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기선 Sep 19. 2024

그리움도 사치스러운 날(마지막)

에필로그

가장이란 대들보 같아야 한다. 결혼 후 아버지에게 들었던 이야기다.

당신은 그러지 못했지만 나는 반드시 그래야 한다며, 어쩌면 처음으로 당신의 삶을 반성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서로 아끼고 사랑해라. 그리고 힘들면 들어주고 격려해 주거라 응원해 줘라. 아버지의 가르침은 무거운 침묵 속에서 행여나 시선을 피할까 싶어 달아나지 못하도록 양쪽 어깨를 잡고 시선을 마주하며 조금은 부담스럽게 말씀하셨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땐 잔뜩 비뚤어진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기 때문에 곱게 들리지 않았다.

"대리만족이라도 하시겠다는 말인가? 그렇게 잘 알면서 본인은 왜? 그러셨데? 어머님이 살아생전 당신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하셨는지 알기는 하나?" 소리치고 싶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삼켜 버렸다.

그리고 한동안 그런 조언을 해 주신 아버지를 미워했었다.

어쩌면 그것은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의 크기만큼이나 컸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내가 아버지가 되고부터 내 아버지의 고단함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때문에 더는 미워하지 않았다.

사실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더는 미워해 본들 시간을 되돌려 돌아가신 어머니가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비로소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미련하고 아둔하게도 아버지를 미워하는 것이 마치 어머니에 대한 의리라고 생각했던 소심한 마음을 지녔던 과거의 나를 내 자식이 태어난 후에야 내려놓았다.

내 자식에게는 내가 그랬듯 원망받지 않기 위해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의 표현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마음껏 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떨어져 지내는 동안 피곤하다는 이유로 일하러 가야 한다는 이유로 지키지 못했던 과거의 내 모습이 한없이 죄스럽고 미안했다.

처음 막내가 오래간만에 만난 아빠가 낯설어 밀어낼 때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거라 믿었다.

딸아이가 아빠하고 텐트 치고 놀고 싶다고 말할 때도 그것을 들어주지 못했고, 큰아이가 불꽃을 조금 더 잘 볼 수 있도록 목말을 태워달라고 할 때에도 피곤하다며 행사장에 가지 않았다.

아이들은 사랑을 원했지만, 알량한 몇 푼의 돈이면 그것을 매울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바보같이 말이다.

그 시절 나는 결국 불의와 타협했으며, 자신과의 약속마저 져버려 아이들에게도 그리 존경받지 못하는 어른이었다.

그 때문에 이 글은 어쩌면 고해성사 같은 느낌으로 적었다.

어찌 보면 성장드라마처럼 읽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코 그런 저의는 없었음을 알아줬으면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어주신 구독자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할 수 있을 때 충분히 사랑하라는 것이다.

만 원짜리 한 장 보다 따뜻한 포옹이, 볼 뽀뽀가, 타이밍 버킷에서 쏟아져 나온 물줄기를 함께 맞았던 추억이 더 값지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감정 나눠주신 구독자님들 감사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