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빈 May 02. 2023

고독한 프리워커의 '외로움'에 대하여

어릴 때부터 유난히 내성적이었던 나는 외로움과 꽤 친하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의 맞벌이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20살에 본가에서 나와 혼자 산지는 10년이 넘었다. 20대 중반 무렵, 유행처럼 너도나도 했던 공무원 시험 준비에 뛰어들어 2년 간 사람을 만나지도 않았고, 만나기도 싫었던 극한 외로움의 시기를 견뎌내기도 했다. 혼밥, 혼술, 혼행이 유행하기 전부터 혼자 무언가 하는 것에 익숙했고, '같이 갈 사람이 없어 뭘 못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회사에서도 '자발적 아싸'를 자처했다. 주목받는 걸 좋아하지도 않는 성격이었고,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누군가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도 싫었다. 최대한 그림자처럼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회사 생활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일에 있어서도 '인생은 독고다이다'라는 생각으로 누구에게 부탁할 바에 그냥 내가 하자는 주의였고, 디자인, 영상 편집, 데이터 등 혼자 해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멀티플레이어 잡케터가 되어갔다.

생각해 보면 나의 인생은 고독함과 외로움으로 가득했지, 그러니 혼자 일하는 것 정도야. 했는데 이게 왠 걸 외로움은 혼자 일하는 나에게 가장 큰 적이었다.



1인 기업이나 프리워커로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은 회사 다닐 때와 비교해 만나는 사람이 줄어든다. 좋든 싫든 하루 종일 사람에 둘러싸여 일해야 하는 회사와 달리 프리워커로 일을 하면 굳이 협업을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프리워커는 노력하지 않으면 사람과 교류할 일이 줄어든다.


프리워커 1개월 차,
하루 종일 한 말은
'아메리카노 하나요' 밖에 없었다.

퇴사 후 내가 처음 했던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나 혼자 하는 일들이었기 때문에 사람을 만날 일이 거의 없었다. 처음에는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에 대한 외로움이 찾아왔다. 주말에는 친구나 지인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평일 내내 혼자만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일하러 카페를 왔다 갔다 하며 삼삼오오 모여 웃고 있는 직장인들을 보며, 취업 준비 이후 처음으로 직장인들이 부러워졌다. 회사에서는 자발적 아싸를 자처했던 내가 혼자 일한다는 이유로 직장인들을 부러워하다니.

외로움을 견디는 것에는 자신 있었는데 일까지 위협했다. 오늘은 조금 외롭고 울적한 데 오늘 하루 쉬어볼까. 이런 날들이 하루 이틀 늘어났고 외로움은 일을 하지 못하는 날들의 핑계가 되기도 했다.


그런 날들이 더 지나고 나니 프리워커에게 외로움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혼자 있어서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에 대해 논의할 사람이 없다는 것, 어떤 일에 확신이 들지 않을 때 의견을 구할 사람이 없다는 것, 지치고 힘들 때도 오롯이 혼자 헤쳐 나가야 한다는 것.

일이 괴롭고 막힐 때 먼저 다가가서 부탁하고 요청하는 걸 어색해하는 나에게 슬쩍 뭐 하냐고 물어봐 주던 좋은 동료들이 문득 그리워졌다.



혼자 일하는 것은 자발적 아싸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기도 했다. 혼자 일하며 팀의 소중함과 내 성과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내 성과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회사에 다닐 때는 퍼포먼스가 잘 나오는 게 내 성과라고 생각했다.

퇴사 후 나 혼자 소싱을 하고, 디자인도 하고, CS도 해보니 내 맘대로 안 되고 부족한 점들이 너무 많았다. 좋은 퍼포먼스는 내가 마케팅을 잘해서만이 아니라, MD가 좋은 상품을 만들어 줬기 때문에, 디자이너가 기획에 맞는 디자인을 잘 해줬기 때문에, CS팀이 고객 문의를 잘 커버해 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혼자가 되고 나서야 팀원들이 해줬던 역할과 소중함을 깨달았다. 회사에서 이루었던 성과가 모두 내 성과였고 내 스킬 덕분이었다는 생각은 너무나 오만했다. 회사 안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일할 땐 몰랐던 사람과의 관계, 그들의 도움과 중요성을 혼자 일하다 보니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프리워커 6개월 차,
외로움 마스터가 되었다.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혼자 일하는 것은 외로움을 안고 갈 수밖에 없다. 다만 나를 둘러싼 관계들에 대한 시각이 바뀌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그때는 몰랐던 소중한 사람들을 더욱 신경 쓰게 되었고 쉽게 포기해 버렸던 인연들을 지키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있다. 교육이나 모임에 참여하며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려고 스스로 노력한다. 예전에는 주말에 만나는 친구나 지인들이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렇게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올해는 일도 일이지만 사람과 관계에 노력해 보는 것이 목표의 하나이기도 하다. 자발적 아싸는 퇴사 후 외로움을 겪으며 나름의 사회성을 키워가고 있다.

이전 09화 퇴사하고 나서 가장 잘한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