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시 반. 조용하던 동네가 분주해지는 시간이다. 매년 3월에서 6월까지, 그리고 어쩌면 가을까지도. 초등학교 1, 2학년 아이들의 하교 시간이다.
동네마다 한두 개씩 있는 초등학교 앞은 이 시간이면, 아이들의 엄마들로 북적북적, 인산인해를 이룬다. 저마다의 집에서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시간에 하나둘씩 집을 나서, 은행나무 가득한 골목길을 걷고, 상가건물을 지나, 작은 놀이터를 품고 있는 공원 하나를 지나면, 학교에 도착이다. 집합 장소로. 모두 집합!
네모난 아파트의 작은 문에서 나온 그녀들은 다른 듯 비슷하다. 빠르고 잰걸음으로 한 방향으로 걸어간다. 한쪽 어깨에 작은 백을 멘 그녀도, 묵직한 학원 가방을 멘 그녀도, 손에 장바구니를 든 그녀도,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빈손으로 걷는 나도, 우리는 같은 마음이다. 수업 시간에 어땠을까, 점심은 잘 먹었을까, 혼자 지내진 않았을까, 춥진 않았을까, 받아쓰기는 잘 봤을까, 줄넘기는 잘 넘었을까. 한산하던 은행나무 길에 발걸음으로 가득 찬다.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걱정과 궁금도 가득 찬다. 도르르 굴러가던 낙엽들이 분주한 걸음에 꼭꼭 밟혀 종이처럼 납작해지고, 피하지 못한 걸음에 벗겨진 은행들이 수줍게 속살을 드러낸다.
“안녕하세요오~”
같은 학년 아이들의 엄마들을 만나면 인사한다. 그들과는 같은 시간에 같은 곳을 걷는 셈이다. 주말 빼고 매일 만나는 사이니, 아는 얼굴도 많아진다. 인사를 하고, 인사를 하다 같이 걷기로 하고, 같이 걸어가며 하하 호호 웃음소리도 간간이 새어 나온다. 인적 없던 동네에 실은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하나씩 하나씩 인사하며 모여든다. 다정히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들이 모여 동네를 따스하게 만들어 준다. 사실은 다정해 보여도 다정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대화에 숨겨진 이면에는 다른 장르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는 중일지도. 그건 각자가 갖고 있는 사정이고, 드러내지 않으니 알 수 없다. 겉모습만은 한가로운 동네 풍경을 만들어 내는 그들이다.
학교는 앞뒤로 정문과 후문이 붙어있다. 이 시간에는 정문과 후문이 모두 활짝 열린다. 문을 앞에 두고, 엄마와 아빠들, 할머니들, 학원 선생님들이 벌떼처럼, 개미 떼처럼 우르르 모여 있다. 가끔 교문 앞 길목이 막히기도 한다. 사람들이 지나가다 이 광경을 본다면, 무슨 좋은 구경거리가 있나 하고 궁금해할 것이다. 어떤 행인은 학교 앞을 피해 다른 길로 빙 돌아서 가기도 하고, 다른 행인은 엄마들이 모인 진풍경을 일부러 구경하고 가기도 한다. 기다리는 이들에게 행인은 관심 밖의 일이다. 이들의 눈길은 오직 한 곳, 정문 혹은 후문이다.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휴대 전화를 보다가도, 다시 문만 바라보며 기다린다.
나 역시 기다리며 오늘 아침 지유의 얼굴을 기억해 낸다. 길어지는 작별 인사에 피로감을 느끼며 돌아서는 내게 “엄마, 나 사랑해?”, “엄마, 화난 거 아니지?”라고 했던 지유. 아직도 아이는 내 얼굴을 살피며 표정이 어떤지, 안심할 수 있는지 확인하려 든다. 엄마에게서 괜찮다는 확신을 얻고 싶어서다. 불안의 기미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윽고, 교문 너머로 한 아이의 머리 꼭대기가 나타난다. 이야기를 나누던 많은 이들은 일제히 그 아이에게 주목한다. 그리고 그들 중 축복받은 한 여성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녀는 양팔을 벌리고 앞으로 뛰어나가 아이를 품에 안고 인사를 나눈다. 아이와 만난 그녀의 얼굴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온도의 웃음을 보여준다. 아까까지 지었던 미소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그리고 그녀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속으로 부러움을 삼킨다. 곧이어 몇 명의 아이들이 또 나오고, 또 몇 명의 엄마 혹은 아빠, 할머니가 아이들에게 달려간다.
오래 기다려야 하는 난, 이들을 관찰하곤 한다. 지유는 1학년과 2학년 통틀어 가장 늦게 나온다. 모두가 가고 난 후에 홀로 문 앞을 지키는 날도 많다. 오늘도 알림장을 오랫동안 쓰는구나, 혹은 오늘도 청소가 오래 걸리는구나, 하며 기다리는 수밖에. 마침내 지유가 나오면 관찰도 끝이 난다. 이제 나의 시야는 아이의 얼굴, 아이의 목소리, 아이의 걸음걸이로 좁혀진다. 세계는 갑자기, 동네는 곧, 사라지고 좁아진다.
지유를 만나면 오전의 불안은 사라진다. 머릿속을 부유하던 쓸데없는 사념과 걱정도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한다. 아이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며, 우리에겐 불안 따윈 없었던 것처럼, 원래부터 아무렇지 않았던 것처럼 대한다. 나는 약간의 과장된 몸짓과 표정을 지으면서, 지유를 웃긴다. 그 애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혹시라도 지유의 표정이 안 좋은 날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굳이 묻지 않는다. 그보다는 좋은 생각을 떠올려보려 노력한다.
지유야, 하늘 좀 봐! 하늘이 정말 예뻐!
저기 봐, 지유야. 아기 걷는 것 좀 봐. 너무 이쁘지 않니. 아기 궁둥이.
무서운 생각이 들 때는 동생 얼굴을 떠올려봐. 아무 생각 없이 귀여운 웃는 얼굴.
하늘을 바라보며, 아기를 바라보며, 지유는 금세 잊곤 한다. 아직 어린이라서 가능한 단순함과 맑음이다. 소중히 생각한다.
지유는 이제 등교할 때 무서워하지 않는다. 엄마와 함께 할 때가 많지만, 친구 하은이와 만나서 갈 때도 잦아졌다. 하은이와 있을 때는 엄마를 찾지 않는다. 그러나 엄마를 찾을 때는 가볍게 곁에 있어 준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과 안정이 지유에게 중요하다는 걸 알고, 많은 것을 바꾸었다. 영어학원은 동네의 가까운 학원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셔틀버스를 타는 대신, 걸어서 다니는 학원을 지유는 안심하는 것 같았다. 늘 다니던 상가 건물에 있어서 적응하는 것도 빨랐다. 운동을 많이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담당의의 충고를 듣고, 물을 좋아하는 지유에게 맞춰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작은 성공 경험을 여러 번 해보는 것이 자존감을 높이고 용기를 얻을 수 있다고 해서, 좋아하는 활동 속에서 도전을 해볼 수 있도록 했다. 미술 학원을 통해 자신이 그린 작품을 전시회에 걸어보기도 하고, 방과후 수업을 통해 합창 공연을 해보기도 했다. 아이는 점차 밝아지고 있었다. 수업 시간에는 발표를 즐겨하게 되었다. 깜깜한 밤늦은 시간에 수영을 가는 날에도 꾹 참고 해냈다. 친해지고 싶은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어보기도 했다. 다른 아이에겐 별것 아닌 일일 수 있지만, 지유에겐 불편하고 두려운 상황이었다. 지유의 이런 변화는 같은 상황을 두렵게 느끼지 않게 된 것인지, 아니면 이겨내기 위해 노력을 한 덕분인지는 모르겠다. 항불안제 약을 먹지 않고도 1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새로운 곳에서 놀이치료를 위해 초기 상담을 받았다. 이번엔 병원 내의 상담센터가 아닌, 전문 상담센터였다. 상담센터는 넓고 쾌적하고 아늑했다. 로비의 한쪽에 선반에는 장난감과 책으로 가득하고, 바닥에는 매트가 깔린 놀이방이 있었다. 지유와 동생은 놀이방을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뛰어갔다. 상담센터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걸까. 기대감이 들었다. 상담센터에서 종합 심리 평가를 검사했다. 최근 밝고 씩씩해진 모습만 보였던 지유다. 이제는 다 아무렇지 않다, 괜찮다는 이야기를 듣게 될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검사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기질적으로 위험회피 성향이 너무 강한 아이예요. 로샤 검사 반응을 보면, 전형적으로 불안이 높은 아이들의 응답을 하고 있어요. 지유에겐 마음 기저에 불안이 어느 정도 있는 것으로 보여요.”
지유는 대부분 밝고 씩씩하지만, 가끔은 불안해할 때도 있었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 때는 짓궂게 장난을 치고 활발한 모습에 누구도 지유에게 어두운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둠이 찾아오는 저녁 무렵, 혹은 월요일을 앞둔 일요일 밤 그리고 아무 일이 없을 때도 문득 무서운 생각이 든다고 하는 때가 있었다. 멀리서 까마귀가 울거나, 인상이 좋지 않은 사람과 눈이 마주쳤을 때, 단짝 친구가 다른 아이와 놀 때도 불길한 느낌이 든다며 불안해했다.
지유에겐 무엇이 필요한가? 앞으로 더욱 밝게 바꿔줘야 하는 걸까? 생각해 보면 지유만큼은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의 불안은 나도 매일 느끼고 있다. 당신도 그럴 것이다. 두려움과 불안은 자연스러운 하나의 감정일 뿐이다. 불안 없이 언제나 밝고 긍정적인 기쁨과 즐거움만으로 가득한 날이 단 하루라도 있었던 적이 있던가. 누구에게나 하루는 조금의 기쁨과 조금의 불안이 함께하고 있다. 지유는 세 살 때도, 다섯 살 때도 조금은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기도 하는 아이였다. 불안은 아홉 살이 되어 갑자기 생긴 감정이 아니다. 이제 지유에게 필요한 건 자신의 감정을 잘 알고 다스리는 힘을 키우는 일이다.
오늘 놀이치료를 하고 나온 지유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 이제 놀이치료 괜찮아. 사실 괜찮아진 지 조금 됐어. 그냥 놀이치료 와서 논다고 생각하려고.”
이제야 지유도, 나도 받아들인다. 우리에게 불안은 사라져야 할 대상이 아니다. 마음속의 불안은 잘 가꾸고 돌봐야 할 활화산 같다. 아무 때나 불을 뿜어내거나 용암을 뱉어내지 않도록. 지유 마음속에 있는 아기 활화산을 끌어안는다. 지금은 조용한 아기 활화산이 내년엔 더욱 성숙한 휴화산이 되기를, 그리고 잠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화산을 잘 다룰 수 있을 만큼 지유가 강해질 때까지.
아침 저녁으로 공기가 달라진다. 가로에는 바스락 거리는 낙엽이 쌓이고, 공원의 나무들은 울긋불긋해진다. 산책할 때마다 도토리와 솔방울을 주워오는 날들이 이어진다. 얇은 점퍼는 따스한 플리스로, 두터운 패딩으로 바뀌어가고, 거리마다 검정 옷을 입은 사람들이 늘어간다. 붕어빵과 호떡이 맛있어지는 계절,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지유는 어느새 겨울을 지나 봄을 생각하고 만다.
"엄마... 겨울 방학 지나서 다시 학교가게 될 거 생각하면 무서워..."
얼어붙는 추위가 지나가고 일렁이는 바람이 불어올 때쯤이면, 우리에게 불안의 봄이 찾아온 것이다. 모든 것이 새롭게 바뀌는 계절, 3월이면 지유도 새로운 학년에 올라간다. 익숙해진 선생님, 친구들, 교실이 바뀌고 또다시 적응해야 하는 시기다. 이제 막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지금, 벌써부터 먼 미래를 불안해하는 지유에게 말해주고 싶다.
“걱정하지 마. 3학년때도 등굣길에 함께할 수 있어. 네가 준비될 때까지 엄마가 기다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