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혼자의 무거움, 그 29화
자주 거짓말을 할 때가 있다. 첫 번째는, 잘 지내냐는 오랜만에 전해오는 안부에 '잘 지낸다'의 정의가 무엇인지 알려주면 그에 맞는 대답을 해주겠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고는 그냥, 잘 지낸다고 당신은 어떻냐고 마음에도 없는 대답과 석연치 않은 맞질문을 하는 경우, 그리고 두 번째는 방향이 같으니 같이 가자고 하는 누군가에게 들렀다 갈 곳이 있어 동행하자는 제안에 거절할 때다.
첫 번째는 한 두 문장으로 끝날 것 같지 않아 일단 차치하고 두 번째의 경우부터 변명하자면, '동행'이라는 건 꽤 엄청난 일이라 그렇다. 상대방이 자차가 있어 태워주는 상황이라면 조수석이라는 자리에 어울리는 광대가 될 자신이 없어서. 상대방과 내가 둘 다 차가 없어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좀 더 복잡한 고민이 예정되어 있다.
방향이 같은 누군가와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건 마치 60분짜리 결혼을 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가는 길 동안은' 웬만하면 모든 걸 함께하고 서로를 신경 써야 하는 관계 동의서에 서명을 하는 것과 같다. 애매하게 거리가 떨어져서도 안되고, 눈앞에 자리가 났다고 해도 한 명만 앉는 건 뭔가 어색해 좌석을 차지하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눈앞의 배려석이 잠깐 비었대도 바로 옆의 상대방이 격렬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싶어 하는지, 두 다리가 부서져도 그런 부도덕을 행하는 것을 경멸하는 사람인지를 눈치로 파악하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든 둘 중에 하나는 해내야 하는 것이다. 이건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애정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사항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공통사항이다.
대중교통 이용 시 외톨이를 자처하는 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 그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만나는 빅재미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그 빅재미란 건 바로 사람 구경과 상상놀이다. 내게는 45도 맞은편에 앉은 사람을 관찰하고 상상하는 악취미가 있다는 걸 고백해야겠다. 그렇다고 상대방이 불편함을 느낄 만큼 쳐다보는 건 아니다. FBI급으로 신속정확한 스캔을 하고 나서 그 스캔된 이미지를 다시 떠올리며 상상의 세계로 빠지는 건 대게 그 사람의 신발을 보는 동안 일어난다. 45도인 이유는 정면에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방금 매장에서 사서 신고 나온 것 같이 깔끔한 나이키 에어 맥스에, 운동화끈도 길이를 맞춰 정갈하게 묶은, 구김이 하나도 없는 반듯한 백팩을 멘 사람, 오늘은 이 사람 바로 오늘 쪽 옆에 앉은 남자가 나의 타깃이다.
30분 전부터 폰을 보며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 사람은 '덕후 선생님'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몇 가지 아이템으로 유추할 수 있었다. 인디핑크색 책가방, 메추리알만 한 흑색 구슬이 달린 염주 모양의 팔찌와 레이어드 한 분홍과 자주색이 섞인 끈팔찌의 완벽한 리본 매듭.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시선을 강탈한 아이템은, 양손으로 감싸 쥐듯 들고 있는 폰에 씌운 스마트폰 케이스였다. 토끼, 강아지, 다람쥐, 공룡(이 왜 그들 사이에 끼어있는지 의아했다), 펭귄 따위가 파스텔톤으로 그려진 익살스러운 폰 케이스였다. 성인 남자의 두툼한 손보다는 6세 이하 여자 아이의 겨울 내복에 더 어울리는 패턴이었다.
그리고 반짝이는 금속이 크리스털을 감싸고 있는, 마치 판타지 소설 주인공이 하고 있을 것 같은 펜던트가 목에 붙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금색 체인 목걸이가 목 속에 파묻혀 마치 펜던트가 목에 바로 붙어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었다. 잠을 잘 때 너무 심하게 졸리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두피가 훤히 보이는 결코 풍성하지 않은 머리카락은 심지어 완벽한 직모였는데 8할의 머리카락은 왼쪽으로 나머지 2할은 오른쪽으로 가지런히 넘어가 있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일관되지 않은 다양한 스타일이 한 곳에 모여있는 느낌이었지만 딱 하나 그 남자의 전반적인 스타일을 관통하는 메인 테마가 있긴 있었다. 그런 핑크였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이템으로 몸을 장식한 그 사람의 정성이 숭고하게 느껴졌다.
내가 타고 있던 버스는 다음 정류장에 멈췄고 새로운 승객들이 버스에 올라탔다. 좌석은 이미 만석이어서 새로 온 승객들은 아무도 앉지 못했다. 순간 미스터 핑크의 신발이 갑자기 움직였다.
"You wanna sit here?"
미스터 핑크 씨는 방금 버스를 탄 한 승객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말했다. 그 승객은 (내 눈짐작이 맞다면) 26인치짜리와 32인치짜리 캐리어가 버스 안에서 제멋대로 구르는 것을 제동 하느라 조금 힘들어 보였다. 그러던 와중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톡 치자 깜짝 놀란 것 같았다.
"No, thanks. I am okay."
그는 1.5초쯤 고개를 돌린 채 상황을 파악하더니 정중하게 사양했다.
"Are you sure?"
"Yeah yeah, thanks though"
심지어 미스터 핑크 씨는 괜찮다는 청년에게 한 번 더 물어주는 2차 상냥함까지 잊지 않았다. 여행용 캐리어를 들고 있는 승객이 탑승하자 만석이었던 버스 안, 자리에서 일어나 양보를 시도한 사람은 미스터 핑크 씨가 유일했다. 솔직히 나도 그들 근처에 (심지어 더 가까운 곳에) 앉아있었지만 양보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변명하건대) 내가 앉아있는 좌석은 약자들을 위한 배려석이 아니었고 이민 가방만 한 캐리어를 두 개나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내 쪽이 오히려 사회적 약자(근력적, 나이적, 사회적) 일 게 확실하니까 솔직한 심정으로 난 좀 앉아있고 싶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한창 무르익은 오늘의 취미활동을 중단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상상력의 트리거인 미스터 핑크 씨의 운동화를 계속 봐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여하튼 미스터 핑크 씨가 자신의 자리를 이민가방 청년에게 양보하기 위해 일어났을 때 나도 모르게 그의 신발에서 얼굴로 시선을 옮겼고, 순간 나는 2대 8로 넘겨 붙인 그의 머리 뒤 쪽으로부터 방사선 모양으로 퍼져 나오는 동그랗고 환한 빛 같은 걸 본 것 같았다. 그의 목에 끼어 있던 금색 목걸이는 움직일 때마다 존재감을 드러내며 막 옹달샘에서 건져 올린 것처럼 빛났고, 손목의 매달린 분홍색 팔찌의 리본은 지중해 연안의 멜테미 바람을 맞은 산토리니 소녀의 원피스 자락처럼 살랑-하고 흔들렸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세 종류의 인간을 사랑스럽게 여겼다. 솔직하고 용기 있는 글을 쓰는 사람, 오버하지 않아도 유머러스한 사람, 그리고 웃을 때 찢어진 눈이 휘어지는 사람. 그런데 캐나다에 온 이후로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인간 부류가 한 종류 늘었다. 그건 바로 치장하는 것에 정성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모나미 룩(흰 셔츠 + 검정 슬랙스로 대표되는 남성 데이트룩의 클리셰)이나 베이지 군단(가을이면 거리마다 등장하는 베이지 트렌치코트 무리)처럼, '너도나도 정신'으로 대변되는 한국식 꾸밈 활동보다는, 오롯이 자기만족의, 자기만족을 위한, 자기만족에 의한!!! 꾸밈을 좋아한다.
하루는 친구들과 밴쿠버 시내를 지나고 있었다. 내가 '너무 멋있다!'하고 외치며 1시 반 방향을 가리켰고 친구들은 내 손을 따라 '멋진 사람'을 찾았다. 그리고 정확히 3초쯤 후에 둘 중의 둘이 동시에 물었다.
"진심이세요?"
내가 가리켰던 그 사람은 남성 정장을 입고 있었다. 좀 더 상세히 말하자면 아주 화려한 패턴이 그려진 하얀색 셔츠에 조끼, 바지, 블레이져로 구성된 쓰리 피스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색깔은 무려 연보라색이었다. 셔츠에 그려진 패턴의 색깔도 세 조각의 정장도 모두 연보라색이었다. 특이한 점은 그 정장 세트는 원래 하나의 세트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연보라색이긴 했어도 재질도 색감도 조금씩 달랐고 심지어 마모 정도와 오염 정도도 조금씩 달른 걸로 보아 아마도 연보라색을 좋아하는 그 남자가 드래곤볼을 모으듯 최대한 연보라색에 가까운 정장 조각들을 찾아 모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색감은 예뻤으나 맞춤정장도 아닌, 출처가 각각 다른 곳에서 구한 것인 만큼 몸에 딱 맞지도 않았기에, '멋지다'는 내 감탄을 친구들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연보라색이 아니었다. 쓰리피쓰 정장이 아니었다. 연보라색을 쓰리피쓰(3조각이)나 모은 그 정성과, 열심히 모은 셋업을 자신의 몸에 입히면서 행복해했을 그 순수한 환희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연보라색 삼중 구성 정장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그러니까 네온블루였거나 루비레드였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그건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이자 존경 비슷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또한 흥미이기도 했다. 미스터 핑크 씨의 신발에서 시선을 옮겨 나를 내려다봤다. 나는 과연 내 몸에 이것저것을 입히고 씌우면서 정성이나 기쁨을 느꼈나. 그런 적도 언젠가 있긴 했겠지만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보이는 대로 사지를 끼워 넣으며 거울 한 번 제대로 볼 새도 없이 엘리베이터를 향해, 버스를 향해 달려온 세월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예전에 본 방송프로그램이었던가. 잠옷이나 속옷도 엄선해서 고른다는 사람들을 본 기억이 났다. 그들은 아무도 보지 않아도 '내'가 알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했다.
버스에서 내리며 상상해 봤다. 연보라색 조끼에 두 팔을 끼운 후 단추를 채우는 뿌듯함과 분홍색 팔찌에 손목을 밀어 넣은 후 리본을 정리하는 기쁨을. 그 행복이 마치 내 것처럼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 사람들은 그저 분홍색과 보라색을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좋아했을 뿐인데 멀리서 바라본 나에게도 일종의 행복감을 (의도치 않게) 전달함 셈이었다. 문득 조금 용기가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 몸에 씌우고 입히거나 혹은 행하는 것으로 내 주위 사람들에게도 좋은 기운을 (의도치 않아도) 줄 수 있을까. 역시 눈치 보지 않고 스스로를 사랑한다는 건 엄청난 일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