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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박하 Nov 06. 2023

자라지 않으면 썩는다

파를 키우며

얼마 전 파를 주문했는데 파가 너무 크고 싱싱했다. 흙대파였는데 파 냄새도 좋고 흙이 많이 붙어있는 뿌리를 보니 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상추 키우는 화분 한편에 파를 잘라서 심어두었다. 5개의 파가 나란히 있는 것을 보니 아이도 즐거워했다. 그렇게 10일 정도 키웠다. 제법 파가 자라났다. 곁에 있는 상추도 열심히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의 파가 전혀 자라지 않았다. 대를 만져보니 물컹했다. 다른 파들을 만져보니 탄탄했다. 살짝 들어보니 금세 뽑혔다. 썩은 파 냄새가 났다. 얼른 뽑아서 버렸다. 구멍 난 자리에 흙을 덮으며 생각했다. '자라지 않으면 썩는구나'



나도 그런 것 같다. 한자리에 오래 머무르며 자기 성장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썩게 되는 것 같다. 현상유지도 버거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버거울 만큼 현상유지에 에너지를 쓰고 있다면 그것은 성장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직장에서의 일이 버겁다면 그것은 그 분야에서 성장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이다. 너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삶이 버거워서 자기 계발은 꿈도 못 꾼다면 그것으로도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자기 계발을 생각하는 여유가 생길 때 그것으로 충분하다.


온라인 서점을 보면 늘 자기 계발 서적들이 순위권에 있다. 사람은 성장에 대한 욕구가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곁에서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쁨이 된다. 아이를 키우는 기쁨은 어디에 비할바가 없다. 아이가 없는 삶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이를 키우는 보람과 감사는 그 어떤 보람보다 크다. 아마 부모님들이 은퇴 후 반려동물이나 식물을 키우는 것도 다 성장을 지켜보고 싶은 욕구에서 일 것이다.


몇 년 전부터 '갓생'이라는 키워드를 보며 사람들이 많이 자극받고 따라 하는 것을 보았다. '욜로'가 끝나고 찾아온 반가운 변화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비아냥 거리지 않고 서로 응원하는 문화가 생긴 것에 대해서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규칙적으로 잠을 자고 일어나고 운동하고 건강한 음식을 챙겨 먹고 책을 읽고 내가 가진 것들을 나누는 삶, 건강한 삶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어서 그 흐름에 올라탈 수 있어서 감사하다.


나는 왜 영어공부를 놓지 못하고 이렇게 나이 40이 넘어서도 강의를 듣고 애를 쓰나 생각해 보면 여전히 나는 나 자신의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번역하고 아이를 돌보는 일상도 너무 감사하다. 번역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지금은 버겁고 쉽지 않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내 삶이 영원히 마무리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단지 오늘의 삶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다른 기회와 장이 찾아오고 그때 나는 준비되고 있고 싶다.


오래전부터 꿈꿔온 일이 있다. 아마 30여년즘을 꿈꿔온 일이다. 지금은 잠시 다른 분야에서 머물고 있고 한국에서의 편리한 삶을 살아내고 있지만 언젠가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 가난과 불평등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은 숨을 고르는 시간, 안전한 온실에서 성장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준비되어서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길 바라며 커피 한 모금 들이키고 다시 시작한다.









사진: Unsplash의 Joshua Lanzar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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