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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Jul 24. 2022

생명을 잡고, 죽이고, 먹는다는 것

 얼마 전 또 선상 낚시를 다녀왔다. 참돔을 대상어로 하는 낚시로는 벌써 10 회차다. 예전에는 꽝 치는 날도 제법 많았는데 요즘은 배에 오르면 그래도 한 마리씩은 꼭 잡아온다. 이번에도 30cm 조금 넘는 녀석을 한 마리 간신히 잡아왔다.

 항상 배에서 내린 후에는 생선 손질을 횟집에 맡겨왔다. 킬로그램당 5천 원 정도 하는 손질비가 그렇게 비싸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집까지 가져가는 동안에 생선이 상하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 이번에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회를 뜰 만한 집이 보이지도 않았거니와 이제는 직접 해 볼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아이스박스를 열고 파란 봉지에 든 참돔을 꺼냈다. 늘 봉지에서 횟집으로 직행했기 때문에 죽은 참돔을 이렇게 오래 본 건 처음이다. 눈 위에 바다색 마스카라를 바른 듯 예쁜 참돔이다. 배에서 아가미 쪽을 찔렀기 때문에 움직임은 없지만 살은 여전히 살아있을 때처럼 부드러워서 대가리와 꼬리를 잡고 움직이면 물결치듯 움직인다. 조심스럽게 꼬리에 손을 대고 대가리 쪽으로 몸을 따라 밀어 본다. 날카로운 비늘에 손가락 피부가 탁탁 걸려 거슬린다. 기분이 묘하다. 죽은 생물을 만지는 것. 늘 이상한 기분이다.


 유튜브에서 참돔 손질하는 영상을 틀어놓고 따라 해 본다.

 필렛을 얇게 자를 때만 썼던 창칼(데바)이 참돔 대가리 바로 뒤쪽을 파고든다. 으지직 소리가 새삼 무섭다. 이미 죽은 생선이지만 내가 다시 한번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처음 하는 비늘 치기가 어려워 창칼을 두고 비늘 치기 전용 도구를 꺼냈다. 꼬리에서부터 옆 지느러미까지 꼼꼼하게 도구를 움직여본다. 비늘이 여간 많이 튀는 것이 아니다. 하기야 생선은 온몸에 비늘이 덮여있으니 놀랄 일도 아니지만 늘 손질된 생선만 먹다 보니 비늘이 이리 많은 줄도 모르고 살았다. 하얀 비늘이 싱크대 여기저기 날아가 붙지만 치울 정신도 없다.

 아래턱 쪽을 완전히 끊어내고 손가락을 집어넣어 본다. 아가미에 손가락을 걸고 당기라는데 아가미에 마치 이빨 같은 것이 무수히도 많이 나있다. 바닷물에서 들어오는 이물질을 걸러내는 역할을 하는 것일까? 정말 이빨 같아서 손가락을 걸고 힘껏 당기는데 꼭 죽은 생선이 날 깨무는 것 같아 무서웠다. 눈을 질끈 감고 당기자 아가미, 그리고 거기에 연결된 내장이 쭉 딸려 나왔다. 아가미와 내장을 빼고 난 빈 공간은 무척이나 낯설었다.

 내장을 빼낸 자리에 피가 있으면 칼로 잘 긁어내라는 설명이 나왔다. 오만상을 찌푸리며 열심히 칼을 움직였다. 갈비뼈가 보였다. 생선은 꼭 척추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몸안에 단단한 갈비뼈가 분명히 있었다.

 배로 칼을 넣어 꼬리까지 긋고, 꼬리의 칼집에 칼을 넣어 대가리까지 긋고, 다시 등, 다시 배. 분리된 두 장의 필렛에서 갈비뼈 부분을 잘라내면 포 뜨기는 완성된다. 여기서 껍질까지 벗겨낼 수도 있지만 참돔의 껍질은 맛있는 부위로 여겨지기 때문에 내버려 두었다. 


 30cm 정도의 참돔은 3살 정도 된 녀석이다. 경력이 오래된 낚시꾼들은 이 크기의 참돔을 잡으면 '에계?' 하는 반응을 보이곤 하지만 엄연히 험한 바다에서 3년이나 살아남은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크기로 따지면 발이 큰 성인 남성의 신발 사이즈 정도밖에 안 되긴 하다. 하지만 그런 작은 녀석도 처음 손질을 하다 보니 시간도 한참 걸리고 이마에서 땀이 송글송글 솟았다. 

 예전에 채식주의에 관해 읽은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소 경매장에 가서 생명이 상품화되는 과정을 직접 보고 나면 육식을 지속하기 어려울 거라고.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육식의 뒷배경 : https://brunch.co.kr/@seriousong/510)

 나는 이번에 참돔을 직접 손질하며 그간 참돔을 먹기 위한 과정 중 거북한 부분을 모두 외주화 해왔음을 체감했다. 나는 참돔을 잡기만 했지, 죽이는 것도, 대가리를 자르고 뼈를 발라내는 것도 모두 남에게 맡겼다. 그래서 나는 굉장히 가벼운 마음으로 그 살을 먹을 수 있었다. 그 과정을 모두 직접 해 보니 새삼 생명의 무게를 알겠다. 그렇다. 무언가를 죽이고 그 살을 얻는다는 것은 결코 가벼이 여길 일이 아니었다. 정말로 잔혹함의 외주화를 통해 우리는 일상에서 죄책감을 덜고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떤 횟집 사장의 유튜브에서 참돔을 손질하던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이런 크기(영상에 나온 참돔은 약 70cm의 대물이었다)의 참돔을 잡을 때는 자신도 경외감을 느낀다고. 그는 참돔의 생명을 끊으며 좋은 데로 가라는 말을 두어 번 반복했다.

 다른 생물의 생명을 빼앗지 않아야 한다는 이유로 생선을 포함한 모든 육식을 거부할 수 있을까? 지금 당장은 그렇게 하겠다고 못하겠다. 하지만 내가 먹는 생명의 무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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