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혼자의 무거움, 그 7화
2020년 한국에서 MBTI는 ‘너 T야?’라는 질문과 자매품, ‘T형 인간의 특징’, ‘T형 구별법' 등과 같은 밈(meme)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SNS에 퍼지기 시작했다. MBTI는 사실 2차 세계대전 중이던 미국의 남성들이 군에 징집되자 여성 노동자를 산업 현장에 적재적소에 배치하기 위한 효율적인 방법을 위해 1940년대 미국에서 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Isabel Briggs Myers)와 그녀의 어머니 캐서린 브릭스(Katharine Cook Briggs)에 의해 개발됐다. 처음에는 경영 교육, 인사 관리, 리더십 개발 등을 목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이 사람들이 성격 유형을 가지고 관계에 대한 고민을 하며 개인의 정체성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유행처럼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사회는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캐나다에서는 직업과 관련해 MBTI 지표에 상당히 의지하는 것처럼 느꼈다. 그건 아마 다문화와 다양성으로 이루어진 사회 특성에 영향을 더욱 받은 것 같았다. 차이를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다름 속에서도 비슷한 성향을 찾아 그 안에서 단합을 이루어 내야 조직 내 균열을 최대한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불과 몇 년 전 나는 극심한 우울감에 빠져 있었다. 내 몸에 돌돌 감겨있는 이불을 내 몸과 분리시키는 것조차 큰 용기가 필요해 아침에 눈을 뜨고 나서도 애착인형에 집착하는 아이처럼 이불만 붙잡은 채 시계만 노려보다 결국 해가 지고 어두워질 때 쯤 겨우 일어나곤 했다.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더니(‘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 은희경) 그 시기에 나는 정말 하루종일 시계만 바라보며 내 불행과 불안을 스스로 증폭시켰다. 삶에 만족하는 행복한 사람이 보지 않는 것은 시계 뿐이 아닐 것이다. MBTI 따위도 굳이 찾아보지 않을 확률이 크다. 굳이 ‘나’라는 존재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도구가 필요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 당시 지푸라기를 잡는 아니, 지푸라기를 찾는 간절함으로 MBTI 뿐 아니라 에니어그램 별자리, 심지어 8살 때 처음 접하고 코웃음을 친 후 거들떠 보지도 듣지도 않았던 혈액형 테스트까지 했다. 그리고 사주 공부를 처음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나도 내가 힘들었던 때였다. 나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는 나의 어떤 부분을 가졌다는 것은 그리고 그것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마치 마음이 맞지 않는 짝과 불과 10센티미터 거리에서 한 책상을 나눠쓰며 평생을 짝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느낌이었다.
가끔 나를 힘들게 하는, 아니 사실은 매일 일상에서 마주하고 감당해야하는 나의 부분들은, 후회없는 선택을 위한 집착, 비현실적인 이상주의, 그리고 과한 감정이입이다. 마트에 있는 모든 종류의 사과를 전부 살펴본 후(살펴본다는 것은, 촉감, 질감, 가격, 세일비율, 사과 종류에 따른 리뷰 따위를 종합적으로 알아본다는 것을 의미한다)에야 결정할 수 있다. 문제는 북미에는 한국보다 다양한 품종의 사과가 있다는 것이다. 맥인트오시(McIntosh), 허니크리스프(Honeycrisp), 갈라(Gala), 엠파이어(Empire), 골든 딜리셔스(Golden Delicious), 후지(Fuji), 코틀랜드(Cortland), 노던 스파이(Northern Spy), 재즈(Jazz), 브래번(Braeburn), 엔비(Envy) 등등 (아마 내가 모르는 품종도 더 있을 것이다). 누가 옆에서 지켜봤다면 기업이나 학교 급식을 위한 수 백 킬로그램의 사과 납품을 위한 검수를 하는 중이라고 짐작하겠지만 결국 내 장바구니에 들어갈 사과 여섯 알을 선택하기 위한 과정이다. 검수(?)를 하면서 나는 도대체 왜 이러고 있나, 싶었다. 시간낭비에 체력낭비인 게 분명했고 고작 사과 여섯 알을 위해 반 시간을 쓰는 건 어디가서 말도 못할 이상한 완벽주의임이 분명했다. 나는 거창하고 대단하게 완벽하고 싶었는 지 모른다.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사소한 곳에서 완벽주의 흉내라도 내고 위안하고 싶었는지도. 그래도 다행이라면 후회없는 선택을 위한 집착의 경우 아무도 모르게 숨길 수 있는 부분이다. 장을 보거나 쇼핑을 하는 행위를 혼자하면 된다. 지나치게 긴 시간 동안 사과나 양배추 주위를 서성이고 있다 해도 마트 직원이 와서 왜 그렇게 시간 낭비와 체력 낭비를 하느냐고, 너는 참 이상하다고, 문제 삼지 않기 때문이다. 간혹 누군가와 함께 할 일이 생겨도 큰 문제는 없다. 나의 그런 행동으로 인해 함께 있는 사람이 받을 고통과 피해에 대해 아주 잘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같이 장을 보거나 쇼핑을 할 때는 상대적으로 덜 예민한 품목을 주로 사거나 아예 사지 않는 쪽을 택하기 때문이다. 그럴 땐 내가 어떤 것을 ‘득'하는 과정의 재미보다 상대방의 구매에 함께 동의하는 재미를 선택하는 편이다.
그러나 MBTI 테스트가 알려준 나의 두 번째 기질, 비현실적인 이상주의는 좀 문제가 커지는데 그건 주로 관계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알게 된지 얼마 안된 사람들은 나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서영 씨는 성격이 털털하고 시원시원 하네요.”
그런 칭찬을 들으면 ‘허허허, 그런가요’하고 얼버무리는데 사실 그건 보다 더 털털하고 더 시원시원해 보이고 싶은 욕망으로 계산된 반응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털털하거나 시원시원한 것과 거리가 먼 아니 어쩌면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다. 어느 팟캐스트였던가 유튜브 였던가 아니면 책이었던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디선가 듣게 된 한 문장으로 나는 더이상 선천적으로 훌륭(?)한 인성을 가지고 태어나지 못한 것으로 슬퍼하지 않게 되었다.
‘가식도 삼 년이면 인성이다' (크, 정말 멋지지 않은가?!)
털털하고 시원시원해서 누구와도 거리낌 없이 잘 지내고, 혹시나 잘 지내다 관계에 문제가 생겨도 쿨하게 대처한 후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내는 사람…… 비록 그런 멋진 사람은 못 되었으나 그 엇비슷한 모습이라도 될 수 있게 말하고 행동하고 결정하는 연습을 일상에서 꾸준히 하려고 노력한다. 그 성과로 가끔 그런 철저히 기획(?)된 칭찬을 듣는데 성공한 날도 있지만 아무리 연습하고 노력해도 나는 결코 쿨한 성격을 가질 수가 없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중립 이상의 긍정적인 분위기에서는 얼마든지 ‘털털하고 시원시원한 서영 씨'가 되지만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기운이 느껴지면 내 마음은 천 원 샵에서 급하게 산 와인잔처럼 너무 쉽게 바사삭 깨져버렸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최초의 기억이 시작된 유년시절부터 항상 관계가 힘들었다. 내 인생 첫 사회생활이었던 유아원 시절, 내 유일한 기억은 한 살 위였던 여자애들 무리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던 기억이다. 그때 나는 상하의가 한 벌 세트였던 빨간 겨울 옷을 입고 있었는데 내가 입고 옷의 촉감과 함께 당시 감정의 불쾌함을 어제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 이후에 간 유치원에서는 또래와 어울린 기억이 전혀 없고, 초등학교는 전학없이 6년이나 같은 학교를 다녔지만 6년 개근상을 타고도 졸업할 때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없어 짜장면을 같이 사주시겠다는 할아버지와 단둘이 동네 중국집에 갔다. 중고등학교 시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춘기와 시너지(?)를 발휘해 정말 엉망진창 이였다. 반 아이들이 말을 걸어줘도 대답을 거의 하지 않고, 쉬는 시간에 매점가자며 자고 있는 나를 깨우면 성질을 부렸다. 그때 당시 내 인생 최악의 암흑기였고 그런 상황에서는 친구라는 건 돼지목에 진주목걸이보다 더 우스꽝스러운 사치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런 전적이 있었기에 나는 항상 ‘관계'에 대한 자격지심 같은 것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정확히 문제가 뭔지 몰랐다. 그런데 어느날 MBTI라는 세계적으로 널리 쓰인다는 미국 발 성격유형 검사가 내 병(?)을 진단해준 것이다. ‘지나치게 이상적인 기대로 관계에 어려움이 있는 유형’이라고. 인터넷에서 클릭 몇번, 그것도 무료로 한 MBTI가 ‘이상주의'라는 진단을 해준 것이다. 그 진단을 듣고 보니 내 문제가 비로소 보이는 기분이었다. 친구든 연인이든 알맞은 때, 적절한 상황에 주어졌을 때 나와 100퍼센트 잘 맞는 사람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탯줄로 연결된 하나의 몸이었던 모친도 자식과 100퍼센트 ‘잘 맞는 경우'는 없는데 하물며 타인이 그럴 수 있을리가 없는데도 막연한 환상을 가졌던 모양이었다. 무턱대고 두려워했고, 동시에 기대했으며 그건 마음은 집착을 불렀다. ‘집착은 결국 파멸’이라는 매번 비슷한 결말을 도출하며 자괴감과 절망으로 마침표가 찍히고 마는 관계가 쌓여갔다.
과도한 이상주의, 비합리적 완벽주의와 함께 INFJ의 또 다른 단점은 바로 지나친 감정이입. 다른 사람의 감정을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은 관계에서 분명 필요한 부분인 것은 맞지만 ‘지나친'에 방점이 찍히는 순간 타인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에너지 소진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만다. 그래, 생각해보면 감정이입은 항상 날 힘들게 했었다. 토이스토리 2를 보다 제시가 에밀리와 함께 했던 시간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제시에게 감정이입을 너무 심하게 하는 바람에 몇 달 동안 회사 급식에 나오는 모든 종류의 감자 요리를 쳐다 보지 못했다(미스터 포테이토 헤드가 생각나서). 지나친 감정이입은 시도때도 없이 괴롭히는데 특히 누군가와 감정적인 다툼이 있었을 때 상대방이 한 모진 말에 상처를 받는 것과 함께 모진 말을 하고 나서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상대방의 감정까지 이입하는 극강의 오지랖을 시전하여 2인분의 고통을 자처한다. 이 부분도 과도한 이상주의와 함께 인간관계를 힘든 것으로 만드는 큰 요인이 된다. 그래서 나는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잠깐, 나도 헷갈린다. 애초에 왜 MBTI 이야기를 꺼냈던가? 아아, 나는 변명을 하고 싶었던 거다. 내가 이렇게까지 인간관계가 두려워 벌벌 떠는 이유. 내가 어디 크게 하자가 있어서가 아니라니까? 무려 미국이 개발한 공신력 있는 테스트에서 ‘그런 종류의 사'이 이 세상에 엄연히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다고! 비록 전세계 인구의 1퍼센트로 16개의 유형 중 가장 적은 INFJ지만 그래도 나와 비슷한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 분명 존재한다고 말해주는 것이 근거가 있는 통계 숫자라는 사실은 큰 위로가 되었다.
다시 말해보자. 비합리적 완벽주의, 과도한 이상주의, 지나친 감정이입…… 이런 성향들은 나를 극단적 내향인으로 만들었을 지 모른다. 간만에 생긴 휴일, 밖에 나가 누군가와 즐거운 일을 도모하기보다 내 공간에서 그저 혼자 조용히 보내는 것을 택하는 사람, 그게 나였다. 하지만 팩트는 이거다. 내가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으니 내가 이런 극단적 히키코모리인 것이 정당하다, 그러니 날 내버려둬! 따위의 주장을 하겠다는 게 아니다. 나는 이제 내가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확실히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도. 더불어 어떤 부분에서 조심하고 어떤 것을 위해 노력하면 되는 건지도 알고 됐다. 그건 MBTI이건 사주명리건 별자리, 혈액형 테스트까지 가리지 않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노력한 결과였다.
누구나 디폴트(Default)는 혼자지만 혼자인 시간을 더 많이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내향인(I형)일 수록, 관계에 대한 고민이 많고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누구보다 자신에 대해 더 잘 알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노력 자체가 필요없이 행복한 사람이 최고다. 하지만 부득이하게도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그 무엇보다 ‘나 탐구'를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관계는 나 자신과의 관계다. 혼자 오롯이 나와 지내는 혼자의 시간 나를 미워하지 않게 되면 타인과의 관계도 훨씬 수월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혈액형 테스트면 어떤가. 나를 1밀리미터라도 더 깊이 알 수 있게 되는 쥐꼬리만한 단서가 된다면 뭐든 좋다.
내가 가진 명확한 언어로 짚어준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스트레스와 과로가 원인’이라는, 들어도 안들어도 그만인 말만 들어온 만성병 환자가 ‘아, 그건 고춧가루 알러지에요'라는 설명을 듣게 된 느낌이었다. 김치를 비롯한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내가 고춧가루 알러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도 알러지를 피하는 날보다 알러지를 감당하는 날이 훨씬 많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확하고 구체적인 진단'의 힘은 확실히 컸다. 내가 관계에 서툰 것은 이상주의에 빠져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