나는 내 이야기를 남에게 잘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이야기는 끝도 없이 들어주지만, 내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나는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것이 나의 장점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상담일을 꿈꾸기도 했다. 장녀라면 이 부분에 공감할 것이다.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내 속내를 들키고 싶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남에게 양보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다 보니 정작 나 자신은 돌보지 못하는 것이다. 남을 배려하고 챙기다 보니 내 마음은 항상 우울하고 불안했다. 하기 싫은 배려를 억지로 한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나는 내가 가식적이라고 느끼기도 했다. 물론, 배려는 필요하다. 하지만 배려는 진정으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해야 하며, 때로는 남보다 내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이 모든 것이 내 성격 때문인지, 아니면 장녀였기 때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나는 장녀였기 때문에 이런 모습들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녀라는 무게는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것이지만, 그 무게 덕분에 나는 지금의 나로 성장할 수 있었다. 장녀로서의 삶은 무겁고 복잡했지만, 그 안에서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남았고, 그 경험들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