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기준

by 유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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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환자는 침을 깊게 맞아야 시원하고 나아지는 것 같다며 꼭 깊게 놓아달라고 한다. 어떤 환자는 침을 깊게 맞으면 너무 아프고 며칠씩이나 몸이 힘들다며 꼭 살살 놓아달라고 한다. 다른 병과 증상을 가진 환자가 아니라 같은 병과 증상을 가진 환자에게서 듣는 말이다.

똑같은 상황이어도 사람마다 원하는 바는 다르다. 나에겐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치료하는 게 가장 좋다는 공식이 있지만 그 공식이 절대적인 정답이라고는 우길 수 없다. 왜냐하면 침을 깊이 놓았을 때 전신이 바짝 긴장하고 너무 겁에 질리고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머리가 아프고 다음날까지 컨디션이 좋지 않은 환자가 생겼을 때, 그 환자의 불만을 무시하고 "이것이 최선입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의사와 환자 관계를 넘어 인간 대 인간으로서 적절치 않은 대응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식당의 경우를 생각해본다. 비빔밥 식당 주인에게 오랜 기간에 걸쳐 개발한 자신만의 비법 소스가 있다. 그런데 종종 오던 손님이 자신의 입에 조금 짜니 싱겁게 하는 게 좋겠다고 한다. 이런 사람이 한둘일 때는 식당 주인이 무시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열 명 중 두 명이 그런 이야기를 하면 슬슬 고민할 수도 있다. 정말 자기 소스가 지나치게 짠 편은 아닌지 말이다. 그까지는 괜찮지만 만약 소스를 싱겁게 바꾸는 순간 그 식당은 개성과 단골을 모두 잃게 된다. 원래 소스를 괜찮다고 여기던 사람에게는 싱거워지기 때문이다. N의 염도가 특색 있고 좋아서 찾아오던 단골들인데 어느 날 0.5N이 되면 그 식당에 올 이유가 있을까?

역시 중요한 것은 자신의 기준을 갖는 것인데 이 기준을 어떻게 마련하는지가 중요하다. 침이 들어갈 수 있는 깊이가 0.5cm부터 5cm까지라고 할 때 그 깊이의 기준을 제비뽑기로 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타당한 근거에 기반해 적절한 깊이를 정해두되 환자의 반응에 따라 요령 있게 조절하는 것이 베테랑 한의사가 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정말 두서없고 아무런 기준도 없어 보이는 말이지만 세상살이가 늘 그렇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맛을 정확한 숫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스타벅스의 커피와 이디야의 커피맛을 숫자로 비교할 수 있을까? 대충 뭐가 조금 더 쓰고 약간 더 시고 조금 텁텁하다는 정도의, 우리 모두가 세상 살아가며 그러하듯이 두루뭉술한 말 외에는 적당한 표현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나는 환자 맞춤형으로, 내 나름의 기준에 따라 모든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누구에게도 정확한 숫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기준에 의거해서 말이다. 이 기준이 타당한지 아닌지는 오직 환자가 평가할 일이고, 다행스럽게도 여태까지는 대부분 납득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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