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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선 Sep 12. 2024

그리움도 사치스러운 날 ( 9 )

가족의 품으로

크고 작은 사고소식에 작업자와 회사에서 서서히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작업자는 안전장비를 스스로 챙기기 시작했으며, 회사에서는 종대보다 오히려 적극적인 안전교육을 시행하였다.

그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종대는 변화의 현장에 없었다.

누구보다 바라왔고 종대 자신이 꿈꿔왔던 일 들이 이제야 태동하기 시작했지만, 그 변화의 현장에 더는 그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 평소처럼 느지막이 퇴근을 준비하던 종대가 무심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 별 하나가 눈에 들어왔지만 북극성은 아니었다.

처음엔 비행기 불빛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만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는 별이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가만히 서서 별을 올려다보다가 "하아~" 하고 고단한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다 문득 "이게 얼마만인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예전 연애할 땐 가끔이지만 안 식구와 밤하늘을 바라보곤 했었지만 결혼 후 학원을 그만두면서 하늘을 올려다볼 틈도 없이 달리기만 했었기에 지금의 밤하늘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가 잠시 옛 생각에 젖어있을 때 뒷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휴대전화가 몸을 바르르 떨기 시작했다.

 "여보, 이 시간에 웬일이야?" 종대가 반갑게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한동안 침묵하던 그의 아내가 조용히 훌쩍이다 떨리는 목소리로 "나, 더는 안 되겠어. 힘들어. 그냥 내려오면 안 돼?" 하며 훌쩍였다.

그녀의 물음에 종대는 순간 말을 잃었다.

그녀는 언제나 강한 모습만을 보여왔고, 그를 믿고 버텨주었기에 그 말이 어떤 의미를 품고 있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침묵 속에서 가볍게 떨리는 그녀의 숨결을 느끼는 순간 그도 그녀도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마침내 흘러나온 그녀의 목소리 만으로도 그간 쌓여온 고단함과 외로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종대는 더 이상 반문하지 못하고 그것을 수용해야만 했다.

종대는 그동안 아내가 이겨내리라 믿고 묵묵히 일에만 매달려 왔었다. 하지만 이제는 멈춰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가 걸음을 멈추고 묵은 숨을 내 쉴 때 머릿속은 온갖 생각으로 가득 찼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알았어! 울지 마! 금방 갈게 그러니까 조금만 참아, 알았지? 참을 수 있지?" 그는 결심을 굳혔다. 더 이상 아내를 혼자 두고, 가족과 떨어져 지낼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아니야! 그냥 투정 부리고 싶어서 그래본 거야!" 그녀가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밝은 목소리로 에도 종대는 이미 그녀가 어떤 상태인지 잘 알고 있었다.

"흐음~ 여보! 참지 마 설마 당신이 그렇게 말하면 내가 모를 것 같아? 조금만 기다려 대충 2시간 정도 걸릴 거야." 종대가 긴 한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아니야 진짜야!" , "알아! 나도 진짜야!"

자신의 영광이나 승진 따위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발걸음을 집으로 돌렸다.

집까지의 거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 택시 기사님이 말을 걸려는 눈치였다. 

그것을 알면서도 종대는 기사님의 시선을 무시한 체 창밖을 바라보며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아내의 미소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왜! 이토록 멀리 떨어져 있어야 했을까?'

종대는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동안 잊고 있었던 가장 중요한 것을 다시금 되새겼다. 

그가 진정으로 지켜야 할 것은 가족이었다. 

승진의 기회나 회사에서의 인정이 아니라, 그를 기다리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이었다.

처음엔 그저 살아남기 위해 벌어야 했지만 어느 순간 초심을 잃었다는 것을 그때야 비로소 알았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지만 이제라도 뒤를 돌아보게 되어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기사님 저기 편의점 옆에서 세워주세요" 택시에서 내려 집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집 안이 조용했다. 이미 잠자리에 들었거나 잠자리에 들려고 각자의 방에 있는 모양이었다.

'나 왔어!' 하고 종대가 소리치자 그 소리에 아이들이 방에서 뛰어나왔다. 

"아빠!" 아이들의 환호와 함께 종대는 두 팔을 벌려 아이들을 품에 안았다. 

그는 아이들의 체온을 느끼며 속삭였다. 

"이제부터 아빠 집에 있을 거다." , "아빠 휴가야?" 큰아이가 물었다.

"아니 회사 그만뒀어! 이제는 집에서 다닐 거야" 큰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가장 늦게 나온 아내가 말없이 종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그간의 피로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지만, 종대를 향한 믿음과 사랑도 함께 담겨 있었다. 

"진짜 왔네... 고생했어. 회사는 어쩌고...." 현실적인 걱정에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걱정했지만, 종대는 오랜만에 안정을 느꼈다.

그는 아내를 향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힘들었지" 하며 속삭였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다. 다시는 혼자 두지 않겠다고.

그렇게 종대는 비로소 집으로 돌아왔다. 




"여보~ 오늘 음식물 쓰레기 나가는 날이야."

"알아~ 그런데 당신은 꼭 내가 손 씻은 다음에 이야기하더라." 종대가 불만 섞인 목소리로 투정 부리듯 말했다.

"그러게~ 이상하게 당신이 손만 씻으면 생각이 나더라고." 그녀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어느덧 종대도 그녀도 평범한 일상 속에 있었다.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그는 자신이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되찾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종대는 마음 한구석에서 미묘한 공허함도 느꼈다. 그가 조선소에서 쏟아부은 노력과 열정이 이제야 결실을 맺고 있었기도 했지만 결국 타협을 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여보! 물어볼 게 있는데....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내려온 거야? 대책은 있어? 내려오란다고 덜컥 그렇게 내려오면 어떻게 해? 계획은 있는 거야?" 그녀가 따지듯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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