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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나무 Nov 28. 2020

어른스러운 아이

청소년들을 만나고 있다.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했어도, 목적은 저마다 다르다. 꿈을 묻기도 전에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아이.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자신의 꿈이라 말하는 아이. 좋아하는 것이 없는 아이. 대학보다 취업을 위해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다는 아이. 음악이 하고 싶은데 부모님의 반대로 외고에 가야 한다는 아이. 각자의 사정이 있고 저마다의 세계가 있었다. 획일화된 프로그램과 시스템에 넣어 제도화하는 것을 멈춰야 하는 이유이다. 지난 3주간 26명의 청소년을 만났다. 그중 마음에 남은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그 아이는 이미 계획이 세워져 있었다. 원하는 방향성도 확실했고, 원하는 대학과 대안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학원을 4개나 다닌다며 힘들다고 투정을 부렸다. 응원을 해주고 힘을 내라 말하는 것 외에 그 아이에게 해줄 말이 없었다. 너무도 어른스러워서, 모든 것을 잘할 것 같아서. 사실 그게 마음이 짠했다. 그 아이가 기억에 더 진하게 남은 이유는 같은 나이인 친구와 비교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아이들을 비교할 수 있겠나 만, 같은 나이라고 하면 자연스러운 비교가 시작되는 것 같다. 물론 평가를 위한 비교가 아닌지라 괜찮다만, 아이들을 비교하는 것은 어떤 목적이던 옳지 못하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이미 비교를 했다. 다른 아이는 나를 처음 본 날 웹드라마 이야기를 했다. 연예인 이야기를 했고, 썸 타는 남자 이야기와 점심시간에 남자 친구들을 만나야 해서 4교시는 화장 시간이라는 말을 해주었다. 웃었다. 솔직한 마음으로 그 아이의 미래가 걱정은 되었다. 그러나 오늘 그 나이에 맞게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고, 웃는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즐기며 살아가기를 바랐다. 그러나 내 마음 한편에서는 어른스러운 아이가 더 잘 살아갈 것 같다는 나쁜 비교를 했다.


어른스러운 아이가 더 잘 살아갈 것 같았다. 잘 살아간다는 뜻과 의미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어른스러운 아이였던 나에게는 표현 못 할 무언가가 보였다. 내가 청소년이었을 때 어른들은 종종 '어쩜 이렇게 어른스럽니'라고 말했고, 나는 그 말에 부담을 느꼈었다. 처음에는 다른 친구들과 다른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만, 점차 그 말이 싫어졌었다. '나도 아이답고 싶다.'라는 마음을 품었었다. 어른들이 내게 말할 때 그들도 짠했을까. 내가 어른스러운 아이를 바라보며 짠한 마음을 가졌고, 한편으로는 너는 참 잘 살겠다. 싶었는데. 내게 말을 건넸던 어른들도 그랬을까. 어른스러운 어른도 찾기 어려운 세상에서 어른스러운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아이들이 아이답게 살며, 자유로운 미래를 꿈꾸게 할 의무가 어른에게 있다. 어른스러운 아이가 인생을 잘 살아갈지 모르나, 어른스러운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그 의무를 잘 이행할지 모르나. 오늘날 그 아이는 어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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