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젠 투어로 필스너 우르켈 맥주 양조장 투어
우리 집은 엄마 > 아빠 = 동생 >>>>>> 나 순으로 술을 잘 마신다. 나는 술맛도 모르고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져서 거의 안 마신다. 나 혼자 독일 여행을 다녀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2주 간 여행하면서 맥주를 한 잔도 안 마시고 왔다고 했더니 이해할 수 없다는 친구들의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1인당 연간 맥주 소비량 1위인 체코"에 왔으니 맥주 공장을 안 가보는 건 아쉬울 거 같았다. (체코의 1인당 연간 맥주 소비량은 조사 시기나 기관에 따라 약 140~150L 정도로 나온다. 맥주 1캔을 300ml로 계산할 때 최대 500캔 수준!) 그래서 플젠(Plzeň)에 위치한 필스너 우르겔 양조장 투어를 신청했다. 우리는 프라하 중앙역에서 만나 가이드님과 같이 플젠행 기차를 탔다. 1시간 반 정도 달려 플젠에 도착했다.
양조장 투어 전에 가이드님이 플젠 시내를 소개해주셨다. 우선 성 바르톨로메오 대성당(Cathedral of St. Bartholomew)으로 갔다. 고딕 양식의 높은 아치와 스테인드글라스가 특징인 이 대성당은 14세기 후반부터 건축이 들어가 16세기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플젠의 '저온 다습한 추위'를 피할 겸 성당 내부를 관람했다. (플젠에 오래 사셨던 가이드님이 본인은 플젠의 '서서히 옷과 뼈에 찬물이 스며드는 듯한 추위'보다 한국의 시베리아 바람 부는 한파가 낫다고 했다.)
공화국 광장(Náměstí Republiky)에는 큰 트리와 크리스마스 마켓 상점들이 보였다. 크리스마스 전에는 훨씬 많은 부스가 설치되었을 거 같았다. 한편 10시가 안 된 시간이었는데 안개가 자욱했다. 해가 없으니 걷는데 추웠다. 가이드님이 플젠에 살 때 단골이었다는 카페로 가 아메리카노를 한 잔씩 대접해 주셨다. 금방 내린 커피 향이 좋았다. 직접 구운 듯한 쿠키(SUŠENKA)도 팔고 있었는데 쿠키 모양이 우리가 대성당 앞에서 본 집모양들과 비슷했다.
드디어 오늘 투어의 핵심인 필스너 우르켈 양조장으로 갔다.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은 필스너라는 라거 계열 맥주의 '원조(Urquell, 우르켈)'라는 뜻이다. 따라서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Pilsner(필스너)’라는 맥주 스타일이 바로 플젠의 필스너 우르켈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투어의 시작인 정문 아치 문(Brewery Gate)이 멋있었다. 이 문은 양조장 창립(1842년) 50주년을 기념하여 1892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MDCCCXLII는 로마 숫자로 1842, MDCCCXCII는 로마 숫자로 1892 의미)
방문자 센터에 이어진 실내 전시관을 구경한 후 밖으로 이동했다. 버스를 타고 실제 맥주를 만드는 곳으로 갔다. 맥주의 원재료인 볶은 맥아 알갱이를 직접 집어 먹어보는 것부터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맥주를 병과 캔에 담는 라인까지 볼 수 있다.
19세기부터 사용되던 지하 셀라(lagering cellars)로 이동했다. 여기에 있는 참나무 배럴(oak barrels)에서 맥주가 숙성된다고 한다. 관람객들에게 잔을 하나씩 주는데 이걸 직원에게 건네면 신선한 생맥주를 따라 준다. 시음을 했다. 술맛은 잘 모르지만, 기분상 더 신선하고 시원한 거 같았다.
양조장 투어의 마지막은 기념품 가게였다. 우리는 필스너 우르켈 뱃지와 자석을 구매했다.
기차를 타기 전 양조장 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하기로 했다. 이 식당은 양조장 맥주 탱크에서 갓 나온 맥주를 마실 수 있어 유명한 곳이었다. 우리는 체코 전통음식을 종류별로 시켜 먹었다. (아빠는 먹다 보니 고기 종류는 다른데 소스 맛이 다 비슷한 거 같다고 했다.)
플젠에서 다시 프라하로 돌아왔다. 존 레논 벽(John Lennon Wall)을 갔다. 내가 5년 전에 왔을 때와 벽화가 달랐다. 알고 보니 존 레논 벽은 고정된 벽화가 아니라 '살아있는 그라피티 벽'이라고 한다. 한편 메인 그라피티 앞에 사람들이 몰려 서있다. 줄을 선 게 아니라서 사진을 찍으려면 눈치껏 치고 빠져야 하는 식이었다. 따라서 한 번에 성공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찍는 걸 유심히 관찰한 후 적절한 위치에서 엄마 아빠를 찍었다. 존 레논 벽을 돌아 나오면 한국의 인사동 쌈지길이 연상되는 길이 나온다. 기념품 구경을 하다 엄마가 러시아 전통 모자 같은 걸 샀다. (왜 사나 싶었는데 막상 엄마가 쓰니까 잘 어울렸다.)
돌아오는 길에 마트를 들렀다. 소고기가 저렴했다. 오늘 플젠에서 계속 마신 필스너 우르켈 맥주도 같이 샀다. 에어비앤비에서 같이 요리하고 식탁에 세팅해서 먹는 재미가 있었다.
한편 이날 새벽, 꿈만 같은 일이 있었다. 바로 내가 국외 훈련자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한국 시간으로는 오전 10시, 현지 시간은 새벽 2시) 새벽 4시쯤 문득 눈이 떠져, 2시간 전쯤 와있는 카톡을 확인했을 때 도파민이 폭발하는 기분이었다. 엄마 아빠를 깨워 '나 유학 됐대!'를 연발하며 방방 뛰었다. (이렇게 부모님을 깨워본 게 내가 재수로 수능을 본 날, 오밤중에 몰래 가채점하고 수능 대박 난 결과를 확인한 날이었던 듯!)
준비는 열심히 했지만, 여건상 안 될 거라 생각해 마음고생을 많이 했었는데 생각지 못한 선물을 받은 거 같았다. 그리고 그간 내가 마음고생한 걸 잘 아시는 부모님이 바로 옆에서 함께 좋아해 주셔서 더 기뻤다. (엄마는 바로 이모들과의 단톡방 '삼백집'에 소식을 전했다!) 우리의 여행이 다음날이 사실상 마지막 날이라 아쉽지만, 더 행복한 기억을 안고 떠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래서 이 밤, 이 행복한 시간이 지나는 게 아주 아쉽지는 않았던 날이었다. 왜냐하면 앞으로 더 좋은 일과 기회가 있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