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wants a magical solution to their problem, and everyone refuses to believe in magic.-Alice in Wonderland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문제에서 마법 같은 해결책을 원하지. 마법을 믿는 것은 거부하면서 말이야.
눈을 희미하게 뜨고 시계를 봤다.
새벽 2시.
나는 사이드 테이블로 손을 뻗어 전화기를 켰다.
자기 전에 미리 열어놓은 사이트가 바로 떴다.
로그인을 시도했다.
‘Sorry for...’
“끙...”
확 올라오는 짜증을 작은 신음소리로 삼키며 화면을 닫아버렸다. 또 접속 실패였다.
나는 며칠 동안 코로나 백신 접종 예약을 위해 정부 웹사이트에 접속을 시도 중이었다. 하지만 내가 마주하는 것은 정지된 화면과 함께 백신이 다시 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메시지가 전부였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하루 종일 사이트는 닫혀있는 상황이었고, 어쩌다 운이 좋아 예약한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지만 손에 꼽았다. 며칠째 허탕만 치던 나는 급기야 오기 같은 것이 생겨서 그날 새벽에 일어나 접속을 시도한 건데 사이트는 여전히 닫혀있었다.
작년 3월 처음 락다운이 되어 고립되었을 때만 해도 나름 희망을 가지고 이 시기를 잘 보내려 했었다.
휴지가 마켓 진열대 위에서 사라져도 나는 동요하지 않았다. 미뤄두었던 클로짓 안을 정리했고, 음식도 열심히 했고, 집안에 있는 모든 문을 페인트 칠했고, 마당 한편에 텃밭을 만들어 깻잎을 자급자족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그림을 열심히 그렸고 글도 열심히 썼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어느 날 마켓 진열대 위에 휴지가 돌아왔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집안에 갇혀있어야 했다. 그렇잖아도 단조로운 미국 생활이 더욱 우울해졌다.
그렇게 작년을 도둑맞듯이 보내고, 새해를 맞이했지만 희망은 여전히 없어 보인다.
이곳 미국에선 코로나 환자 수가 피크를 찍는 중이고, 세계 곳곳에서 변종이 나오고 있다는 우울한 뉴스뿐이다. 나의 수술 역시 언제가 될지 모른 체 영영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다. 사회생활은 커녕 그나마 하기로 했던 것을 못하게 되자 다음 단계라는 것이 없어졌고 생활은 정지된 화면이 되었다. 나는 급격히 무기력해졌다.
그런데 이 시점에 백신이 개발되어 접종이 시작되었다. 백신은 최악의 상태인 나에게 터널의 끝을 알리는 상징으로 다가왔다. 아니, 내 정신건강을 위해 그것이 마법 같은 해결책이 돼줄 것이라 믿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마음 상태에 있던 내가 접속에서부터 막히자 폭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누가 보면 주사를 맞지 못해서 안달 난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예약성공만이 지금 내가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며, 그것을 꼭 해내야만 내 마음 상태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때론 그렇게 어떤 일의 실제 목적과는 상관없는 다른 이유로 그 일들이 행해질 때가 있다.
어쨌든 그날 그렇게 새벽잠을 설치고 아무 성과 없이 아침을 맞이했다. 나는 따가운 눈을 비비며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잠을 깨려 커피를 내리면서 별 기대 없이 전화기를 다시 열었다.
그런데 마음을 비울 때야 비로소 찾아온다던 행운이 나에게 왔다. 창이 열렸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급하게 타이핑했다.
거의 다 왔어, 이제 조금만 더 대답하면 돼!
원하는 날짜를 기입했다.
원하는 장소도 기입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
화이자를 원하십니까?
모더나를 원하십니까?
나는 순간 얼음이 되어 어느 쪽 버튼도 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백신 종류는 선택권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주체적으로 고르라니 준비가 안되어 있었던 거다. 머릿속에서는 각각의 백신 부작용 사례를 알렸던 뉴스들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주체적으로 화이자를 맞아야 하나? 아님 주체적으로 모더나를 맞아야 하나? 아니, 나는 주체적으로 백신을 맞아야 하나? 아님 맞지 않는 것이 주체적인 행동인가?
그 순간 주체적인 인간이 되고야 말겠다던 순진한 나의 목적의식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해결사처럼 나타났던 백신은 나를 다시 무기력 속에 빠뜨려 버렸다.
아... 현실세계에 마법은 없었다.
그러니 마법 같은 해결책을 기대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