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강사는 밤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직업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무연고지에 살며 아이를 돌봐야 하는 나는 자연스레 경력단절 전업주부가 되었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 꿈 많던 내가 무너져 내렸다. 딩크족에서 엄마가 되었으니 더 방황했고 괴로웠다. 남편과 말다툼을 한 날이면 억울함이 차올랐다. ‘내가 누구 때문에 울산에서 썩고 있는데!’ 아이들이 잠든 밤이면 새벽까지 내가 할 만한 일은 없는지 취업사이트를 뒤졌다. ‘어쩜 학원 아르바이트 자리도 하나 없냐.’ 당연한 상황이었지만 낙담했다.
‘제2의 직업을 찾아야겠어.’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간 시간만이라도 숨통 트일 곳을 찾고 싶었다. 시급 받는 일을 하기엔 만족스럽지 않았다. ‘공무원 공부를 해볼까? 우체국 시험을 준비해 볼까? 다시 기상청?’ 온갖 고민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때 천안 사는 S 언니를 경주에서 만났다. ‘언니공동체’에서 오소희 작가님이 운영하신 글쓰기 모임으로 인연이 닿은 언니였다. 우리는 나를 찾는 글쓰기를 함께 하며 돈독해진 사이다. “지구 땅에 존재하는 그 누구보다 이 정도로 나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어! “라고 말할 정도로 글을 통해 서로에 대해 세세하게 잘 알고 있는 사이였다. 사는 지역이 다르니 온라인으로만 소통하다가 언니의 여행 일정 덕분에 오프라인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S 언니가 가족 여행 중 잠시 짬을 내어 2시간 남짓 시간이 주어졌다. 오프라인 만남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렸다. 헤어지기 직전 S 언니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는 다시 일할 생각 없어?”
“일은 항상 하고 싶죠! 학원업이 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직업이라 다시는 못할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2의 직업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 중인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네가 잘하는 것,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을 한 번 써봐! 그리고 우리 모임에 글을 나눠봐. 멋진 언니들의 시각에서 너에게 조언을 해주지 않을까?”
40여 분 운전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S 언니의 말이 마음에 맴돌았다. 한편으론 ‘쓴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의구심도 들었다.
나의 장점 중 하나는 추진력이 강하다는 점이다. 이것도 글쓰기 모임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S 언니를 만난 다음 날. 별 기대 없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의 전직은 수학 학원강사.
이 이야기를 하면 다들 "다시 일할 수 있겠네!"라고들 하신다.
그렇지만 나는 나의 현 상황에서는 다시 할 수 없는 직업임을 안다.---
다시 할 수 없는 이유만 나열했다. 경력단절 시기 동안 고등 수학은 손 놓았고요, 학원에 소속되어야 근처 학교의 시험유형을 알 수 있고요, 공부방 원장까지 했는데 학원에 다시 소속되고 싶지 않고요, 저학년은 가르쳐 본 적 없어서 초등을 하기엔 자신이 없고요...
덧붙여 내가 잘하는 것,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을 썼다. 시간 되시는 언니는 제2의 직업으로 추천할 만한 것을 남겨달라고 글을 마무리 지었다.
“수학 강사가 천직이네!”라며 5명이나 전혀 생각지 못한 답변을 주셨다. 그중 E 언니의 답변에 소름이 돋았다. “수학 선생님으로 최상의 조건이다. 경력단절이 있지만 일을 조금 업그레이드해 봐라. 어차피 네 아이가 크면 저학년 때는 엄마가 수학 봐줘야 한다. 아이 친구들 조금 모아 다시 시작해 봐라. 저학년부터 고등까지 가능한 선생님 희귀하다. 아이 돌봄 1순위로 두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 봐라.” 답변과 더불어 전공자가 아닌데 공부방 운영하는 분, 수학 전문 강사인데 초1부터 고3까지 수업하는 분의 링크를 올려주셨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그래 과거에는 딩크족이었으니 저학년 케어가 힘들었던 거지 지금은 누구보다 육아 전문가인데 왜 저학년 수업을 겁냈던 거야?!’ E 언니의 진심 어린 조언에 감사했다.
생각의 전환이 왔다. ‘이런 책 읽으면 수학 공부는 식은 죽 먹기겠는데?’ 내 아이를 키우며 알게 된 수학 도서가 떠올랐다. 책 읽으며 수학 공부하는 커리큘럼을 구상했다. 상가를 알아봤다. 고민 글을 올린 지 6개월 만에 절대 다시 할 수 없을 거라 단언했던 본업을 다시 찾았다. 나는 <수학서재> 원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