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기 부정적 경험 (Adverse Childhood Experiences : ACE) 에 관한 질문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는 이 노랫말을 나는 좋아한다. 나를 향한 나의 사랑도너무 아프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자라며 느낀 나의 사랑들은 늘 언제나 너무 아팠다.
아동기 부정적 경험(ACEs) 질문지는 한 개인이 어린 시절에 경험했을 수 있는 트라우마나 스트레스 요인을 평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 질문지는 주로 10개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항목은 아동기(18세 이전)에 겪은 특정한 경험에 대한 질문이다. 각 질문에 대해 '예' 또는 '아니오'로 답변하고, '예'로 답변한 항목 수를 합산하여 총 ACE 점수를 계산한다.
당신의 18세 생일 이전에,
1. 정서적 학대- 보호자나 가족 중 누군가가 당신을 지속적으로 욕하거나, 모욕하거나, 무시하거나 당신을 겁에 질리게 한 적이 있습니까?
2. 신체적 학대-보호자나 가족 중 누군가가 당신을 때리거나, 밀치거나, 발로 차거나, 던진 적이 있습니까?
3. 성적 학대-성인이 당신에게 원치 않는 신체 접촉을 하거나 성적 행위를 강요한 적이 있습니까?
4. 정서적 방치-당신이 필요로 하는 사랑, 관심, 보호를 제공받지 못했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까?
5. 신체적 방치- 당신이 먹을 음식이나 적절한 옷, 보호가 충분하지 않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까?
6. 가정 폭력 목격-당신의 부모나 보호자 중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신체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거나 폭행하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까?
7. 부모 이혼 또는 별거-부모님이 이혼하거나 별거한 적이 있습니까?
8. 정신 질환을 앓는 가족 구성원-당신의 가족 중 한 명이 정신 질환을 앓고 있거나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습니까?
9. 약물 또는 알코올 중독-당신의 가족 중 한 명이 알코올 또는 약물 중독 상태였던 적이 있습니까?
10. 범죄 활동으로 수감된 가족 구성원-가족 중 한 명이 범죄로 인해 감옥에 수감된 적이 있습니까?
<<ACE 점수 해석>>
- 점수 0-3 - 아동기 경험 중 비교적 적은 수의 부정적 경험을 의미. 하지만 낮은 점수라 하더라도 특정 부정적 경험이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점수 4 이상- 높은 ACE 점수는 성인이 되었을 때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더 큰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높은 ACE 점수를 받았다고 해서 반드시 모든 사람에게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회복 탄력성(resilience)이나 지원 체계 등 긍정적인 요인들이 큰 역할을 할 수 있고, 중요한 점은 ACE 점수는 개인의 아동기 경험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도구이지만, 단순한 점수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다. ACE 질문지는 개인의 심리적 상태, 대처 방식, 외부 지원 체계 등을 함께 고려하여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날은 내가 초 6학년 겨울 방학을 지내던 어느 날 중 하루 초 저녁 즈음이었던 것 같다. 70년대 허름했던 우리 집은 방 두개를 터서 크게 만들었고, 가운데 미닫이 문을 만들어 때때로 두개의 방으로 사용하곤 했다. 그 날도 가운데 미닫이 문을 다 열고 어른들이 모여 앉아 있었고 어른들은 화투를 친 것 같다. 방에 어른들이 가득하고 갈 곳이 없던 초6의 나는 부엌과 연결된 문에 딸린 작은 마루에 앉아서 강아지와 놀고 있었다.
지금처럼 수도를 이리 저리 하면 온수와 냉수가 나오는 집이 아니고, 겨울엔 부뚜막 아궁이에 커다란 솥단지를 올려놓고 뜨거운 물을 사용하기 위해 늘 물을 끓이고 있었다. 심심한 나는 한사람 엉덩이를 겨우 감당할 정도의 좁은 마루에 걸 터 앉아 마루와 연결된 아궁이 옆에서 강아지와 장난을 쳤다. 내가 강아지를 간지럽히고 너무 괴롭히니 강아지가 날 피해 몸을 뒤틀고 옥신각신 하다 그만 내 실수로 강아지가 끓는 물 솥단지에 빠져 버렸다. 아마도 솥뚜껑이 비스듬히 닫혀 있었고 내가 그 위에 강아지를 떨어뜨린 것 같다. 놀란 나는 강아지를 건지려고 그 끓는 물에 손을 넣고 강아지를 잡았는데 손이 너무 뜨거워 강아지를 놓쳤다. 잡았다 놓치고를 몇 번 했는데 내 비명소리를 듣고 어른 들이 달려 나왔다. 그 다음은 생각이 나질 않았고, 엄마는 그 와중에도 미련곰탱이라고 소리를 지르며 나를 때렸다. 보다 못한 그 중의 한 어른이 나를 동네의원으로 데려갔고 나는 익어버린 양 손을 벌벌 떨며 어쩔 줄 모르고 울고 있었다. 이미 양손은 피부 껍질이 다 벗겨져 있었고, 의사는 바셀린을 듬뿍 바르고 붕대로 싸매 주었다.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 지도 모르겠고, 난 집에서 울다가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강아지가 끙끙대는 환청을 듣고 깨었다. 나 때문에 죽은 강아지가 너무 불쌍했다. 뜨거운 물속에서 잡았던 그의 버둥거리던 몸짓이 내 손에서 아직도 느껴졌다. 글을 쓰는 지금도 마음이 너무 아프다. 뜨거웠던 그 물만큼 뜨겁고 아픈 눈물이 눈알 속에서 솟구쳐 달려 나온다.
신기한 것은 그 당시 많은 사람들, 누구보다 언니와 남동생은 어디있었을까..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 와중에도 나를 욕하고 때린 엄마와 나를 데리고 병원을 간 어떤 고마운 아저씨가 있었다는 것 말고는.. 한동안 손을 사용하지 못하니 세수도 못하고, 머리도 못감고, 씻지도 못하니 꼴이 거지같이 되었다. 붕대를 자주 갈아 줘야 하는데 갈아 줄 사람이 없었다. 나는 아픈 손으로 입으로 어찌어찌 붕대를 풀었다. 난 붕대를 풀면 손이 이전처럼 하얀 손일 줄 알았는데 한 꺼풀 벗겨진 피부인지라 핏덩어리 색깔 그 자체였다. 난 너무나 충격을 받았다. 그때까지 강아지에 대한 슬픈마음을 추수리지도 못했으나 이 충격으로 인해 강아지에 대한 마음이 조금 옅어졌다고나 할까..
손이 아물려고 하니 가려웠다. 너무 가려웠다.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가족들과 한 밥상에서 손을 내밀며 붕대 감싼 손으로 밥 먹는 것도 미안했다. 가족 중 누구도 나를 위로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슬프고 서러움이 복받쳐 혼자 많이 울었다.
그 일로 인해 내 양 손은 오랜 시간동안 빨갛게 되었다. 늘 화끈거렸다. 추위에도 약해서 손에 동상도 자주 걸렸다. 버스 손잡이를 잡기도 민망할 정도로 손이 빨갰다. 손을 내놓는 자리가 늘 부끄러웠다. 사춘기 내내 빨간 손 때문에 속상했다. 겨울엔 장갑을 끼면 그래도 가리워졌는데 실상은 손의 피부가 너무 얇아지고 약해서 장갑이 너무 거칠고 따갑게 느껴져서 고통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이 한가지 사건만 기억해도 ACE 문항에 해당한 점수가 최소한 6점이나 된다. 6개 항목이 ‘그렇다’ 이다. 슬프다. 이러한 ACE 검사와 마찬가지로 회복탄력성 검사도 있다. 한국형 회복탄력성 검사지수 ‘KRO-53’(김주환,2011)는 53개의 항목으로 되어있다. ACE 점수가 높은 사람이 회복탄력성 지수가 좋을 것 같지는 않았는데 역시나 였다. 그야말로 나의 과거가 어떻게 현재에 와서까지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 아는 것은 치유의 시작이니 고군분투하며 받아들인다. 힘들었던 나의 아동기가 어떻게 이리도 까다로운 성격의 나를 만들었는지, 그리고 만성질병인 고혈압과 당뇨와 두근거리는 심장과 지속적우울장애와 불안을 달고살게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는것은 이제 나를 수용할 수있는 준비가 되어 간다는 것이다. 소망을 갖고 좀 더 지켜보기로 하자 맘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