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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박하 Nov 20. 2023

집에서 화장하고 일하는 프리랜서

재택 하는 워킹맘 일상 

인터넷 쇼핑을 하다 보면 등원룩이라는 카피를 보게 된다. 나이에 따라 추천해 주는 것들인데 처음에는 의아했다. 등원룩이 따로 있나 싶었다. 아이를 데려다줄 때 그냥 외출복을 입으면 되는 것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출근하는 것처럼 제대로 차려입고 나가자니 번거로웠고 그러자고 집에서 입던 데로 입고 나가자니 그것도 나름 외출이고 약간의 사회생활이라서 어려웠다. 아이의 친구들, 다른 엄마들과 인사를 하는 경우도 많고 하원하고는 학원도 가야 하니 나에게는 최대치의 사회 생활인 샘이다. 


그렇다고 출근하는 것처럼 재킷에 블라우스까지 입기에는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등원룩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등원룩의 핵심은 바로 꾸안꾸이다. 꾸민 듯 안 꾸미듯 꾸민 것이 핵심이다. 나름 트렌디하게 입으면서도 외출하듯이 한껏 차려입는 것은 아닌 룩이 핵심인 것이다. 그래서 계절에 맞춰서 이것도 나름 출근이라고 바지 몇 개와 상의 몇 개와 신발 몇 개를 준비했다. 새로 산 것은 아니고 정장과 재킷을 제외한 적당한 니트와 맨투맨 (여름에는 티셔츠)을 골라서 꺼내기 쉬운 곳에 두고 아침마다 그중에서 골라 입게 되었다. 


거기다가 아무래도 마주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약간의 화장도 하게 되었다. 화장이라 봐야 선크림에 쿠션 좀 바르는 것이지만 그래도 아침마다 머리를 감고 옷을 갖춰 입는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와 그렇게 일을 하고 밥을 먹는다. 이 것에는 아주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바로 일의 효율이 더 올라간다는 것이다. 적당히 편안하지만 갖춰 입은 옷은 마음을 정돈하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일까 허리를 펴고 더 집중해서 일할 수 있다. 어디선가 재택근무에도 옷을 갖춰 입고 일하면 효과가 더 좋다는 연구를 본 것 같다 (논문을 찾을 수가 없다) 


처음에 아이 등하교를 함께 해야 해서 조금 불평하기도 했었다. 카메룬에서는 집 앞으로 데려다주고 데리고 가서 시간을 많이 활용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등하원에 학원까지 다 같이 다녀야 하니 오전오후 3-4시간 정도를 함께 보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업무 효율과 정신 건강에는 더 좋다고 느껴진다.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머리를 감고 등원준비를 함께하고 산책을 할 수 있다. 이런 일이 아니면 몇 날 며칠이고 집에만 있을 나인데 아이덕에 계절이 바뀌는 것도 볼 수 있고 인사하는 아이 친구들 엄마들도 생겼다. 거기다가 옷도 잘 갖춰 입고 몇천 걸음 더 걷게 되니 몸과 마음 건강에도 훨씬 좋다. 원래 가변운 운동은 두뇌회전에 좋다. (Ploughman, 2009) 신선한 아침공기를 쐬고 돌아와 일하면 훨씬 업무 효율이 좋다. 


그리고 옷도 잘 갖춰 입고 일하다 보면 개인적으로는 더 집중해서 잘 일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일하다가 가끔 거울도 보고 향수도 뿌리고 하면 기분 전환도 되고 좋다. 그러다가 오후에 아이를 데리러 가고 사람들을 만나고 적당한 사회생활 후에 들어와 다시 업무를 하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더 효율이 오른다. (하교 후에는 아이가 쉬느라 1-2시간 정도 혼자 책 보고 만들기 하고 유튜브를 본다) 이때에도 입었던 옷 그대로 화장도 지우지 않고 손만 씻고 열심히 일을 한다. 그러고 나서 6시가 되면 퇴근하는 기분으로 옷을 갈아입고 세수를 한다. 이때 세수를 하면 얼마나 개운한지 모른다. 


역시 삶에 그냥 주어지는 것들은 없다. 내게 안 좋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뒤돌아보면 좋은 일이었던 적이 많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많다. 특히 매일 일상으로 주어지는 모든 순간들은 우리 삶을 더 윤택하게 해 준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같은 상황에서 어떤 삶을 결정할 것인지는 나에게 주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내일도 일찍이 일어나 머리를 감고 화장을 하고 허리를 똑바로 펴고 일을 시작해보려 한다. 몇년 후 나는 이 시절을 어떻게 기억할까. 



Ploughman, M. (2008). Exercise is brain food: the effects of physical activity on cognitive function. Developmental neurorehabilitation11(3), 236-240.



사진: UnsplashBrian Wangenhe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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