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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시 30분 야간진료도 충분하지 않아요

by 유송

아침에 문을 열고, 저녁이 깊어질 무렵 문을 닫는 일은 제게는 너무도 익숙한 하루의 흐름입니다. 저희 한의원은 현재 밤 8시 30분까지 진료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 이 시간을 정할 때에는 단순히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대부분 직장인들은 오후 6시에 퇴근하니, 집에 도착하면 대략 7시쯤 되겠지. 그러면 진료를 받기에 충분한 시간이 될 것이다.”

그때의 저는, 퇴근 후 집에 들러 가볍게 저녁을 먹고, 몸이 불편하거나 피곤할 때 한의원에 들러 치료를 받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도 자기 몸을 챙기는 단정한 직장인의 하루 말이지요. 그래서 8시 30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제 생각보다 훨씬 바쁘고, 더 무겁게 흘러가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진료실에서 종종 이런 말씀을 듣습니다.
“원장님, 요즘은 야근이 많아서요. 오고 싶은데 시간이 안 맞아요.”
처음에는 그저 ‘그럴 수도 있지’ 하고 가볍게 넘겼습니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듣다 보니, 사정이 단순히 ‘가끔 늦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퇴근 시간이 오후 6시라고 명목상 정해져 있어도, 그 시간에 책상을 떠나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마무리하지 못한 업무를 처리하고, 예고 없이 잡힌 회의를 마치고, 자료를 정리하다 보면 어느새 7시를 훌쩍 넘깁니다. 그리고 사무실을 나서 지하철을 타고, 환승을 하고, 다시 버스를 타다 보면 집 근처에 도착하는 시간은 8시가 다 되어갑니다.

그 시각, 저희 한의원의 불은 꺼져 있거나, 막 꺼지려 하고 있습니다. 8시까지 접수를 받아드리기는 해도, 안 그래도 바빴던 일과를 마무리하며 느긋하게 치료를 받고 싶지 마감시간에 쫓겨 급하게 받고 싶은 분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어제저녁에는 그 장면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온 약을 담던 중, 문득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저희 한의원 앞에는 아파트로 들어가는 넓은 도로가 보이는데, 8시가 가까워진 시각이었습니다.

멀리서 사람들의 무리가 한꺼번에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셔츠의 깃이 조금 구겨진 남성, 손에 무거운 가방을 든 여성, 두 손 가득 장을 든 채 빠르게 걸음을 옮기는 부부… 모두가 하루의 무게를 짊어진 듯, 무언가에 쫓기듯 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 얼굴에는 피곤함이 묻어 있었습니다. 서두르는 발걸음 속에는 그저 얼른 집에 도착해서 눕고 싶은 마음만 가득해 보였네요.

그 모습을 보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정말 사람들이 이렇게 늦게까지 일을 하는구나.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는구나.’
제가 생각한 ‘퇴근 후 여유로운 한 시간’은, 많은 분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마음 한편이 무거워졌습니다. 지금의 진료 시간은 제 기준에서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환자분들의 일상 속에서는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고 싶어도, 몸이 아파도, 시간이 맞지 않아서 오지 못하는 분들. 그분들의 하루 끝에 저희 한의원이 닿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진료 시간을 밤 10시까지 연장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에게도 체력적인 부담이 있습니다. 하루 종일 환자분들을 뵙고, 치료하고, 상담을 하다 보면 8시 반쯤에는 목소리와 손끝이 조금 무거워집니다. 하지만 진료를 조금 더 늦게까지 하면, 오늘도 치료를 받지 못해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 분들이, 대신 웃으며 들어오실 수도 있겠지요.

밤이 깊어질수록, 세상은 더 조용해집니다. 하지만 그 조용함 속에도 하루를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오는 발걸음은 계속됩니다. 저는 그 발걸음 중 일부가 저희 한의원의 문을 향하기를 바랍니다. 조금 더 늦게까지 불을 켜 두고, 하루의 끝에 잠시라도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한의원은 치료만 하는 곳이 아니라, 누군가의 하루 끝에 작은 위로를 건네는 곳이 되고 싶습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도 ‘아, 아직 문이 열려 있구나’ 하며 들어올 수 있는 곳.
그런 한의원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진료 시간표를 들여다보며, 밤 10시까지 불을 밝힐 결심을 조금씩 굳혀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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