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본 사냥 컬렉션 ① : <도깨비 감투>, 그 끝나지 않은 이야기
내 고향 <달아섬>에는 《도깨비 감투》라는 대단히 재 미있고 신기한 전설이 있습니다. 이것은 함경도 일대와 평안도 일부 지역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로서 황해도나 그 밖의 고장에도 퍼져 있는지는 필자가 들은 것이 적어서 잘 모릅니다.
나는 이제부터 이 무척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를 여러 분께 들려 드리기 전에 여기 대해서 몇 마디 말해 두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1956년 봄에 저자 김내성 《도깨비 감투》
보르헤스는 소설 「바벨의 도서관」에서 우주를 거대한 도서관으로 묘사했지요. 그 비유처럼, 지상에서 한 권의 책이 사라지는 것은 우주에서 하나의 별이 지는 것과 같은 의미일지도 모릅니다.
책 사냥꾼에게 '책 사냥'은 기후 변화로 사라져가는 멸종위기 식물의 종자를 채취하여 생물 다양성을 지키는 일과 다름없습니다. 이번 책 사냥은 무려 30여 년 전, 우주에서 사라질 뻔했던 책, 『도깨비 감투』를 다시 찾아내 그 생명력을 이어준 위대한 여정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도깨비 감투』와 재회하기까지의 발자취와 그 소중한 의미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국민학교 시절은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로 기억됩니다.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총싸움놀이를 하고 칡을 캐던 일, 마을 저수지에서 대나무대와 지렁이로 물고기를 잡으며 개구쟁이처럼 보냈던 추억들이 아련하게 떠오르네요. 그 시절의 기쁨과 웃음은 무엇보다 만화책과 함께였습니다. 헤지고 낡을 때까지 손에서 놓지 못했던 '장성 두통이', 그리고 '속담으로 알아보는 콩콩이' 같은 만화책들을 수없이 읽었지요. 박문수 화백의 '도깨비 감투'를 비롯해 윤승운 작가님의 '맹꽁이 서당', 허영만 작가님의 '각시탈', 길창덕 작가님의 '꺼벙이' 등의 만화들이 제 어린 시절을 얼마나 풍요롭게 물들였는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세월이 흘러 대학 졸업을 앞둔 어느 날, 저는 동인천 배다리 헌책방 거리에서 뜻밖의 선물을 만났습니다. 바로 김내성 작가님의 동화집 <도깨비 감투>였습니다. 1979년에 출간된 이 책은 속지는 누렇게 바랬지만, 겉표지는 비닐로 잘 감싸져 있어 지금도 고운 색깔을 간직하고 있지요. 신동우 화백의 삽화가 돋보이는 이 귀한 책은 안타깝게도 지금은 절판되어 시중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보물이 되었습니다.
만화책 <도깨비 감투>에 엄청난 감동을 느꼈던 저는 35년 전 이 동화책을 구입해 서재에 소중히 간직해왔습니다. 한동안 '미니멀리즘'을 실천한다며 낡은 책들을 버린일들도 있었지만 이 책은 그 위기를 잘 견딘거지요. 얼마 전 우연히 서재 한편에서 저를 조용히 바라보던 이 책과 다시 눈을 맞추었을 때의 반가움이란! 그 순간, 김화영 교수님의 이 말이 제 마음에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한 인간의 작품이란, 가슴이 그쪽을 향하여 최초로 문을 열어 보였던 둘, 혹은 셋쯤의 위대하면서도 단순한 이미지들을, 예술이라는 우회를 통하여 다시 찾기 위한 기나긴 도정에 불과하다는 것을."
제게 이 <도깨비 감투>는 단순한 책 한 권 그 이상이었습니다. 국민학교 시절, 전래동화와 만화를 통해 제 가슴을 활짝 열어주었던 순수한 상상력과 끝없는 기쁨, 바로 그 '최초의 이미지'였습니다. 1993년 반갑게도 복간본이 발간되어 새 책을 구입했었는데 이 책도 역시 절판이 되어 시중에서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낡고 오래된 이 동화책과의 재회는, 잊고 지냈던 유년의 가장 소중한 보물을 '예술이라는 우회'를 통해 '다시 찾기 위한 기나긴 도정'의 한 챕터를 완성하는 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사라질 뻔했던 이 책을 다시 만나 그 생명력을 이어주는 것은, 제 내면의 가장 원형적인 가치와 순수함을 찾아 보존하는 일과 다름없었습니다.
한국 추리소설의 아버지라 불리는 김내성 작가는 일제강점기인 1931년 일본 와세다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추리소설에 심취하며 문학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작가님께서는 탐정 소설의 본질을 "엉!, 헉! 하고 놀라는 마음이며, '으음'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마음이 심리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밝히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추리소설 하면 에드거 앨런 포나 코난 도일을 떠올리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활약하신 김내성 작가님이야말로 우리나라 추리소설의 기틀을 다지신 분입니다. 작가님의 대표작으로는 <가상범인>, <마인>, <백가면> 등이 있는데, 이 작품들도 기회가 닿는 대로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도깨비 감투>는 순수한 추리소설은 아니지만,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동화 '도깨비 감투'와 달리 김내성 작가님의 상상력과 독창성이 가미되어 흑두건이라는 인물이 나타나 감투를 훔쳐가고, 이를 찾아가는 주인공 '남매'가 등장합니다. 특히 오빠 '돌이'와 '옥희'가 흑두건에게서 감투를 되찾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논리적인 추론과 추격전략은 탐정소설의 기법을 보여주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저자 서문에 이어 '이어쓰면서' 에 보이는 염재만 선생의 서문을 보면, 김내성 선생님이 당시 유명한 학생잡지 「학원」에 1956년부터 1957년 봄까지 10회를 연재하시다 완성하지 못하시고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이 책 <도깨비 감투>는 1979년 7월 20일 재판(再版)으로 간행된 재판본으로 한진출판사에서 출판되었고 한국 최초의 장편 만화영화 <홍길동>으로 유명한 신동우 화백의 삽화까지 곁들여져 동화책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었습니다.
이렇듯 책 한 권을 찾아가는 여정은 단순한 물질적인 추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시공을 초월하여 한 작가의 끝나지 않은 열정을 만나고, 저의 가장 순수했던 시절의 '최초의 이미지'를 다시 더듬는 성찰의 시간이었습니다. 책장 한편에 고이 모셔진 김내성 작가님의 <도깨비 감투>는 이제 단순한 책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작가와 독자, 그리고 저의 유년이 연결되는 소중한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바벨의 도서관처럼 무한히 펼쳐진 이 우주에서, 한 권의 책을 지키는 일은 별하나가 반짝거리는 것임을 보존하는 일이며, 나아가 우리 안의 소중한 '나'를 지켜내는 일임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저의 책 사냥은 아마 영원히 계속될 것 같습니다. 책들이 전하는 이야기,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무수한 삶과 기억들이 지상에서 영원히 반짝이기를 바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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