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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앤 Sep 21. 2024

티파니에서 아침을

복합트라우마 치유하기(8) - 안전지대


뜨개질이든 바느질이든 손으로 하는 일은 무슨 일이든 해 보았던 오래전 어느날, 

아름다운 헵번의 모습을 천에 본을 뜨고 프랑스자수로 수를 놓았다.

로망의 올린머리를 바늘로 모양을 내보다가 결국 솜씨가 부족해서

그 범접할 수 없는 올린머리의 아름다움을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게다가 이 여린 헵번의 목이며 몸매를 너무 두껍게 만들어서 

수를 다 놓고는 뜯고 다시 수놓기를 반복했다.

손 때 꼬질 꼬질 묻은 이 '티파니' 자수를 잘 다듬어서 

여기 뉴욕 티파니에서 6시간이나 떨어진

산골동네로 찾아 주신 고마운 분에게

내 마음을 드리 듯이 선물로 드렸다.


그 때만 해도 '티파니에서 아침을' 

이 영화가 어떤 내용인지 몰랐었다.

다만 헵번의 아름다운 모습만을 수를 놓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알고보니 이 영화는 내가 생각지 못한 줄거리를 갖고 있었고, 

애착외상의 관점으로 보니 상처로 가득 찬 한 사람의 혼란스런 삶이었다.


그럼에도 장르가 로맨스코미디로 되어있다. 

그것은 영화와 소설이 원작자의 의도와 많이 다르게 제작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헵번이 연기했던 할리 골라이틀리는 겉으로는 자유롭고 개성 넘치는 인물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심리적 특성은 훨씬 더 복잡해보인다. 어린 시절 형성 된 애착 불안, 자아존중감 문제, 정체성 혼란, 그리고 외로움과 우울감이 그녀의 행동 이면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그녀의 심리적 갈등은 동명 소설 원작자인 트루먼 카포티(Truman Capote, 1924-1984)의 내면과 그의 어머니의 삶이 투영되어 있다고 한다. 카포티의 부모는 그가 4살때 이혼하였고 어려운 어린시절을 보냈으며 그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그의 어머니는 부유한 남자를 만나 신분상승 하는 것을 꿈꿨다고 한다. 


고가의 보석상점 티파니는 영화 속에서

늘 불안하고 혼란스러우며 회피와 정서조절등의 애착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 

여주 할리의 내면의 갈등을 달래주던 그녀만의 안전지대 였던 것 같다.


영화 속 할리는 우울한 날이면 이른 새벽에  검정색 긴 드레스를 입고, 검정선글래스와 진주목걸이, 검정 장갑을 끼고 뉴욕 5번가로 와 택시에서 내린다. 그리곤 티파니의 건물 쇼윈도우를 통해 동경하는 보석들을 구경하며 봉투에 담아 온 크로아상 하나와 커피로 서서 아침을 먹는다. 이것이 바로 반세기동안 유명한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오프닝 장면이다.


그녀는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가족과의 유대가 거의 없었다. 애착 이론에 따르면, 어린 시절 부모나 주 양육자로부터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하지 못한 사람은 성인이 되었을 때 관계에서 불안정한 애착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할리는 타인과 깊은 감정적 유대를 맺기 어려워하며, 인간관계에서 안정감을 찾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도망"치려는 경향을 보인다. 14살에 결혼을 하였고 어느날 그곳에서 도망쳐 뉴욕으로 왔다. 자신을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성으로 묘사하며 자신을 찾아온 전 남편을 돌려 보낸다. 할리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부족하며, 종종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워 하며 여러 개의 가명으로 살고 있다. 할리가 티파니를 찾아오는 것은 현실의 초라함과 내면의 아픔을 덮고 싶은, 혼란스러운 자신의 세상 속에서의 그녀가 갖지 못한 삶의 안정감을 투사하는 장소, 그녀 만의 안전지대 였다. 




상담현장에서 복합트라우마 치유의 시작은 자신만의 '안전지대'를 떠올리는 것이다. 트라우마 전문가 아리엘 슈워츠는 그의 저서 '과거에 붙잡힌 사람을 위한 책'에서 '창의적인 시각화는 복한 PTSD 치유에 도움이 된다. 뇌는 실제 경험과 상상의 경험을 구별하지 않기 때문에 긍정적인 시각화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은 강력한 치유도구가 된다' 라고 하며 평화롭고 고요한 느낌이 드는 장소를 천천히 떠 올려 보기를 연습해 보기를 권한다. 그곳은 실제의 장소일수도 있고 상상속의 장소라도 괜찮다. 실제로 복합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이들은 현재 위험이 없는 상황에서도 안전함을 느끼기 어려워한다. 높은 각성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 밤 새 뒤척거리다 새벽녘에 잠이 든 내가 아침에 눈을 뜨면 여지없이 불안감이 달려든다. 마치 내가 눈을 뜨기를 기다리며 지키고 있었던 복병같이 불안은 내가 눈을 뜨자마자 쏜살같이 나를 압도하고 내 마음은  그만 커다란 돌덩어리 만큼 또 무거워진다. '나 또 불안하네.. 도대체 난 뭐가 또 불안하냐..' 누워서 다시 눈을 감고 실습 때 배운대로 3:5 호흡법과 버터플라이 허그를 한다. 괜찮다.. 이제 괜찮다... 나는 안전해.  동안 호흡을 들이쉬고 다섯동안 크게 숨을 내쉬며 부교감신경을 조정해 본다.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과거의 내 가 아닌 '지금 여기'의 나를 느껴보려 애쓴다. 


막연한 기대와 희망으로 찾아와 내면의 아픔을 덮고 싶었던 티파니 앞에 서 있는 할리를 오늘 나는

이전과는 다른 마음, 올린머리의 로망이 아닌 마음의 전쟁터에서 함께 상처를 나눈 전우의 애잔한 심정으로 바라보게 된다. 


끝까지 살아냅시다! 우리도... 과거에 붙잡힌 삶이 아니라 '지금 여기'를 느끼며 오늘을 살아갑시다! 




사족으로, 

'티파니에는 식당이 없어서 아침을 못 먹습니다' 는 예전에는 맞았고 지금은 틀리다.

2018년 부터 티파니 빌딩 6층에 Tiffany & Co.의 상징색깔을 배경으로 Blue Box Cafe를 만들었고 브런치메뉴로 'Breakfast at Tiffany' 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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