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연재 Oct 22. 2024

대안은 없을까

놀이치료를 종결한 이유는 지유가 원하지 않아서였다. 지유의 놀이치료지만, 결정권은 내게 있었다. 지유는 아직 미성년자이고, 내가 주 양육자이기 때문이다. 아직 사회에서 결정권이 없는 미성년자에게, 주 양육자의 권한은 절대적이고 때로는 무섭다.     


놀이치료를 시작한 지 5개월 만이었다.

상담사는 종결하는 것을 걱정했다. 담당의는 놀이치료는 상담사와 이야기해서 종결을 짓든 말든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의사는 약물과 관련한 설명만 계속했다. 지유의 불안이 가라앉으며 새로운 증상이 보인다고 했다. 산만함의 정도가 ADHD의 경계에 해당한다며, 약을 먹어볼 것을 권했다. 다만 ADHD약을 먹었을 때 부작용으로 불안이 다시 올라올 수 있다고 했다. 당최 이 사람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 어쩌면 이 의사는 환자의 완치를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의혹 마저 들었다. 담당의의 무성의함에 화가 났고, 동시에 겁도 덜컥 났다. 이젠 병원조차 믿을 수 없다. 상급종합병원에 진료 의뢰를 하기 위해 예약을 시도했지만, 전공의 파업으로 어느 병원이든 예약이 불가능했다. 남편은 어느 날은 놀이치료든 약이든 그만두라고 했고, 어느 날은 그만둬도 될지 걱정했다. 지유의 상황에 대해 깊은 상심에 빠져버린 남편과는 대화하면 할수록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에겐 중요한 순간이었지만, 아이의 상태를 정확히 아는 사람도, 이후 결과에 책임을 지는 사람도 없었다. 결국 나밖에 없다. 내가 결정을 내려야 했다. 아니다.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자, 결론은 지유였다. 누구보다 지유의 생각을 고려해야 했다. 지유는 놀이치료 가는 길을 지겹다, 지옥 같다, 끔찍하다, 언제 끝나냐는 식으로 얘기해 왔고, 그동안 한 번도 즐거워한 적이 없었다.      


“보통은, 다니다 보면 좋아하거든요. 놀이 치료하면서 보드게임도 하고, 선생님이랑 친해지고 하니까요.”

   

상담사가 얘기했던 보통의 사례들에 지유는 왜 맞지 않는 걸까. 어쩌면, 상담사와 맞지 않는 것은 아닐까. 다른 상담센터로 옮기는 것은 어떨까. 자꾸 변화를 주는 것도 아이에겐 좋지 않을 텐데. 어느 것도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놀이치료 외에도 치유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필요했다. 그리고 곧 거대한 절벽에 부딪혔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는 걸. 그동안의 나는 놀이치료 같은 아동 상담이나 대안교육 등에 무지한 사람이었다. 아이들이란 그저 집에서 가정 교육을 잘하고, 학교에서 친구들을 잘 사귀고, 야외에서 자주 뛰어놀면 그만이라는 안일한 생각만 하고 살았다. 내가 그렇게 자라왔기 때문이고, ‘보통의 아이들’이란 신화 속에 사로잡혀 살아왔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기 전엔 세상의 다양성을 잘 알지 못하고, 내가 속한 사회만이 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나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꼰대 엄마였다.     


미친 듯이 찾기 시작했다. 정보를 찾기 시작하자 다양한 사례들이 들려왔다. 이미 세상에는 상담센터와 신경정신과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의 교육적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유치원과 학교에서 배우는 배움만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내겐 충격이었다. 소아신경정신과의 클리닉에서는 학교 적응 준비반을 모집하고 있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어렵거나 또래와의 상호작용이 어려운 아이들, 집단에 적응하기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상담 프로그램이었다. 발 빠른 엄마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아이들에게 종합 심리 평가 검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지능과 정서를 미리 파악하여, 아이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능력의 가동 범위를 최대한 끌어내어 교육적으로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강남의 일부 엄마들 사이에서는 ADHD약을 이른바 총명탕의 효과로 아이들에게 먹이는 일도 존재했다. 알면 알수록 혼란만 가중될 뿐이었다.    


그즈음, 남편은 제주도를 부르짖기 시작했다.

“연재야, 우리 그냥 제주도 내려가서 살까?”

남편은 몸이 피곤하거나 일을 무리해서 하고 난 다음이면 어김없이 제주를 찾곤 한다. 농담 삼아도 하고, 진지하게도 하고, 심심할 때도 하고, 우울할 때도 한다.

“아아, 다 때려치우고 제주도 가서 살고 싶어. 이제 진짜 사람들 만나는 것 너무 지쳐. 제주도에서 귤 농사지으면서 살고 싶다.”


그의 말처럼 제주도의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놀며 산다면, 지유도 자연스럽게 치유가 될 것 같았다. 다음날, 제주도에서 살아본 적 있는 친한 언니에게 전화했다.     

“언니, 제주도, 살기에 어때?”

언니는 이런 질문을 여러 번 받아본 듯,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응, 제주 살기 괜찮아. 내가 살던 동네 쪽은 자연도 가깝고 조용하면서 도심이랑도 가까워서 살기 괜찮았어. 근데 그때는 애가 어렸으니까. 보통 애들 키우면서 살려면, 제주시의 아파트 단지에 사는 게 좋긴 해. 병원도 가깝고 어린이집이나 학원도 많으니까. 요새 제주로 이사 오는 젊은 사람들은 이쪽으로 많이 와.”

 

언니와의 통화는 아파트 단지 이름 몇 개를 남기고 끝이 났다. 언니가 알려준 아파트 이름을 지도 앱에 검색해 본다. 격자로 구획된 가로가 지도위에 펼쳐졌다. 제주지만 서울과 다를 것 없어 보이는 모양의 지도였다. 이곳에 살면, 제주에 사는 느낌이 나긴 할까? 아침에 눈을 뜨면 돌담으로 둘러싸인 동네 길을 산책하는 곳. 집에서 바다까지 쉽게 걸어갈 수 있는 곳을 상상했는데. 여행에서 본 제주와 살기 위해 찾아본 제주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생각했던 제주의 매력을 느낄 수 있으려면 시골 쪽으로 가야 했다. 그러나 병원이 문제였다. 제주시의 큰 병원이나 응급실에 가려면 한 시간 정도를 차로 이동해야 한다. 아이가 밤에 아프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혹시라도 응급실에 갈 일이 생길 경우를 무시할 수 없었다. 학원 없는 시골 동네에서 아이를 키울 자신도 없었다. 제주의 푸른 바다와 수풀이 우거진 오름은 찾지 않았다. 자연을 원해서 제주를 찾았건만, 생뚱맞게도 격자형의 제주 시내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지도 속에서 병원과 학교, 학원, 어린이집의 위치를 찾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그러다 제주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도 잠시 잊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숲 체험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었다. 숲 체험이란 도시 근교의 산에 있는 학교에서 주말 하루를 보내고 오는 체험이다. 자연을 가까이하면서,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질 수 있도록 돕는다. 숲 학교에는 학교 적응이 어려운 아이, 또래 관계가 어려운 아이, 사회성이 느린 아이, 신체가 건강해지고 싶은 아이, 감수성 발달을 하고 싶은 아이 등 다양한 이유로 아이들이 찾아온다. 지유는 한 달에 한 번씩 숲 학교에 가기 시작했다. 또래의 아이들과 산에서 각종 식물과 곤충을 채집하고, 텃밭에서 작물을 심고, 가꾸고, 수확하고, 드넓은 초원에서 또래들과 뛰어놀고, 귀여운 강아지와 놀다 오는 날이었다.     


처음 숲 학교에 가는 날, 엄마와 떨어질 수 있을지 걱정했다. 엄마 없이 반나절을 보내는 일이 지유에겐 처음이었다. 숲 학교 근처에서 휴대 전화를 바라보며, 지유가 부를 것에 대비하여 기다렸다. 다행히 지유는 전화 한번 하지 않고, 종료 시간까지 무사히 마쳤다. 오랜 야외 활동에 지친 지유는 배고파했고 짜증을 냈다. 둘째 달에는 조금 덜 배고파했고, 조금 더 기운이 남은 채로 돌아왔다. 세 번째 달에는 끝내고 집에 가는 것을 아쉬워했다. 네 번째 달은 수업이 종료되고도 한참을 놀이터에서 놀다 돌아왔다. 숲에서 놀며 지유는 점차 튼튼해졌다. 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땀을 흘리고 얼굴을 그을릴수록, 마음에도 근육이 하나씩 생기는 것 같았다. 숲은 여러 가지 방면으로 지유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숲으로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한 달에 한 번만으로 그칠 수 없었다. 우리 가족은 주말마다 자연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호텔, 리조트, 펜션, 민박, 캠핑. 숙소를 가리지 않고 여행을 떠났다. 여행용 캐리어를 창고에서, 베란다로 꺼내 놓고 살았다. 자동차 트렁크 속엔 돗자리와 텐트, 캠핑 의자, 캠핑 테이블을 싣고 다녔다. 어디든 잔디만 있으면, 나무만 있으면, 돗자리를 펴고 텐트를 쳤다. 그곳이 바로 오늘의 숲 체험장이었다. 지유는 우리의 주말을 바꿔놓았다. 우리는 어느새 자연을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는 가족이 되어있었다. 주말마다 쇼핑몰, 카페, 맛집, 키즈카페를 찾아다니던 우리는 과거 속으로 사라졌다.     


지유가 달라지게 만든 건, 가족의 주말 스케줄만이 아니었다. 지유를 가운데에 놓고, 우리 가족은 자꾸만 뭉치게 되었다. 가족의 결속력이 달라졌다. 지유의 불안이 커지기 전의 우리는 하루가 멀다하고 싸우는 부부였다. 아이들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싸움을 멈추지 못했다. 부부의 고함이 커질수록, 아이들의 눈동자엔 두려움이 싹을 틔웠다. 그리고 부모 상담날, 부모의 잦은 싸움을 보고 자란 아이일수록 불안한 감정이 자리를 잡을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남편과 나는 달라지기로 결심했다. 남편은 화를 덜 내기 시작했고 나도 말투를 상냥하게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가 뽀뽀하고 안아주는 날이 늘어나자, 아이들의 반응도 달라졌다. 지유는 저녁마다 아빠에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둘째도 마찬가지였다. 서로에게 날카롭던 우리는 스킨쉽이 자연스러운 가족으로 변해갔다.     


대안은 있었다. 조금만 각도를 달리 보면 가능한 것이었다. 지유는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지유의 예민성은 섬세함의 가치를 알게 했다. 지유의 예민한 시각, 후각, 촉각을 피곤해하던 내가 감각의 기쁨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었다. 오렌지 향, 라벤더 향, 베르가못 향, 바디워시의 향을 즐기는 목욕 시간이 즐거워졌다. 길가에 지나가는 쓰레기차, 은행 열매의 냄새를 지독해하면서도 다양한 냄새가 재미있다고 느끼게 됐다. 대안은 다른 곳에 있지 않았다. 그동안은 지유의 예민성을 단점으로만 바라보고 있었다. 예민성은 세상에 적응하기 힘들고, 도전에 직면하면 좌절하게끔 한다고만 생각해 왔다. 예민한 기질은 일상을 보다 감각적이고 깊이 있게 느끼고 사유할 수 있게 한다. 우리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음악의 아름다움, 이야기와 시의 아름다움, 담요에서 느껴지는 보드라움의 아름다움에 관해 서로 나눌 수 있다. 예민하게 주변을 지각하는 건 풍부한 하루를 보낼 수 있게 한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보다 하루의 시간을 조금 더 길게 늘여서 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모든 건, 지유의 예민함이 가르쳐 준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