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문장의 숨은 참 뜻을 알기 어려운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삶도 죽음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던 어린아이에게는 8월의 크리스마스는 정말이지 뚱딴지같은 말이었다.
초등학교에 세워진 비석에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라며 한석규와 심은하가 함께 있는 그 시대 특유의 낭만적인 모습이 담긴 사진이 새겨져 있었다.
8월은 아무리 생각해도 여름인데 어째서 8월의 크리스마스일까?
성인이 되어서까지 나는 그 영화를 볼 일이 없었다.
고향을 딱히 내려갈 일도 없었지만 오랜만에 초등학교 시절 친구와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다.
월차를 쓸 수 있었기에 어디를 놀러 갈까 고민하던 나는 친구와 닿은 연락으로 고향이었던 군산이 아닌, 여행지로서의 군산을 방문하기로 했다.
도시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 해당 지역과 관련된 영화나 독립서점을 방문하면 된다.
자체제작한 지역 서적들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기도 했고 영화를 통해 흔히 지나쳐가는 동네의 일부를 살펴보고 느끼는 것이 좋았다.
과연 옛날 영화인데 재미는 있을까 고민을 하다, 8월의 크리스마스를 시청했다.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현대인이라 처음에는 슴슴한 맛에 지루함을 느꼈다.
어떻게 극 중 초반에 죽음으로 시작하는데 이렇게 잔잔할 수 있을까? 심지어 한석규의 죽음이 머지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에도 그러했다.
고요함에 슬픔은 느껴졌지만 죽음을 외면하고자 하는 처절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고요한 슬픔이었다.
극이 진행됨에 따라 심은하를 만나게 되고, 사랑을 느끼고.
하지만 그럼에도 자극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풋풋함이 느껴지는 둘의 사랑 이야기가 슴슴한데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종국에 자신의 죽음을 미리 준비하며 스스로의 영정사진을 찍게 되는데 실제 영정사진이 등장하면 화면이 전환된다.
어릴 땐 '8월의 크리스마스'에 숨겨진 삶과 죽음에 관하여 생각할 수 없었고 딱히 나와는 관련 없는 주제라 생각했다.
죽음은 두려운 존재였고 삶은 별다른 의미가 아니었다. 그저 일상이었다.
여름에 처음 만난 두 남녀가 크리스마스처럼 행복하게 지내다 이내 겨울에 헤어지게 된다. 누군가의 마음이 식어서 헤어지는 것이 아닌, 죽음이 둘 사이를 갈라놓았다.
슴슴한 맛의 8월의 크리스마스는 내게 잔잔한 여운을 남겨두었다.
삶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인가.
솔직히 아직까지도 삶과 죽음에 대해 정의를 내릴 수 없다.
사전적 의미를 삶과 죽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한없이 무거운 이 단어를 나의 언어로 표현하기엔 아직 버겁다는 말이다.
제목을 찬찬히 뜯어보고 영화 후기들은 살펴보니 더 마음에 와닿는 제목이었다.
삶과 죽음.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크리스마스의 행복함까지.
비록 극 중 한석규는 죽음을 앞두고 있었지만 남은 삶을 행복하게 보내며 남겨지는 이들과의 이별을 준비했다.
그의 끝은 결국 죽음이었지만, 남은 삶을 크리스마스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행복하게 보냈으니 감히 행복한 삶을 보내고 갔으리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