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터 아일랜드
복합트라우마 치유하기(3) - 셔터 아일랜드 영화를 보았다
복합트라우마 치료하기(3) - 셔터 아일랜드 영화를 보았다
‘셔터 아이랜드’는 스릴러 장르의 영화다. 이상성격심리학 관련 영화를 봐야하는 과제 때문에 보았는데 이것이 나의 복합트라우마 치료에 어떤 도움이 되었을까? 내가 복합트라우마 당사자가 된 흐름을 생각하게 되었기에 마음에 담아본다.
한 동안 영화와는 담을 쌓고 산 내가 이 영화의 한글자막을 보기 위해 Apple TV와 Amazon Prime Video까지 들락거리며 고른 영화였다. 2010년에 개봉한 영화이고,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 <살인자들의 섬>을 마틴 스콜세이지가 영화로 만들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벤 킹슬리, 미쉘 윌리암스 등이 출연했다. 개인적으로 타이타닉을 본 이후에 디카프리오가 나온 영화를 처음 보게 되었는데 중년이 된 디카프리오를 보면서 잘 생긴 미소년의 이미지를 뒤로하고 극한의 거친 퍼포먼스를 선호하는 배우라는 찬사에 어울리게 복잡한 정신장애 PTSD를 가진 주인공 테디를 잘 소화해 냈다고 생각했다.
주인공의 시각으로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주인공 테디는 이 외딴 섬에 있는 중범죄자 정신병원에 수감 되어있던 한 명의 정신병 범죄자 실종사건을 수사하러 나온 연방보안관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가 이곳에 수감된 환자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반전이 되는데 나는 병리적 이슈를 가지고 인터넷을 검색하여 얻은 정보였다. 그렇게 반전의 묘미를 반납하고 본 영화 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긴장하고 볼 수밖에 없었던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생각한다.
테디는 2차대전 참전군인으로서 PTSD를 얻었고, 그 여파로 인해 알코올중독을 공존장애로 지닌 자로 소개가 된다. 영화 속 아내는 조울증을 지닌 상황이었는데 이미 이전에 한 번 집에 불을 지르는 자살시도를 했었다. 그렇게 위험천만한 아내에게 아이들의 양육을 다 맡겨 놓은 채로 하루하루 술에 의지해 살고 있었다. 그는 처참했던 전쟁의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알코올에 의지했으며, 아내의 병을 방치한 채로 자신에게만 몰두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아내와 아이들의 필요를 전혀 알 수도 없었고 생각치도 못 했을 것이다. 그가 전장에서 돌아와 일상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불안과 장애를 깨닫고 일찍 치료받을 수 있었더라면, 혹은 조금이라도 빨리 그 아내의 병을 돌아볼 수 있었더라면, 그 자녀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한번이라도 생각했더라면, 그 가족이 당한 이 안타깝고 아픈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까? 어디부터 어디 까지가 환각이고 실제인지 약간은 혼란스러웠으나 주인공의 의식과 무의식속에서 감당할 수 없는 기억의 조작과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는 마음이 슬픈 영화다. 위의 사진은 영화속에서 자녀들을 익사 시킨 아내를 총으로 쏴서 죽이며 오열하는 가장 아프고 슬픈장면이다.
그러나 PTSD, C-PTSD 이러한 질병들은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는 것이
더 아프게 다가온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나의 어린시절을 생각해 본다.
나의 아버지는 6.25 전쟁 당시 강제징병당한 북한 공산군이었다. 전쟁터에서 유엔군에 붙들린 포로가 되었는데, 북한으로 돌아갈 수 있는 포로교환을 마다하고 목숨을 걸고 남한에 남았다. 아버지는 온 가족이 있는 북한을 버리고 홀로 남한에 남은 포로이면서 참전군인이었고 이로인해 PTSD환자가 되었다. 남한에 살기위해 남한의 군대에서 다시 복무했고, 철저한 사상검증을 겪었다. 엄마는 전쟁통에 홀로 이남 하여 살다가 어떻게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였고, 나라가 지정해 준 한 피난민 정착마을에 정착해서 살며
우리 형제 셋을 낳았다.
아버지는 PTSD 환자였으나, 그런 병명이 있는 줄도 모르고 외롭고 힘든 전쟁 후 남한 에서의 삶을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지'로 버티셨는데 그것은 곧 자신에 대한 몰두였고, 옆에서 힘들어 하는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엄마 또한 전쟁을 겪은 PTSD환자였으며, 더 크게는 어린시절 온갖 구박과 설움을 받으며 자란 복합트라우마 당사자 였다. 우울증과 여러 번의 자살시도와 성격장애로 인해 혼란스런 삶을 사셨다.
영화속 주인공의 아내가 조울증으로 아이들 셋을 물에 빠뜨려 죽인 것과 비슷한 수준의 방치와 학대를 겪으며 우리 삼형제는 자라났다. 내 표현이 과했나? 그렇다면 영화속에 죽은 세 아이들과 우리는 무엇이 달랐을까? 아마 우리가 살던 곳에 영화속 장면처럼 호수가 있었다면 아마도 비슷한 결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오버랩 된다. 이것은 전쟁과 시대의 아픔이란 공적인 외상인 동시에 미성숙했던 부모들의 사적인 외상들이 뒤범벅되어 대를 이어 우리 세 남매에게 전수되었다. 세상은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배운 나는 불안과 부적절함이 가득 찬 아이가 되어 무가치함과 수치심속에 방치되어 자랐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들이 비일비재 했던 고달픈 삶을 살아오면서 아직까지도 복합트라우마의 증상들을 드러내며 살고 있다. 아마도 그래서 이 영화, 이 장면에 나도 오열했던 것 같다.
내 아픔을 위로하기, 슬픔을 인정하기.. 이것을 치유의 과정으로 맞아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