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의 헌신, 방향을 바꾸다

이기적인 게 아니라, 다르게 헌신하는 중이 아닐까?

by 석희

헌신은 왜 배신으로 돌아왔는가


과거에는 “조직에 충성하면 회사가 책임져준다”는 보이지 않는 계약이 있었다.

일본식 종신고용 제도와 연공서열 문화, 한국식 정년 보장과 연금, 안정된 승진 구조가 그 약속을 뒷받침했다. 헌신은 곧 ‘안정된 미래’를 담보하는 투자였다.

개인은 회사를 위해 헌신하고, 회사는 그 헌신을 보상해 주는 구조였다.

이게 산업화 시대의 질서였다.


하지만 이 계약은 영원할 수 없었다.

이 공식은 IMF 외환위기, 대규모 구조조정, 평생직장의 붕괴와 함께 산산조각 났다.

충성한 이들이 가장 먼저 구조조정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남은 것은 “헌신은 배신당한다”는 뼈아픈 학습이었다.


사실 이런 균열은 오래전에도 반복 돼왔다.

19세기 초 영국, 기계화로 생계를 위협받은 노동자들이 방직기계를 파괴하며 저항한 '러다이트 운동'은, 기술 혁신의 그늘 속에서 ‘헌신과 숙련이 일방적으로 버려지는 구조에 대한 반발’이었다.

변화는 언제나 진보처럼 포장되지만, 그 이면엔 ’ 보상받지 못한 헌신의 이야기’가 남는다.

러다이트(Luddite) 운동

기술 혁신은 언제나 일자리의 불안을 동반했다.

게다가 1980년대 ‘마가렛 대처’가 밀어붙인 신자유주의 물결은 국가의 보호막마저 거두어버렸다.

결국 기업은 효율성을 우선시했고, IMF와 구조조정의 파고는 평생직장의 신화를 산산이 깨뜨렸다.


MZ 세대가 본 현실은 이랬다. “헌신한 선배일수록 가장 먼저 잘려 나간다.”

그들의 냉소는 이기심이 아니라,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학습‘이었다.

직접 구조조정을 겪지 않았더라도, 그런 장면을 반복해서 보고 자란 세대에게

“조직은 끝까지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믿음은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MZ 세대는 정말 이기적인가?


흔히 MZ를 “자기밖에 모른다”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건 이기심이라기보다는 합리적 계산의 결과다.


그들은 헌신을 전혀 하지 않는 게 아니다. 다만 헌신의 대상을 바꾼 것이다. 회사라는 조직이 아니라, 자신의 성장과 의미에 헌신하려 한다.


“이 프로젝트가 내 커리어를 키워줄까?”

“이 일이 내가 믿는 가치를 담고 있을까?”


이 질문에 ‘예’라고 답할 수 있다면, 오히려 과몰입한다. 실제로 MZ는 본인이 의미 있다고 느끼는 일이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몰입한다. 단지 조직이 더 이상 그 의미를 보장해주지 못할 뿐이다.


물론 조직 입장에서의 고민도 이해할 수 있다.

“당신이 성장할 기회를 원한다면, 먼저 그만한 책임감과 태도를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단순한 복사나 문서정리 같은 업무라도, 성실하게 임하는 태도에서 신뢰는 싹트기 마련이고,

결국 어떤 관계든 주고받음이 있어야 지속된다는 건 조직도, 개인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헌신의 조건


나도 일하면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한때 대기업 유통사에서 패션 바이어로 근무하던 시절, 같이 일하는 후배들 중 일부는 너무 무심해 보였다.

브랜드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고,

그보다 더 안타까웠던 건 ‘관심 자체가 없어 보인다’는 인상이었다.

출퇴근 시간만 지키면 되는, 공무원 같은 태도.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성장하고 싶다면, 그만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어느 날, 솔직하게 조언 아닌 조언을 건넸다.

후배를 위한 말이라 믿었지만, 결과는 달랐다.

전달도 안 됐고,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고, 다양한 방식의 헌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비슷한 유형의 동료와 다시 일하게 되었을 때,

이번엔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답답함을 참고, 조급함을 내려놓고.

그리고 어느 순간 놀라운 장면을 보게 됐다.


내가 잘하지 못하는

정리와 체계, 문서화, 매출 관리 같은 영역에서

그 친구가 팀 전체를 위해 조용히 일을 매끄럽게 처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일을 성실히 해내며 팀에 필요한 역할을 채우고 있었던 거다.


그때 처음으로 또렷하게 느꼈다.

팀은 혼자 특출 난 사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모두가 리오넬 메시라고 해서,

그 팀이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할 수 있을까?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각자의 포지션과 역할이 없으면 팀은 무너진다.

진짜 중요한 건 ‘잘난 사람’이 아니라, ‘서로의 빈틈을 채워주는 사람’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축구 선수라고 평가 받는 ‘리오넬 메시’

모두가 똑같은 방식으로 일할 필요는 없다는 것.

내가 ‘맞다’고 믿는 기준만을 고집하지 않을 때,

조직은 비로소 톱니바퀴처럼 굴러간다.


오늘날 헌신이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건 ‘상호성(Reciprocity)’이다.

나의 노력이 단순히 소모되지 않고, 나에게도 돌아오는 경험.


이 지점에서 로버트 치알디니 교수의 《설득의 심리학》이 떠오른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여섯 가지 법칙 중 첫 번째로 ‘상호성의 법칙(Reciprocity)’을 제시한다.

“상대방이 ‘작은 호의’에 빚졌다고 느끼는 순간, 평소에는 거절할 부탁도 수락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단순한 심리적 기제처럼 보이지만, 이 원리는 조직에서도 그대로 작동한다.

회사(조직)가 개인의 성장을 먼저 지지하고, 의미 있는 경험을 제공할 때, 개인도 자발적으로 더 깊이 헌신한다.

처음 읽었을 때 머리를 망치로 한대 맞은 것 같았던 ‘설득의 심리학’

헌신은 강요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결국 ‘상호성’은 인간관계의 기본 심리이자, 조직을 움직이는 동력이다.

그것은 작은 신뢰와 선의가 쌓일 때, 자연스럽게 되돌아오는 ‘관계의 힘’에서 비롯된다.


회사가 나의 성장을 지원한다면, 나는 더 깊이 헌신할 수 있다.

프로젝트가 내 미래와 연결된다면, 나는 더 오래 버틸 수 있다.


“헌신은 배신당한다”는 말은 결국 헌신이 일방적으로 흡수될 때 나오는 말이다. 반대로 헌신이 나를 키우는 경험으로 돌아온다면, 그건 배신이 아니라 투자다.



헌신의 무대는 달라졌다.

회사가 아닌 나 자신, 부품이 아닌 프로젝트, 강요가 아닌 상호성.

새로운 시대의 헌신은, 결국 나를 키우는 헌신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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