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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역 Nov 20. 2019

돈 내고 하는 달리기

마포대교 달리는 날

“돈 주고 달리기를 왜 해?”

그러게 말이다.

돈 주고 달리기를 왜 하냐 물으면,
돈 줘야 할 수 있는 경험이라서. 라고 답한다.

서울 하프마라톤 10km 코스는 광화문광장에서 시작해 마포대교를 건너 여의도공원에서 끝난다. 내가 언제 차량 통제된 서울 한복판 도로 위를, 그것도 차선 위를 맘껏 달려보겠는가. 돈 주고 밖에 못하는 경험이다.



5km 구간이 지나면 곧 마포대교가 나온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간이다. 평소에는 달리는 차 안에서만 지날 수 있는 곳이지만 내 두 발로 차선 위를 달리는 그 순간엔 생전 처음 느끼는 새롭고 짜릿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다 같은 지점을 향해 도로 위를 달리는 그 광경도 꽤 진귀하다.



마라톤이 열리는 그 이른 아침의 공기에는, 각지에서 온 이들의 끓어오르는 에너지와 힘찬 기운이 모여 흐른다. 처음 보는 옆 사람을 응원하고, 목소리를 높여 격려해주고, 하이파이브를 한다. 나의 에너지를 그들에게 전하고 그들의 에너지를 받고 그 에너지가 모여 더 큰 에너지가 넘치고 또 넘치는 뜨거운 광경이다.

또래의 젊은 친구들부터 머리가 희끗한 할아버지들까지, 연령대가 정말 다양하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다양한 연령대가 한 자리에 모여 같은 액티비티를 즐기는 광경이 흔할까 싶다. 체력은 나이와 무관하며, 도전은 아무리 많이 해도 넘치지 않는다는 걸 느낀다.

돈 주고 하는 달리기를 1년에 한두 번 연례행사처럼 해 온지 벌써 햇수로 3년째. 매번 함께 달리는 멤버는 조금씩 바뀌지만 그래도 늘 나와 비슷한 에너지를 가진 에너자이저들이 주변에 있는 게 참 다행이고 행운이라 생각한다.



물론 출발선에서만 함께 하고 시작과 동시에 각자 달린다. 마라톤은 온전히 개인의 기록 싸움이다. 옆 사람이 빨리 달리건 느리게 달리건 중요치 않다. 나만의 페이스를 유지하고 내 체력과 호흡을 온전히 내가 컨트롤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누군가와 함께 할 때 더 자극이 되는 스포츠다. 잠깐 멈춰 쉬고 싶을 때, 내 앞에 선 누군가를 기준 삼아 저 사람을 따라잡자는 마음으로 속도를 내면 또 금세 에너지가 생긴다.

매일 운동을 하고 체력을 키우는 건 온전히 나와의 외로운 싸움이지만, 이런 자리에 나오게 되면 남들과의 비교 선상에서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내 최고 기록을 보고 기쁜 건 잠시, 기록대에서 50분대 기록을 세운 여자를 보면 또 새로운 자극을 받고 다음 마라톤을 기약하게 되는 거다.
 
3년 동안 총 여섯 번의 10km 마라톤을 완주했다. 꾸준히 한 운동 덕분인지, 요령이 생긴 것인지, 내 10km 기록은 미세하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내년의 목표는 50분 대다.

17년 여의도 벚꽃 마라톤(10km, 1시간 10분)
17년 서울 하프마라톤(10km, 1시간 13분)
18년 서울 하프마라톤(10km, 1시간 20분)
19년 서울 하프마라톤(10km, 1시간 4분)
19년 서울 웨어러블런(10km, 1시간 4분)
19년 춘천 마라톤(10km, 1시간 2분)



가장 최근에 한 춘천 마라톤은 서울이 아닌 타지에서 달리기를 한 경험 자체가 꽤 기억에 남는다. 비록 10km 코스라 풍경이 생각보다 아름답진 않았지만. 춘천 마라톤 하프 코스가 마라톤의 꽃이라고 하던데, 내년에는 한번 피 맛 나는 도전을 해볼까 한다.



돈 주고 하는 달리기는 내 체력이 닿는 한 계속 도전할 계획이다. 체력은 나이와 무관하며, 도전은 해도 해도 과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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